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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한국 정부 신자유주의 신봉, 종교에 가깝다”

등록 2011-03-06 20:25수정 2011-03-15 11:07

그의 연구실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사 ‘시지윅’에 자리잡고 있다. 시지윅은 이 대학 출신의 19세기 사회철학자의 이름이다. 책으로 가득 찬 연구실에서 장하준 교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40만부 팔린 데 대해 “한국의 독자가 수준이 높은 덕이지만, 시대적으로 보면 외환위기를 경험한 한국 사회가 또다시 미국발 금융위기를 맞게 되자, 비로소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케임브리지/김명진 기자 <A href="mailto:littleprince@hani.co.kr">littleprince@hani.co.kr</A>
그의 연구실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사 ‘시지윅’에 자리잡고 있다. 시지윅은 이 대학 출신의 19세기 사회철학자의 이름이다. 책으로 가득 찬 연구실에서 장하준 교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40만부 팔린 데 대해 “한국의 독자가 수준이 높은 덕이지만, 시대적으로 보면 외환위기를 경험한 한국 사회가 또다시 미국발 금융위기를 맞게 되자, 비로소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케임브리지/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밀리언셀러’ 저자 된 장하준 교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지난해 11월 시판 개시 이후 1백여일만에 40만부가 팔리면서 지은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밀리언셀러’ 작가가 됐다. 출판사 부키는 3년 전 출간돼 50만부가 판매된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그 전의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 장하준 교수의 경제 관련 책들 총 판매부수가 지난 2월 말로 1백만부를 넘었다고 밝혔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23가지>를 두고 진보 보수를 통털어 이 정도로 시민대중의 큰 호응을 받은 책이 없었다며, 이를 한국의 진보경제학이 시민대중과의 만남에서 거둔 특기할 만한 성공사례라고 평가했다.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을 주조로 한 진보적 경제학자의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경제학 서적들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1백만부 이상 팔린 것은 일대 사건이라 할 만하다. 문화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적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판매부수 1백만권이면, 실제 읽어본 사람들은 그보다 더 많을 수 있다. 상당한 지적 수준을 지닌 다수의 사람들이 이 책 내용에 동조할 때 상정할 수 있는 장단기 사회적 효과는 의미심장한 것일 수 있다. “처음엔 물론 그렇게 되리라 생각하는 건 언감생심이었지만, 사실 그런 걸 바라고 이런 대중서적 쓰기를 시작했다”고 지난 2일(현지시각)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사 ‘시지윅’의 책들로 둘러싸인 좁다란 교수연구실에서 만난 장 교수는 말했다. “학술서적치고는 꽤 주목을 받았던 <사다리 걷어차기> 같은 건 우리나라니까 5~6만부나 팔렸을 것이다. 대중서적 쓰기를 한 건 학자로서 사회에 가장 크게 공헌할 수 있는 게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어떤 대안적인 얘기를 즐겁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 생각했다.” 그의 책들은 아직도 잘 팔리고 있고 <…23가지>는 서점들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를 고수하고 있다.

장 교수는 예의 그 온갖 자료와 사례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신랄하고 설득력 있게 신자유주의를 비판했고 보편복지를 그 대안으로 한층 더 분명하게 제시했다.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비용을 줄이는 데도 복지국가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제조업 없이 부자된 나라 보지 못했다”며 복지논쟁 못지않게 위기의 제조업 구하기에도 관심을 기울이자고 촉구했다. 그의 책에 대한 일부 비판적 시선에 대해서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제시한 명제들에 대한 그의 확신엔 흔들림이 없었고 제시한 논거들에도 변함없는 자신감을 나타냈다.

‘23가지’ ‘사마리아인’ 등 100만부 이상 팔려
한국인, 외환·금융위기 거치며 세계화 꿈 깨
“정부와 반대로 독자들 이미 성찰단계 진입

-그야말로 ‘밀리언셀러’ 작가가 됐다.

=한국 독자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어느 나라가 됐건 경제학 서적이라는 게 단 기간에 이렇게 많이 팔린 예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영국에선 어떤가?


=여기는 하드백(양장본)이 먼저 나오고 페이퍼백(염가보급판)이 나중에 나오는데, 판매부수가 올라가는 것은 보통 페이퍼백이 나온 뒤다. 지금은 하드백(펭귄출판사)만 나와 있고 페이퍼백은 오는 9월쯤에 나올 예정이다. 그런데 하드백도 여기서 1만2000부 정도 나갔다. 이것도 굉장히 많이 나간 것이다. 특히 경제학 책으로선 더 그렇다. 최근에 나온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미국 컬럼비아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경제학 책보다 훨씬 많이 팔렸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에서 외국에 수출한 게 약 2만권 정도다.

-다른 책들 중에 이 책에 견줄 만한 게 있나?

=정확한 부수는 잘 모르겠으나 한국에서 <괴짜 경제학>이란 이름으로 5~6년 전에 번역출간된 ‘Freakonomics’가 한 50만부 정도 팔렸다고 한다. 경제학 책으로선 유례없는 판매였다는데,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시장주의 책이니까 주류 언론에서 많이 지원해줬다. 내 책같이 삐딱하면서도 이렇게 많이 팔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

-런던정치경제대(LSE) 초청 강연 때도 성황이었다고 들었다.

=지난해 9월 초에 책이 나오고 10월에 했는데 그때가 이곳 대학 개학시기다. 350석 정도의 큰 강당에서 했는데 만석이어서 돌려보낸 사람이 많았다고 들었다. 런던정경대엔 그런 식으로 자주 간다.

-독자 1백만이면, 실제 읽어본 사람들은 그보다 더 많을 텐데, 사회적 능력을 지닌 상당한 지적 수준의 사람들 다수가 책 내용에 동조한다는 건 장기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것이라 생각한다. 서재정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그람시를 인용하면서 이건 단기 기동전이 아니라 장기전이고 진지전이라면서, 중요한 건 머리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책이 많이 팔리고 많은 사람들이 책 내용에 동의한다면 장기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이렇게 많이 팔린 것은 하나의 사건일 수 있다. 유럽의 좋은 점들이 이렇게 쉽고 정제된 형태로 우리사회 구성원 중 상당한 지적 수준을 지닌, 이렇게 많은 구성원들 머리 속에 쏟아져 들어가는 건 이 책 외에 달리 예를 찾기 어려운 게 아닐까.

=좋게 얘기해줘 고맙다. 처음엔 물론 언감생심이었지만, 사실 그런 걸 바라고 이런 대중서적 쓰기를 시작했다. 학술서적치고는 주목을 받았던 <사다리 걷어차기> 같은 건 우리나라니까 5~6만부 팔린 걸로 알고 있다. 영어권에선 나온 지 10여년 됐는 데도 2만권도 안 팔렸을 것이다. 학술책으로선 굉장히 많이 팔린 거라곤 하는데. <나쁜 사마리아인들>, <…23가지> 등 대중서적 쓰기를 한 건 학자로서 사회에 가장 크게 공헌할 수 있는 게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어떤 대안적인 얘기를 즐겁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 생각했다. 애초 경제학 공부를 시작한 게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데 뭔가 공헌해보자는 뜻이 컸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가장 효과를 낼 수 있는 게 그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어쩌면 정말 꿈이 이뤄진 것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단한 성공이어선지 그만큼 여기저기서 관심도 많고 비평들도 쏟아졌다. 23가지 명제들에 대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 없는가?

=물론이다. 나름대로 오래 생각하고 다 자료 찾아서 쓴 것들이다. 학술논문이 아니니까 표 같은 것도 없고 해서 간단하게 쓴 것 같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내용이 많다.

-팩트(사실)가 틀렸다는 주장도 있는데.

=수정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국내 보수매체에선 탐탁치 않게 보는 시각도 있다. 부정적인 평만 골라 늘어놓기도 한다.

=서양 북리뷰가 어떤 건지 잘 몰라서 그런 게 아니겠나. 아무리 좋은 책도 칭찬 일변도로만 끝내진 않는다. 꼭 한 마디씩 붙이는데, 하필 그런 부분만 따서 얘기하는 건 좀…. 글쎄 뭐, 요즘같이 정보를 독점할 수 없는 세상에 그런다고 잘 먹히겠나.

-진보 보수를 통틀어 시민대중한테서 이만한 호응을 받은 책이 없었다고 한 이병천 강원대 교수의 평가와 지적에 대해선.

=좋은 말씀, 그냥 감사하게 받겠다. 배운 바도 많다.

-왜 많이 팔린다고 생각하나?

=대중에게 쉽게 읽히게 하려고 다른 때보다 더 노력했다. 어느 정도는 그게 작용했을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도 대중용으로 썼지만 한 장(chapter)이 30~40십쪽씩 된다. 학술논문을 대중용으로 풀어쓴다는 기분으로 썼던 건데, 이번 책은 정말로 사람들이 침대 옆에 뒀다가 잠자기 전에 잠깐 한 챕터씩 보고 지하철에서 잠깐 읽을 때도 어떻게 하면 주의력을 흐트리지 않고 읽을 수 있게 할까를 생각하며 썼다. 한 챕터를 10~15쪽으로 줄이고 그것도 여러 섹션으로 나눠 읽기 쉽게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렇게 팔리는 이유의 전부가 될 순 없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우리나라 독자들 수준이 그만큼 높은 덕이라 생각한다. 이런 시사성 있는 책들이 다른 나라에선 이렇게 많이 팔리긴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대정신이랄까, 흐름을 탄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당하고 그 전까지의 정책들을 버리고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온 국민이 우리도 이제 스펙 쌓고 경쟁에 이겨서 잘 돼야지, 하고 생각했다.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가 유행할 정도로. 그렇게 스펙 쌓고 단련하면 다 잘 되겠지 했는데 그렇게 한 10여년 해보니까 결과는 그 반대로 나왔다. 옛날보다 성장은 더 안 되고 빈부격차는 더 커지고 계층상승 기회도 오히려 줄고…. 최상층 1~5% 정도 빼고는 다 살기가 더 팍팍해졌다. 도대체 우리가 힘들여 노력하며 달려온 결과가 뭔가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하던 때에 2008년 금융위기까지 덮치면서 신자유주의의 본산이라는 미국·영국까지 와르르 무너지니까 다들 꿈에서 깨어났다고나 할까, 그런 분위기 속에 이 책이 나왔다.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며 다른 길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복지하면 계층이동 활발해져 경제 도움
부자들 ‘증세 반대’ 너무 근시안적 사고
“신자유주의 대안, 북유럽 보편복지 유일”

-관심을 끌만한 23가지 주제들을 절묘하게 뽑아내 재치있게 배열했는데.

=23이란 숫자에 특별한 뜻은 없다. 처음엔 20가지를 생각했으나 밋밋해서 재미없고, 짝수도 두루뭉실하게 들린다고 생각했고, 또 너무 가지수가 많아도 곤란하니까. 물론 가지수를 늘려 더 얘기할 부분도 있었지만. 대부분 평소에 늘 고민하던 것들이다. 20가지 정도가 내 학술연구 주제들에 토대를 두고 있다. 예컨대 미국 최고경영자들의 엄청난 봉급 같은 것이 그렇다. 이번 책에서 새로 발굴해 넣은 주제는 17장 교육문제 같은 것이다. 이것도 항상 생각은 해왔으나 연구해본 주제는 아니었는데, 이번에 쓰면서 자료도 찾고 하면서 본격적 연구는 아니지만 연구를 하긴 좀 했다.

-한국어 외의 다른 외국어 번역 출간작업은 어떻게 돼가나.

=지금까지 나온 건 독일어, 네덜란드어, 일본어판이다. 다른 10개국 언어로 번역출간할 계약도 맺었다. 중국, 대만, 타이, 핀란드, 라트비아, 러시아, 그리스, 터키, 루마니아, 포르투갈이다. 아랍어 출판도 관심있는 출판사와 계약협상을 벌이고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주제가 개도국에 한정돼 있었으나, 그것도 6개국어로 번역 출간됐고 또다른 3개 국어로 번역하고 있다. 그에 비해 주제 범위가 넓은 이번 책의 번역 출간이 더 많아질 것 같다.

-가장 먼저 나온 독일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쥐트 도이체 차이퉁>과 잡지 등 여러 매체들이 다뤘다. 네덜란드에선 사람들이 대체로 영어를 잘 하기 때문에 소설 같으면 모르겠지만 논픽션을 네덜란드어로 굳이 번역 출간하진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네덜란드어 번역 출간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지난해 11월 말에 1판이 나왔고 올해 1월 중순 2판을 찍었다. 그때 그곳으로 초청돼 주요 신문들과 인터뷰도 했다.

-한국에서만의 예외적인 현상은 아닌 셈이다.

=신자유주의가 끝장났다고까지 얘기하긴 좀 그렇지만, 기존 관점들이 깨어져나가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런 문제에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신자유주의가 처한 현상황, 특히 2008년 금융공황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세계의 생각은 어떤가?

=개도국에선 완전히 돌아섰다. 특히 남미에선 2000년대 초부터 그랬다. 아르헨티나는 2001~2년 외환위기가 덮치고 채무지불유예 선언 사태가 벌어지면서 다들 망한다고 했는데 그 이후 아르헨티나는 오히려 연 6%의 성장으로 남미에선 가장 성장률이 높은 나라가 됐다. 에콰도르, 우루과이 등도 다 노선을 수정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완전히 돌아서버렸다. 브라질은 조금 다른데, 인플레 경험 때문에 여전히 이자율을 높게 유지하며 거시적 차원에선 아직도 신자유주의를 따르고 있으나 소득 재분배를 강화하는 등 정통파적 산업정책에선 벗어나 있다.

선진국에선 편차가 있는데, 영국 미국은 신자유주의 본거지답게 거기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힘도 세다. 급할 땐 케인스식 적자재정을 하자고 하다가 사정이 좀 호전되니까 다시 복지비를 전보다 더 깎으려고 들고, 금융규제에도 물을 많이 탔다. 금융계쪽에서 하도 로비를 해대니까.

-영국 경제사정은 어떤가?

=지금 굉장히 좋지 않다. 지난 4/4 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0.6%였다. 4월부터 복지예산을 엄청 깎는다는데, 그것 때문에 소비자 심리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몇십만의 실업자가 발생할 텐데, 많은 이들이 더블딥을 겁내고 있다. 미국에선 공화당이 복지비 깎으려 하나 아직 실행하진 못했다. 영국 보수·자유 연립정권 뜻대로 하면 상황이 많이 어려워질 것이다.

-여기서 보는 우리 현실은 어떤가?

=일전에 ‘역주행’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다른 나라들이 모두 규제 얘기할 때 우리만 반대로 갔다. 신자유주의 본산지까지 난리가 났으면 그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할지라도 재고해보는 자세가 필요한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럴수록 흔들리지 말고 일로매진하자는 식이니, 이건 종교지 정책이라 할 수 없는 것 아니냐. 파산한 리먼 브러더스를 그때 산업은행이 인수했다면 결국 망했을 거다. 집권 3년이 지나면서 좀 주춤거리며 ‘돌격 앞으로!’는 못하지만 기본적으로 계속 그 자세인 것 같다.

-한국 보수매체들도 유럽 복지정책의 부정적인 면을 들추면서 주로 복지비 깎으려는 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글쎄, 그런 게 다 거짓말이다. 오늘 아침에도 보니까 영란은행 총재가, 재정적자 이유가 은행 등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금융이 다 망가지고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세수가 제대로 걷히지 않아 그렇다고 했다. 복지과다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못을 박았다. 실제 스웨덴 등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미국보다 성장률이 더 높다. 스웨덴 등에서도 복지예산 깎지 않았느냐는데, 사실 좀 지나친 부분 없잖아 있었던 것도 사실인데. 그런 것 깎는다고 우리도 깎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비만환자 다이어트를 우리도 따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 복지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꼴찌에서 2등인데, 꼴찌는 멕시코다.

-여기도 온통 리비아 등 중동 아랍세계 급변 뉴스 천지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도 비견할 수 있는 대변화요, 그 자체로 놀라운 세계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게 신자유주의와 무관할까?

=리비아는 좀 특이한 예외지만 그들 나라 대부분은 미국과 손잡고 정책도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따르던 나라들이다. 이집트, 수출자유지역 만들어 유럽연합(EU)에 값싼 옷을 수출하던 튀니지 등이 성장도 거의 못하고 일자리도 없어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진 것도 사태의 한 원인이다.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중동·북아프리카지역 성장률은 아랍사회주의 등이 살아 있던 1960~70년대에 평균 2.5%였으나 1980~90년대 이후엔 마이너스 0.2% 정도로 떨어졌다.

-리비아 등은 평균적으로 보면 최빈국은 아니다. 그런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혁명이란 못살고 정체된 나라가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으로 일어서는 역동적인 나라에서 일어나기 쉽다는 고전적 연구사례를 떠올리게 하는데, 인터넷 등 통신혁명도 중요한 역할을 한 듯하다.

=당연하다. 광주항쟁 때는 전화선 몇 가닥 끊어버렸는데도 외부와의 접촉이 거의 차단돼버렸다. 지금 유사사태가 일어나면 그런 식이 다시 되풀이 되겠나. 촛불시위 같은 것을 현장에서 찍어 바로 전 세계로 날려버리는 세상인데.

책에서 세탁기 얘기한 건 인터넷 등에 너무 현재시각으로 몰입하거나 과대평가 하지 말자는 취지로 쓴 것이지 인터넷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를 한 건 아니다. 나야말로 인터넷 덕에 얼마나 살기 편해졌나. 책 출간도 인터넷 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 많은 자료들을 일일이 도서관에 갈 필요도 없이 안방에서 인쇄해서 뽑아볼 수 있는데. 네덜란드 케이블방송 출연했을 때 진행자가 세탁기-인터넷 부분은 잘 납득하지 못하겠다기에, 꽁꽁 언 물에 손 담그고 빨래 같은 걸 해본 적 있느냐고 했더니 재빨리 알아차리더라. 빨래 해보지 않은 사람들(특히 남자들)은 세탁기가 가져온 변화가 얼마나 큰 것인지 잘 모른다. 그 얘길 한 건 인터넷이 국경을 없앨 것이라는 등의 잘못된 생각으로 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잘못 추진할까봐 지적한 것이다.

-이병천 교수의 지적은 결국 노동자 시민 등 하위주체들의 역할에 대해 좀더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밀고 나가라는 얘기인 듯하다.

=나도 노동자, 하청업체, 지역사회, 시민 등의 이해를 좀 더 대변하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주주자본주의 비판도 마찬가지 차원이다. 이병천 교수는 혁명주의적 지적 용광로에서 나온 분이라면 나는 그저 쇳물 좀 튄 정도다. 애초 나는 혁명주의적인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 세상이 좀 이상하게 돼버려서 내 왼쪽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오른쪽으로 가버리는 통에 내가 좌파처럼 돼 있지만, 사실 대학 다닐 땐 친구들이 날 우파라고 했다.

-주주자본주의, 소액주주운동, 그와 연결된 참여연대 등에 정말 반대하나?

=소액주주운동은 사촌인 장하성 교수가 주도해왔다. 원래 소액주주운동이란 건 미국 펀드매니저들이 하던 것이다. 10%, 20%의 지분을 가진 자만 주주냐, 지분율 1%도 안 되는 우리에게도 발언권 좀 다오, 해서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소액주주운동은 기업이나 자본가의 과오를 바로잡으려는 사회운동 차원으로 그것을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역할을 해낸 의미있고 중요한 운동이다. 내가 우려를 표명한 건 그게 한편으론 주주자본주의를 정당화시켜주면서, 좋은 의미에서 시작했음에도, 론스타같이 해고를 자행하고 ‘먹튀’하는 외부자본을 정당화해주는 측면이 있지 않느냐, 그런 건 경계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차원에서 지적한 것이다. 이병천 교수는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라고 지적한 것이고.

-장 교수가 친재벌, 재벌 입장 옹호자라는 주장도 있다.

=경영권 세습을 인정해줄 테니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이사회의 40% 정도를 정부,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에 할당해 사회의 감시를 받아라고 한 언론 인터뷰 내용에 대해, 삼성은 이미 승계절차를 다 끝냈는데 무슨 소리냐는 얘기인데, 나는 그게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본다. 그냥 두면 바뀌는 게 없다. 계속 정치 도덕적 압력 넣어 양보를 이끌어내야 한다. 삼성이 건설중장비회사를 볼보에 팔았는데, 스웨덴 경영자들이 노조 없는 경영은 못하니까 빨리 노조 만들라고 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있다. 그런 후진적 행태, 과오를 고치면서 대신 그 동안의 역할을 인정해 일정 지분을 주는 쪽으로 해야 하지 않겠나.

재벌 반대론자들은 차라리 국유화하자고 했으면 좋겠다. 주주자본주의 논리로 삼성을 무너뜨리면 그걸 누가 가져가겠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외국 펀드들이 가져갈 수 있다. 그 외국펀드 뒤에 숨어 있는 돈이 무슨 돈인지 어떻게 아느냐. 아프리카 독재자 돈인지 러시아 마피아의 돈인지. 그런 돈이 와서 하는 역할이 뭐겠나. 결국 해고하고 투자 기피하면서 단기적 이윤을 내서 비싼 값에 팔고 나가는 이런 기술만 있는 자들인데. 이씨, 정씨는 그래도 이름도 알고 어디 사는지도 아니까 수틀리면 몰려가서 돌이라도 던질 수 있겠지만 펀드들이 차지하면 모스크바나 시드니에 비행기 몰고 가서 데모할 수도 없고.

-삼성은 이미 외국자본에 상당부분 잠식당해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 삐끗하면 외국자본 손에 넘어갈 수도 있다.

-발렌베리하고도 다른데.

=발렌베리 등 스웨덴 재벌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한때 차등주식을 발행해 신주들은 기존주의 발언권의 10분의 1, 심지어 1천분의 1까지로 제한하기도 했다. 대신 세금도 많이 내고 재단 등을 만들어 엄청나게 기부도 많이 하고 하니까 사람들이 납득하는 것이다.

-중국도 한국식 재벌활용 성장전략을 많이 참고한 것으로 안다. 중소기업 중심의 대만과는 달리 핀란드 스웨덴 한국처럼 거대기업 육성도 유력한 성장전략이 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한국은 그렇게 해서 성공한 것이다. 대만도 중소기업만 있는 건 아니다. 국민당이 한때 코민테른에 가입할 정도로 좌파성향이 강한 면도 있었다. 대만에선 대기업들이 모두 국영기업이다. 대기업이 없는 게 아니다. 사기업이 아니라는 것이지. 삼성 현대는 이씨, 정씨네 것도 아니지만 나중에 들어온 주주들 것도 아니다. 그건 국민들이 키운 기업이다. 예전에 보호장벽 세워 비싸고 나쁜 물건 사주면서, 노동자들 착취당해가면서, 세금 내서 보조금 줘가면서 키워온 기업인데 왜 주주자본주의로 그걸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외국자본에 팔아버린단 말인가. 이씨, 정씨에 불만이 있으면 차라리 국유화하자고 해야 하지 않나.

-재벌이 사회적 대타협에 나와 다수의 이익이 될 수 있도록 바꾸는 게 중요하다는 얘긴가?

=지금까지 한 일 갖고 욕하지만, 사실 따져보면 지금 그럴듯해 보이는 미국 유럽 자본들 중 깨끗한 자본이 어디 있나. 다들 식민지 경영하고 노동 착취하고 노예무역하고 별짓 다해서 모은 것인데.

-그런 면에선 농민공들 착취하는 중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 잘못을 근본적으로 뒤집으려면 사회주의혁명을 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문제는 어떻게든 국민 다수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해서 국민의 기업으로 못박아두고 가야 하는데, 주주자본주의로 가면 우리 나라 총 주가 다 합쳐도 미국 주식시장 규모의 1~2%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현실에선 위험하다. 세계자본주의 논리에 충실하려 하면 언제든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규모다.

-노동조합이나 비정상적 지배구조, 노동자 백혈병 피해 등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삼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대재생산되는 건데, 그런 재벌의 퇴행적 행태나 비리를 없애고 바로잡아가자는 걸 단순화, 도식화해서 친재벌이니 하는 건 좀 심하다는 얘긴가.

=그런 말 들으면 좀 억울하지만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내 논리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 쓸 무렵엔 거의 99% 이상이 오해하고 욕했는데. 지금은 반반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기본적 생각은 그때와 다름 없는가?

=그렇다. 사회대타협 등과 관련해 세부적으로 그때하고는 재벌들이 몰린 상황이나 태도 등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때 제안한 방법을 그대로 쓸 순 없지만 기본방향은 아직도 맞다고 생각한다.

-이병천 교수가, 장 교수가 리스트식 민족주의 얘기하면서 <사다리 걷어차기> 때까지는 그것이 보수주의와 결합할 여지가 있었으나 이번 책에선 성장 분배 복지 강조하면서 그것이 진보주의와 결합한 논리구조로 발전했다고 평가했는데.

=그 부분은 처음부터 나를 좀 오해한 것 같다. 내 전공이 산업정책, 무역정책 쪽이다 보니 예컨대 노동문제나 사회복지 분야에 쓴 것이 없진 않으나 많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읽어보면 애초 내 생각이 그런 방향이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글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산업정책, 무역정책 얘기하다 보면 경제발전 초점이 생산성 향상이라든가 생산력 확대 쪽으로 몰리게 되니까, 거기선 사회정책 복지정책 얘기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 때문에 그런 인상을 받았을 수 있다. 또 리스트식 논리, 유치산업 보호 등을 꼭 우파적인 논리로만 봐야 하는 건 아니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 예컨대 한국 프랑스는 우파가 산업정책을 주도하고 지지했으나 영국은 그런 게 좌파정책이다. 나라 역사나 전통에 따라 다르다. 영국에선 나를 우파라 부르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한미 무역자유협정(FTA)이 얼마나 좋은 특혜인데 반대하느냐, 스웨덴 등 북유럽의 과다복지는 이미 실패했다, 그리스 사태도 과다복지 때문이다는 얘기를 여전히 떠들어대는 게 현실이다.

=그런 얘기 제대로 알고 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지역 재투자법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 빌려주다가 당한 것이라는 식의 얘기들이 있지만,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거냐 하면, 연준에 참여하는 코온(Kohn) 시카고대 교수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 하지 마라, 그게 전체 대출의 5% 정도밖에 안 되고 그들 계층이 조금 부도율이 높긴 했지만 그렇게 문제될 만큼 부도율이 높진 않았다. 그들 탓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까 얘기한 영란은행 총재 얘기도 마찬가지다. 그런 식의 주장을 할 때 통계수치 제대로 끌어대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그리스 같은 경우는 자기 수준에 비해 복지가 과했다는 주장이 꽤 있긴 하지만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 경우는 말도 안 된다. 스페인도 그렇지만 그리스가 유럽연합 가입하면서 부동산 붐이 일었다. 북쪽의 잘 사는 나라들이 투기성 돈을 햇빛 좋고 경관 좋은 그리스 땅에 마구 풀어놓는 바람에 거품이 일었고 그 때문에 망한 것이다. 그걸 갖고 유럽 전체가 과다복지 때문에 파탄위기라고 주장하는 건 완전 사실 왜곡이다.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가족 유대감이 강한 우리 사회엔 ‘가족복지’ 같은 게 있었으나 지금의 핵가족 사회에선 불가능한 일이 됐다. 지금은 일자리 잃으면 갈 데가 없다. 이런 상태서 이대로 가면 사회가 엄청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런 면에서도 복지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산업화 등으로 인한 구조변화 때문에 그런 면도 있고, 신자유주의 때문에 복지 수요가 엄청 커진 것도 있다. 고용불안 등이 심화되면서 지금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모두 의대, 법대 갈 생각만 하지 공대나 과학 계열엔 가지 않는다. 그런 데를 가야 장차 먹고 살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안 가니 질 떨어지고 구성원들 스스로 자신들이 못나서 그런다고 자조하게 되면 나라 장래가 위태로와진다. 사실 제조업 버리고 성공한 나라 없다. 스위스 등 강소국들이 룩셈부르크 정도 빼고는 다 제조업 강국들이라고 했더니 룩셈부르크에서 그 나라조차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실은 제조업이 강하다는 답글을 보내 온 적도 있다. 중국이 쫓아오니 제조업은 버리고 금융, 서비스 등으로 가야 한다는 샌드위치론 얘기들을 하는데, 언제 우리가 샌드위치 아닌 적이 있었나. 세계적으로도 첫째와 꼴찌를 뺀 나머지 모두는 샌드위치다. 왜 쫓아오는 중국은 무서워하면서 도망가는 쪽은 무서워하질 않나.

1980년대 말 90년대 초에 제조업이 한물갔고 촌스런 것이고 후진국이나 하는 것이라며 많이 버렸는데, 지금 2만 달러 수준에서 4만 달러 이상들을 따라잡겠다면 그래선 안 된다. 게다가 미국 유럽과 자유무역협정까지 하고 나면 그나마 갖고 있던 기대마저 접어야 할지 모른다. 지난 30여년 간 금융쪽이 돈 잘 번 것은 신자유주의 규제완화 덕택이었다. 그걸 보고 제조업을 업수이 여기는데 그게 다 허상이다. 미국 금융계의 대부 폴 볼커가 지난 30여년간 금융혁신이랍시고 해왔지만 실제로 도움이 된 건 현금출납기 등장 하나뿐이었다는 말을 했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라트비아 두바이 등 금융허브 하겠다던 나라들 다 망하지 않았나. 복지문제 논의도 중요하지만 제조업의 의의나 그 위기상황에 대한 논의도 못지않게 중요한데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아쨌든 고용이 불안한데 복지도 안 되니까 조금만 어려우면 자살한다. 자살률이 세계 최고 아니냐. 재벌의 통큰 치킨도 신자유주의 규제 완화 때문에 등장한 것 아니냐. 과거 일본이나 한국은 복지는 좌파정책이라며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주변 공산국가들과 체제 대결을 벌이고 있는 처지에서 브라질처럼 심각한 불평등을 그대로 둘 수도 없었다. 그래서 소매업 분야에 대기업이 진출하는 걸 막아 약자도 먹고 살게 해줬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이후 그게 불가능해졌다. 이런 비효율적인 기업을 왜 그대로 두느냐, 롯데가 들어오면 잘 될 텐데, 뭐 이런 식으로 해서 구조가 바뀌니 갈등이 계속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통큰 치킨 같은 건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밀고 당기고 하다보면 비용도 엄청 많이 든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복지국가 제대로 만들어 일괄타결하는 게 낫다.

재미있는 통계중에, 세금걷고 복지지출 하기 전의 소득분배를 보면 스웨덴 독일 벨기에 등 유럽나라들이 미국보다 더 불평등하다는 게 있다. 그런 나라들은 한국 일본 식의 규제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일본은 복지 지출 전의 상태를 보면 훨씬 더 평등하다. 그런데 스웨덴 등은 세금 엄청 걷어 복지로 재분배 하니까 평등해지고, 상대적으로 평등하던 한국 일본은 복지 안 하니까 재분배도 안 되고 그 결과 평등 정도가 중간 정도밖에 안 된다. 이제 그마저 밀어버리고 미국 쪽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조차 지난 20여년 동안 복지비가 조금씩 꾸준히 늘었다.

-스웨덴에서 오래 생활한 신필균씨의 <복지국가 스웨덴>에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우리는 북유럽처럼 잘 살지도 못하는데 복지 하면 안 된다, 그건 세금 더 걷자는 건데 그러면 힘없는 사람만 죽는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신필균씨 얘기는 그게 아니다. 그 거꾸로다. 잘 살아서 복지 하는 게 아니고 복지 해야 잘 산다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물론 그게 단기간에 되는 건 아니다. 스웨덴이 복지 시작할 때 절대기준으로 보면 지금 한국보다 못살았다. 우리는 우리보다 훨씬 가난한 남미 우루과이 등에 비해서도 복지수준이 낮다. 문제는 못하는 게 아니라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이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슬로건은 참 좋다. 우리 사회는 출산율이 낮다며 아우성치는데, 그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육아보조 등이 없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낳고 싶어도 못 낳는다. 또 그러면서 이민자 등 외부에서 다른 혈통의 사람들을 들여오는 것도 거부한다. 30~40년 뒤 우리 국민 절반 정도가 외국인 피가 섞인 나라가 되는 쪽을 택하든지 복지 쪽을 택하든지 해야 할 판이다. 둘 다 하지 않겠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일본도 노동자 대량 수입하든지 아니면 인구 늘리든지 해야 한다는 논의가 분분하다. 100을 버는 자가 60을 세금으로 내고 40을 자신이 쓰고, 10을 버는 쪽은 세금을 내지 않거나 하나, 둘을 내는데 그것조차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게 우리나라 가진 자들 생각인 것 같다.

=그건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이나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도 불리한 근시안적 태도다. 서구엔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뛰어넘는 사람들이 많다. 보수주의자 비스마르크가 복지제도를 도입한 것도 체제안정을 위해서였다. 장기적으로 자신들에게도 유리한 쪽을 거부하는 건, 너무 머리가 나쁘거나 욕심이 너무 많아서일 거다.

-모든 아이가 모두의 아이가 될 때, 즉 보편복지가 이뤄질 대 사교육과 과도한 입시경쟁도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을까.

=현대조선의 숙련된 용접공 정도면 생활이 괜찮다. 그런데 거기서 떨어져 나오기만 하면 달리 갈 데가 없다. 어떻게든 그 위로 밀어넣으려 다들 무리를 범한다. 스위스의 대학 진학률이 낮은 건 안 가도 사는 데 지장 없기 때문이다. 이 선을 넘지 않으면 내 자식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런 생각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라면 그렇게 기를 쓰고 대학 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복지국가에서 사회 계층간 이동이 활발해진다는 건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스웨덴 등의 복지국들에선 아버지와 자식간의 소득 상관관계가 굉장히 낮고 미국 이탈리아가 높다. 영국도 유럽기준으로는 높은 편이다. 복지제도란 일종의 ‘노동자 파산법’이다. 복지사회에선 승진 안 되고 쫓겨날 각오를 하더라도 과감하게 진취적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은 복지국가가 그래서 활력이 있다. 복지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그런 나라가 미국보다 오히려 성장률이 더 높다. 우리나라 우파는 그런 나라들이 망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통계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겐 지금과 같은 세상이 좋을 수 있겠다.

=물론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들 경쟁, 경쟁 하지만 그러는 그들이 실은 경쟁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자식들이 가난하지만 능력 있는 아이들과 경쟁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말로는 경쟁하자 하지만, 쉽게 얘기해서 남의 아이 다리 부러뜨려 놓고 절뚝거리는 그 아이하고 자기 자식 달리기 경쟁시켜 상 타게 하려는 속셈인데, 누가 그 다리 고쳐주겠다고 하는 것을 반기겠나. 도덕적으로 저열해서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선전공세 속에 생각없이 막연히 그게 선이라 여기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내 책 보고 아, 이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얘기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아주 최근 통계는 못 봐 잘 모르겠으나, 우리나라가 남녀 임금격차도 세계 최고고 비정규직 비율도 세계에서 제일 높다. 임금격차도 크고 불평등한 게 너무 많다. 이런 걸 없애야 한다.

-홍익대 청소원들 얘기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언론도 노조도 그런 일에 제대로 발언할 만한 정의감도 없는 것 같다. 그런 사회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스웨덴 사회경제 시스템의 주축을 이루는 것 중의 하나다. 단순히 도덕적 평등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산업정책으로도 활용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제를 실시하면 생산성이 낮은 기업은 자기능력보다 임금을 더 줘야 하니 더 어려워지고 생산성 높은 기업은 번 돈보다 적은 임금을 줘도 되기 때문에 이윤이 더 많이 남는다. 따라서 생산성 높고 혁신을 많이 하는 기업 쪽은 번성하고, 낮은 쪽은 도태된다. 복지국가란 또 그냥 두면 도태될 노동자들을 재교육시켜 더 효율적으로 재순환시킨다. 1950년대에 스웨덴 복지체제가 완성될 때 그 핵심 요소가 바로 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이었다.

-복지가 세금폭탄이라는 말에 대해선.

=복지 제대로 하려면 세금 더 걷는 건 당연하다.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 지원 등은 돈 얼마 투입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제대로 된 복지는 돈 더 걷어야 한다. 문제는 한국만이 아니라 어디나 그렇지만, 세금이란 게 태워 없애버리는 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은 그게 길이 되고 학교가 되고 의료서비스가 되는 건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대다수 국민들은 세금 많이 내지만 그래서 더 많이 얻는다.

복지 하면 가난한 사람들 노동의욕 떨어진다고 주장하려면 부자들도 자기 자식에게 재산 상속하면 안 되지 않겠나. 지금 5대째인 발렌베리 집안이 잘 되는 게, 그 집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식이라고 무조건 재산 물려주는 게 아니고 해군장교를 하든 외교관을 하든 꼭 다른 직업 갖고 세상을 경험해서 배우고 오도록 해서 그 중에서 가려 뽑는다. 그래도 적당한 자식 없으면 다른 외부 능력자들 가운데서 뽑기도 한다.

-왕조도 초창기엔 능력자 위주로 권력 승계해서 잘 나가다가 능력과 상관없이 자기 자식 세습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망쪼로 가지 않나. 폴 크루거먼 책을 봐도 나오지만, 1950~70년대 초까지의 고원경기가 뉴딜 때 노동정책, 재벌독점규제 등의 제도 개혁 덕을 본 것인데, 1980년대에 그걸 뒤집고 자본 이윤율 높이기 위해 자신들의 활동무대를 유리하게 바꾼 것이 신자유주의 논리라는 얘기도 있던데, 1970년대 초에 왜 하이에크 등의 자유주의 논리가 먹혀들어갈 정도로 그 장기 번성기가 무너졌나.

=거기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마르크스적 관점에선 계속 완전고용이 지속되고, 노동자들이 조직화하면서 힘이 세져 이윤율을 압박하니까 자본가들이 투자도 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막기 위해 한 판 벌였다는 설이 있고, 또 하나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보면 과거 자유주의로 대표되는 고전적 자본주의가 2차대전 뒤 뒤집히고, 그때 몰락한 세력이 반격을 시작하면서 1970년대 오일쇼크 등의 문제를 이용해 공격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좋은 예로, 마거릿 대처가 총리로 선출되기 직전 영국 실업자가 1백만을 넘었다, 2차 대전 이후 처음이었다. 대처는 그걸 무기로 삼아 정적들이 노조에 휘둘린다며 엄청 공격했다. 하지만 막상 통화주의 정책을 도입해 적자를 삭감한다던 대처 집권 2년 만에 실업자는 3백만으로 오히려 급증했다. 성장률을 높인다고 했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하지만 돈 있고 힘있는 자들이 같은 편이니 이데올로기 공세를 펴는 데는 그들이 유리했다. 그나마 영국에선 그래도 <비비씨(BBC)>라도 있으나 미국은 방송도 우파들이 다 장악해버렸다. 미국에선 신자유주의 때문에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는데 엉뚱하게 낙태, 총기 문제 등을 거론하며 자꾸 옆길로 새면서 희생자들이 공화당에 투표하도록 유도하는 교묘한 전략도 썼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계급투쟁의 결과다. 대공황과 2차대전 뒤엔 노동자계급이 한 판 이긴 거고 1970년대 초반 이후엔 그 반대쪽이 한 판 이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발전은 했다. 아무리 대처가 복지예산 삭감하고 그래도 결국 복지정책을 없애진 못했다.

-케인스주의의 한계도 얘기하는 것 같은데.

=케인스주의의 한계라면, 단기 거시정책 위주여서 장기적인 생산성 발전 문제라든가 국제경쟁력이라든가에 대해선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경기순환 같은 걸 조정하는 데엔 효과가 있다. 예컨대 영국 미국 같은 나라들이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접어들면서 자꾸 위기를 맞은 건 산업정책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다. 그래서 국제경쟁력 떨어지면서 자꾸 적자 났고, 결국 미국이 금태환을 중단한 것도 그 때문이다. 영국도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면서 회사들이 망한 건데 케인스주의는 단기 거시정책에 관한 경제이론이니 그런 문제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공격을 받게 되는 건데 그건 케인스주의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원래 어떤 일부분만 커버할 수 있는 케인스주의 거시정책을, 그것만 잘 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이라고 믿은 게 잘못이다. 스웨덴 프랑스 같은 나라들도 영국 못지않은 케인스주의를 채택했는데도 별 문제 없이 잘 살았고 영국을 따라잡았다. 다시 말해 케인스주의 자체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거시정책만 잘 하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다.

-신자유주의 대안으로 유럽식 보편복지가 여러 선택 가능한 것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그 길밖에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좀 단순화해서 얘기하면 자본주의엔 세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미국이나 남미 식으로 규제없이 마음대로 돈벌어 잘되는 자는 잘되고 안 되는 자는 안 되고, 그래서 사회가 불안해지면 브라질처럼 잘되는 자들은 멀리 바깥으로 나가 담장 높이 치고 방탄차 타고 다닌다. 최근에 가봤더니 헬기장이 많이 생겼더라. 왠고 했더니 방탄차도 무서워 이젠 헬기 타고 다닌다고 하더라. 그런 식으로 살든지 아니면 옛날 일본 한국처럼 시장 경쟁 자체를 어느 정도 억눌러서 소농 소매상 보호하고 사회안정을 유지하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결국 유럽식 보편복지밖에 없다. 미국 남미 식은 땅이 없어서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토지개혁 등을 거치면서 한국사회는 평준화되고, 평등의식이 강해졌다. 노예까지 둔 세월을 수백년 보낸 남미 나라들처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일본 한국의 옛날 모델이 꼭 나쁜 건 아닌데, 그래도 그게 안 된다고 하면 유럽식 보편복지정책밖에 더 있나.

요즘엔 진짜 상층부는 5%가 아니라 1%라고 하던데 그들에겐 이런 세상이 얼마나 좋겠나. 노동자들에게 권익이 없으니 조금만 줘도 되고 좋은 건 자기들만 실컷 누리고. 브라질에 초청받아 가서 한 대학 근처의 쇼핑몰에서 밥을 먹었는데 한 교수가 그곳에 버스가 들어온다며 아주 착한 곳이라고 하더라. 브라질에선 잘사는 족속들이 ‘잡것들’ 들어온다고 버스도 못 들어오게 한단다. 게다가 걸핏하면 총 들고 설쳐야 하고. 그런 게 좋으면 그쪽으로 가야지 뭐. 아무리 그래봤자 그쪽 주류사회에 우리 동양인 얼굴을 하고 가면 2등 취급밖에 안 해준다.

-신자유주의라는 게 서구의 독과점적 절대우위가 유지될 때는 별 문제 없이 굴러갔는데, 중국 인도 등 다른 쪽에서 유럽 독점에 대한 대항세력, 경쟁세력이 등장해 서구쪽 지분이 적어졌다. 그런 속에서 기존의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가 신자유주의라는 얘기에 대해선?

=그런 요소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한국 소득수준 이상이 되는 나라라면 잘 나눠 잘 쓰면 모두 함께 인간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지금 이른바 선진국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데 가진 자들 마음이 좁아져서 제 가진 것 나눠주기 싫어 그렇게 된 면도 있다고 본다.

-지구 생태적인 측면에서도, 사회적 대타협, 다수의 동의를 전제로 한 보편복지가 과도한 소비와 지구자원 고갈 등을 감안해서 치명적인 소비수준을 낮추고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다수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필수코스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북유럽 쪽 나라들이 생태환경 분야에서 선구적인 게 우연이 아니다. 이 책에서도 얘기했지만 미국이 부자인 것 같지만 노동시간이 유럽에 비해 10~30%나 길다. 결코 생산성 높은 나라가 아니다. 가난한 나라들엔 힘들겠지만 어느 정도 사는 나라들은 노동시간 줄이고 자기계발에 더 투자하거나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게 더 질 높고 환경친화적인 삶이 아니겠나. 그러자면 복지제도가 잘 돼 있어야 한다. 미국 한국처럼 아둥바둥 경쟁하는 체제에서 나 홀로 일 덜하겠다는 건 불가능하고, 그건 자기 살 파먹는 일이다. 세계 최장 노동이라는 게 자랑인가, 부끄러운 일이지. 그렇게 일 많이 해서 돈 더 벌면 뭐 하나, 그걸 즐길 수도 없는데. 유럽에선 비교적 일 많이 한다는 영국도 연간 기본 4주 휴가고 주말까지 붙이면 사실상 6주 휴가다. 프랑스는 그렇게 하면 사실상 8주 휴가다. 돈 버는 것도 편히 살자고 하는 건데. 그런 나라들 망했나. 연휴 쉬게 하면 나라 망할 듯이 떠들더니 진짜 망했나?

-장 교수는 대학 82학번이다. 조국 서울대 법대 대학원 교수, 주사파에서 뉴라이트로 변신한 김영환씨 등도 같은 학번이다. 그 학번엔 국회의원도 많다. 장 교수가 진보적 대안을 생각하는 사람중에서 힘이 있고, 법 쪽은 조국 교수, 좀 다른 방향에서 김영환씨 등이 우리사회 좌우, 보수진보 포괄해서 그 학번 중 눈에 띄는 존재들이다.

=우연이겠지. 그 학번대들이 굉장히 독특한 경험을 한 건 있다. 1980년대 초반 학번이 대학 들어가서 의식 깨고 할 무렵에 우리나라 정치는 암흑기였다. 사복전경과 함께 강의실에 앉아 수업 듣고 도시락도 같이 까먹었고 강제징집에 고문에…. 가장 격렬한 시대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81~85학번들이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특별한 건 아니겠고.

-재벌이나 한국식 성장모델에 대한 장 교수의 생각과 산자부장관을 지낸 부친 등 집안 내력을 연결지어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부친은 김대중 정부 때 잠깐 장관을 지냈다. 재무부 공무원을 한 부친의 박정희 정권시절 최종 이력은 국세청 차장이었다. 그리고 주택은행장을 하다 전두환 정권 때 쫓겨났다. 그 뒤 12년 정도를 세무사 자격증을 갖고 서울대서 세무 시간강사도 하다가 1992년에 전국구 국회의원이 됐다. 2001년이던가 7개월 정도 잠깐 장관을 했다. 전라도 출신에 야당집안이라고 구박도 당했다. 부친은 세무공무원이어서 산업정책과는 무관하다.

그리고 나이 40, 50대면 그런 가족관계로 인한 편견 같은 건 극복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한국에 있을 땐 우리 사회를 주로 부정적으로 보다가 나와서 보니 자꾸 남들과 비교하게 된다. 우리가 성장을 워낙 잘 해서 그게 별 거 아닌 걸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실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우리처럼 일자리 늘고 여성들도 사회진출하고 평균수명 늘어나고 한 게 다른 나라들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경제성장과 삶의 개선이 1백% 상관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기초 없인 또 안 된다. 일부선 인권탄압 등을 얘기하며 경제발전도 부정적으로 보지만 그렇게만 볼 순 없다. <사다리 걷어차기>를 쓰면서 선진국들 과거가 어땠나 봤더니, 우리나라 과거는 오히려 천사였다. 지금 부자나라들 옛날은 노예, 아동노동, 식민지배, 1주일 노동시간 평균 80시간 이상 등 지옥이었다. 한국 산업화는 그에 비하면 엄청 착했다. 물론 다 잘했다는 얘긴 아니다.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안에만 있으면 잘 안 보인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고 조사하고 직접 현지에 가보기도 하는 게 내 직업이다. 한국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주요 서비스 중 하나가 한국에 살면서 바빠 다른 일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직업상 발굴해낸 것들을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항상 고향과 조국을 생각한다.

케임브리지(영국)/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 장 교수 근황

남미서 초청 잦아…“주제 맞으면 대상 안가려”

케임브리지에서 생활한 지 25년째. 1963년생인 장하준 교수는 23살 때인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그해에 케임브리지대로 유학와서 ‘경제발전론’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여기 교수가 됐다. 지금은 아내, 딸(15), 아들(10)과 함께 산다.

강의는 1주일에 평균 네댓시간. 대학원에서 하는 경제발전론인데, 다른 교수들과 서로 강의 품앗이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것 하나만 가르친다. 어떤 때는 영국 바깥으로 1주일씩 나가기도 하고, 런던 등지의 회의에도 참석한다. 특히 지난 몇달은 책 때문에 영국,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요즘엔 미국에서 책이 나와 그쪽 잡지 등과의 인터뷰 등으로 바빴다. 중세풍의 케임브리지 시내 중심가 대형서점 ‘히퍼스’(heffers) 경제서적 코너엔 장하준 선반이 따로 있고 장 교수가 누구와 토론을 벌인다는 정보를 알리는 판도 세워져 있었다.

그에겐 여러 나라 정부 관계자나 시민, 학계 등이 종종 초청장을 보내온다. “난 어디든 내가 다루는 주제와 맞으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초청에 응해 강연도 하고 보고서를 써주기도 한다. 정부나 사회·학술단체, 기업 등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그는 남미에 자주 가는데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에서 그에게 관심이 많다. 지난 연말 아르헨티나 집권당원들을 상대로 강연하고 장관들도 몇명 만났다. 지난해 4월엔 에콰도르 산업자원부와 산업발전계획을 놓고 토론했다. 영국에선 원조를 담당하는 해외개발부, 자문교수단이 된 특허청, 기업지배구조 논의에 참여한 상공부 등이 주로 부른다.

김대중 정권 때 산자부 장관을 지낸 장재식씨가 그의 부친이다. 미국에서 공부한 동생 장하석(44)씨가 1995년 런던대 과학철학 교수로 왔다가 지난해 10월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됐다. 케임브리지대 최초의 한국인 형제 교수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 장하원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사촌형제들이고, 이 두 사람의 큰누나가 장하진 전 여성부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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