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문동환 목사, 백기완 소장.
■ 문동환 목사 ‘떠돌이 목자의 노래’ 온세상 떠돌이의 ‘깨달음’ 소망하며 평생을 진보 신학자로, 사회운동가로 살아온 문동환(88·사진) 목사가 회고록 <떠돌이 목자의 노래-문동환 자서전>(삼인)을 탈고했다. 책에는 일제강점기 민족운동과 기독 선교의 중심지이던 북간도 명동촌에서 나고 자란 어린 시절부터 1991년 4년간의 짧은 정치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가 통일운동을 이어가기까지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1960~80년대 반독재운동의 메카로 자리잡았던 한신대학을 함께 만든 이야기, 1976년 유신정권의 긴급조치를 비판한 3·1민주구국선언으로 인한 투옥과 옥중생활,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위원회 활동,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한국 현대사가 요구했던 시대적 화두의 한가운데에서 살아온 이의 자서전은 낱낱이 그대로 역사의 중요한 기록이다.
〈떠돌이 목자의 노래〉
이주노동자 문제 고민…“더불어 살려면 꼭 해결”
그는 그즈음 신학에서 교육으로 나아간다. “해방 직전에 간도 만보산이라는 곳에서 초등학교 선생을 했어요. 떠돌이 농민들이 사는 곳이었어요. 춥기가 이만저만 아니었죠. 아이들 얼굴이 언 감자 같았어요.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피는 것을 보고 싶었어요.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도무지 웃지를 않아요. 그런데 석 달째, 한 아이가 방긋 웃어요. 돌아봤더니, 봄 민들레처럼 아이들이 웃고 있잖아요. 그 뒤론 아이들 변하는 게 놀라웠어요. 아픔에 가까이 가서 나를 주면, 거기서 뭔가 창출된다는 겁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같이했던 숱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회고록은 3·1민주구국선언으로 문익환·안병무 목사, 문정현 신부, 김대중 전 대통령 등과 함께 구속되어 서울구치소로 끌려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6·15 선언을 하는 걸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며 미친 듯이 춤을 추었어요.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 북조선이 살아야 우리도 사는 겁니다. 6·15가 그런 정신이라고 난 믿어요. 미국 내 동포들에게 이 정신을 알리고 확산시키고자 평화통일 전선에 힘을 보탰지요.” 그는 지금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체제로 말미암은 이주노동자 문제를 천착하고 있다. 갈수록 뿌리뽑히고 가난해지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를 꿰뚫는 화두는 ‘떠돌이 신학’이다. ‘떠돌이’는 노동자·농민 등 민중 안에도 어쩌면 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노동자 가운데서도 비정규직이 밤낮 밀려나잖아요.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은 이주노동자 문제를 푸는 데서 나와요. 지금 온세계의 떠돌이들도 점점 소망이 없음을 알아가고 있어요. 때가 되면 집단적인 ‘각’(깨달음)이 생겨요. 집단적인 ‘각’은 집단적인 ‘단’(끊음)을 해요. 그것을 끊고 새것이 나와요. 역사는 그렇게 발전합니다.” 글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백기완 소장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예전 피 끓던 청춘들, 지금은 어디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해방사상 정리 ‘절박감’…“죽기살기로 버텨” 고유명사를 제외하곤 모든 어휘를 순우리말로 풀어쓴 대목 또한 인상적인데, 그중에는 ‘맞대’(대답), ‘고칠데’(병원), ‘오랏꾼’(경찰) 처럼,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는 말들도 있지만 ‘랭이 날래 듬직’(민중해방 사상), ‘검뿔빼꼴’(제국주의)처럼 의미를 종잡을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사용하지 않아 잊혀진 우리말을 찾아낸 것도 있지만, 신조어나 전문용어의 경우엔 백 소장이 직접 만든 것도 적지 않은 탓이다. “그늘에 가려지고 땅에 묻히고, 그런 무지랭이 말들이 엄청나게 많아. 우리말 사전이란 게 있지만 바닷가에서 모래 한 줌 쥔 것처럼 부실하기 짝이 없어. 나는 그런 말들을 찾아내고, 없으면 빚어내려고 했어.” 근황을 묻자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버티는 중”이라고 했다. 눈뜨면 들려오는 소식이 못내 불편하고 못마땅하지만, 나이를 핑계 삼아 뒷방에 물러앉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틈날 때마다 글을 쓴다고 했다. 우리 옛이야기 안에 담긴 민중해방 사상의 뿌리를 남은 생애 동안 정리해둬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사실 우리처럼 옛날얘기를 좋아하는 민족이 흔치 않아. 신화, 전설, 설화 그런 거. 사랑방에 모여 나누던 이야기들. 나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영영 사라져버릴 거 같단 말이지.” 그는 자신의 책을 지금의 10대나 대학생 세대들보다는 20~30년 전 거리를 함께 누비던 중·장년 세대가 읽어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들은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나 <장산곶매 이야기> 등의 책을 통해 ‘운동가 백기완’보다 ‘이야기꾼 백기완’을 먼저 만난 세대이기도 하다. “그때 내 이야기를 듣고 발을 구르던, 내 ‘옥색치마’를 읽고 눈물 흘리던 젊은이들, 지금 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거야? 우리 이 책 읽고 같이 소리 내어 엉엉 울어보자 이거야.” 글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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