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무대 제롬 벨은 뭘 상상했을까?
올드팝송 <오늘밤(Tonight)>으로 시작한다. 공연은 시작했지만 조명은 켜지지 않는다. <이곳에 햇볕을(Let the Sunshine In)>이 흐르면서 무대가 밝아진다. 극장의 밤이 음악따라 한낮으로 바뀌었다.
열심히 시디음반을 갈아끼우는 디제이만 보인다. 여전히 텅 빈 무대는 관객에게 불편하다. 더 긴장한다. 게다가 소문만 무성했던 프랑스 현대안무가 제롬 벨의 첫 내한공연(지난달 27일)이 아니던가.
<함께(Come Together)>에 맞춰 20명의 배우가 무대로 나온다. 지루한 표정으로 관객을 꼬나본다. 할머니, 반바지 차림의 청년, 부츠를 신은 섹시한 여성도 있다. 모두 길에서 마주칠 이다. <춤을 추자(Let’s Dance)>가 나오니까 저마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화장실에서나 출 어깨춤, 엉덩이춤을 춘다. <난 움직이는 게 좋아(I like to Move it)>가 흐르는 내내 한 여인은 옷을 입고벗기를 되풀이하고, 어떤 여자는 머리를 너저분하게 턴다. 한 남자는 불룩한 배를 반복해 흔든다. 음악은 <발레리나 걸>. 남자들 떨떠름한 표정으로 사라진다. 남은 여성들 발레도 ‘화장실용’이다. 순식간에 관객 모두 관음증 환자가 되고 자지러진다.
18곡 익숙한 팝송의 추억이 고스란히 배우의 몸짓으로 되살아난다. 가사 명령과 춤의 1:1 단순대응이 아니다. 소리와 춤의 원형질이 대화하는 듯. 그 대화를 배우들이 엿듣고, 관객이 엿보는 셈.
눈대목일 존 레넌의 <상상(Imagine)>. 다시 또 불이 꺼진다. 아무 것도 없다. 관객은 뭘 했을까. 텅 빈 무대를 상상하고 갑자기 배우가 나오지는 않을까, 다음 노래는 뭘까 상상한다. 배우는 관객의 표정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그럼 제롬 벨은 뭘 상상했을까?
그저 음악만 들었는데 관객들이 열광한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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