일요일을 빼고 날마다 1100~1200명의 끼니를 제공하는 밥퍼나눔운동본부의 오병이어 식당. 아침 6시30분부터 식사 준비에 들어가 오후 2시까지 이곳 주방은 밥과 국에서 피어오르는 열기와 자원봉사자들의 땀이 뒤섞여 사우나탕을 방불케 한다.
‘오병이어’ 의 기적 만들겠습니다 〈한겨레〉는 6만2천여 국민들의 지지와 참여로 사옥과 윤전기를 마련하고 신문을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한겨레신문사에 다시 한번 국민적 성원이 쏟아졌습니다. 서울 청량리 굴다리 밑에서 나눠진 사랑이 〈한겨레〉 제2 창간 발전기금으로 전해진 것입니다. ‘밥퍼나눔운동본부’ 대표 최일도 목사는 6월20일 〈한겨레〉를 찾아 502만원의 발전기금을 전달했습니다. 이 돈은 밥퍼나눔운동본부가 무의탁 노인과 노숙자, 행려자들에게 끼니를 제공하면서 이들이 식대로 낸 ‘자존심 유지비’ 100원씩, 5만200명의 정성이 모여서 만들어진 돈입니다. 한겨레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어려운 처지에 처한 분들이 눈물겹게 모은 돈을 받아야 하나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한겨레는 애초에 어렵게 모아진 이 돈을 받기 어렵다는 뜻을 밥퍼나눔운동본부에 전달하기도 했으나, 이 분들의 ‘자존심 유지비’의 뜻을 훼손할 수 없다는 밥퍼 쪽의 의사를 존중해 이 분들의 고귀한 뜻을 받들기로 했습니다. 대신 한겨레신문사는 소중하게 모인 이 돈의 의미를 되새기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 소외된 구석이 없는 사회,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기로 하고, 23일치 〈한겨레〉 사설에서 이를 밝혔습니다. 한겨레신문사는 밥퍼나눔운동본부에 대해 △한겨레 임직원 오병이어 식당 봉사 △다일복지재단의 다일천사병원 계좌 후원 △다일복지재단의 나눔·봉사활동 적극 홍보등 구체적 지원 방법을 정했습니다. 한겨레신문사
올바른 언론 ‘배고픔’ 만큼 절박합니다 배고픈 사람들 ‘밥퍼가족’ 이 ‘자존심’을 기탁했습니다
품위유지비 100원, 50200그릇 비울때마다 쌓인 그 돈을 한겨레에 보내왔습니다. 낮은 곳 비추라고, 따뜻한 세상 만들라고. 청량리 답십리동 553번지, 이른바 ‘588’로 불리던 청량리역 뒤편 성매매업소 거리와 연결된 전농동 쌍굴다리 옆의 밥퍼나눔운동본부 오병이어식당. 일요일을 빼고 날마다 이 식당 앞에는 오전 11시 즈음이면 긴 행렬이 만들어진다. 1988년 이후 무의탁노인, 노숙자 등 밥 한 그릇이 간절한 사람들에게 점심을 무료로 나눠주는 ‘밥퍼식당’의 17년째 변하지 않는 풍경이다. 비만을 소재로 한 코미디프로가 인기이고, 다이어트가 젊은층을 넘어 전세대의 관심사가 되고, 제공된 식사를 남기는 게 예절처럼 여겨지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바라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나라의 한 측면이다. 일찍이 한 시인은 “밥이 하늘이다”라고 읊었다. 밥퍼식당은 ‘밥’이 ‘하늘’만큼 소중하다고 몸으로 깨닫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되는 배식은 낮 12시30분이면 마무리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식당이 운영되는 시간을 알고 있다. 90여분 동안 1100~1200명이 오병이어식당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을 체험한다. 4인용 식탁 25개가 꽉 들어찬 이 식당에서 동시에 먹을 수 있는 인원은 100명, 90분 동안의 식사시간에 최소 10번 이상 ‘회전’하는 셈이다. 한 번의 식사에 걸리는 시간은 9분 안쪽이다. 배식판을 받고 자리를 잡고 반납하는 시간을 따지면 한 사람의 식사시간은 9분보다 짧아지기 마련이다. 동행이 없어 밥을 먹을 때 대화할 경우도 거의 없으며, 무엇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배가 고파 오기 때문이다. 하루 1200여명 주린배 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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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처음 ‘밥퍼’ 식당을 찾은 이아무개(60)씨도 “배가 고파서”가 이유였다. 이후로 날마다 이곳을 찾는다는 이씨는 “점심은 이곳에서, 아침은 제기동 작은예수집에서, 저녁은 서울역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서울역 주변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다. “이곳에서 밥을 먹을 때 100원을 낸다. 자존심 유지비라고 하는데 좋게 생각한다. 물값이나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돈을 내고 사먹는 셈”이라고 말하는 이씨는, 병원은 밥퍼식당 인근의 다일천사병원을 이용한다. 다일천사병원은 밥퍼나눔운동본부를 운영하는 다일복지재단이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운영하는 무료진료 병원이다. 지난 3월 경비 일을 그만두고 생계가 막연해진 휘경동의 이아무개(74)씨도 날마다 점심을 이곳에서 해결하게 된 이후로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 같은 사람들하고 이 근처 어려운 사람들한테 참 좋은 곳이야!” ‘밥’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 중 일부는 ‘밥을 푸고’ 있다. 90분 동안 1200명에게 끼니를 제공하려면 배식대 앞 국자와 주걱의 노동량도 만만치 않다. 이날 봉사를 나온 용두동교회 여선교회 한 회원은 수백그릇의 뜨거운 밥을 푸느라 손이 발갛게 익었다. 찬물에 식혔지만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좁은 주방에는 20명 안팎의 봉사자들이 조리와 배식, 설거지와 남은 음식 뒤처리 등 일을 나눠 맡아 바삐 움직였다. 1000명분이 넘는 밥과 국을 좁은 주방 안에서 조리하고 배식하자면 주방은 금세 사우나가 된다. 50도가 넘는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계속 땀방울을 닦아내려야 한다. 밥퍼나눔운동본부의 총무인 유병옥(48)씨를 비롯해 네 사람은 아침 6시30분부터 준비에 들어가고 다른 봉사자들은 9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이 날은 용두동교회 여선교회와 여주대 시각디자인학과 학생 5명이 주방일을 맡았다. 친구 소개로 이날 처음 와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는 김민경(21)씨는 “힘들지만 아침 일찍부터 밥을 먹으려고 줄을 서는 사람들을 보고 힘을 냈다”며 “밥을 타서 봉투에 담아가는 사람을 보고 솔직히 놀랐다”고 말했다 배식 봉사자 더운김에 손익어 상근 봉사자 중에는 2년반째 날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하는 다일교회의 최낙정 집사도 있다. 최 집사는 “태풍이 왔다고 해서 대통령은 오페라 좀 보면 안 되나”라는 발언이 문제가 되어 사임한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최씨는 “겉으로 보이는 타이틀과 무관하게 사람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사람”이라며 “세상에는 도울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자신의 ‘밥퍼활동’ 이유를 설명했다. 3년째 아침 6시30분에 나와 현장을 총괄하고 1000여명 ‘손님’을 일일이 상대하는 책임을 맡은 상근봉사자 노화자(57) 밥사모(‘밥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은 “그동안 가족만을 위해 살아왔는데 딸들이 살림을 도와줘서 일할 수 있다”며 “정성껏 좋은 재료로만 만들어 위생적으로 대접한다”고 말했다. 밥퍼식당에서 후원자들과 봉사자들의 정성으로 차려진 식사에 100원씩을 내는 사람들은 하루 500여명. 하루에 5만원 가량이니 1년 가까이 모여야 한겨레 발전기금으로 전달한 502만원이 된다. 100원의 정성으로 따지면 5만200명의 참여인 셈이다. 한때 노숙자 처지로 밥퍼 식당을 이용하다가 봉사자로 일하게 되고 성실성을 인정받아 상근자로 주방 살림을 맡은 유 총무는 ‘오병이어’를 뜻하는 밥퍼의 502만원 기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존심 유지비를 한겨레에 낸 것은 공정보도를 하는 언론이 꼭 필요하다는 뜻에서입니다. 밥퍼공동체가 넉넉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올바른 언론이 절실하고 드물기 때문입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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