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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여, 다시 너를 부른다
“자유의 넋으로 살아, 벗이여 고이 가소서, 그대 뒤를 따르리라.”(벗이여 해방이 온다)
1986년 분신한 고 김세진·이재호의 넋을 기린 이 노래는, 이들과 대학 동창인 윤선애씨의 애잔한 목소리에 실려 듣는 이들을 애끓게 했다. 이를 작사·작곡한,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출신의 이성지(본명 이창학·42)씨가 자신이 만든 ‘민중가요’들을 앨범으로 묶었다. <레미니센스 오브 80’(80년대에 대한 향수)>다.
“온 정성을 쏟아 빚은 노래들을 스스로 ‘이 정도면 됐다’ 할 정도로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만들 때의 감정과 고민이 담기도록 원곡의 느낌을 살렸죠. 이 노래들이 지금도 같은 의미로 다가가진 않겠지만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면 이 작업이 시간 낭비는 아닐 거예요.”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출신
지금은 과학학원 원장
“반추가 살아가야 할 길에 이정표” 윤씨를 비롯해 김창남씨, 원동욱씨, 김영인씨 등 이씨가 속했던 ‘메아리’의 선후배들과 김은희씨, 김영남씨 등 민중가요 진영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흔쾌히 목소리를 빌려줬다. “미술 평론가, 주부, 번역가, 회사원…. 하는 일은 다 다르죠. 노래 부르지 않은 지 꽤 된 사람들도 있는데 대부분 응해줬어요.” 역사적 무게로 묵직한 ‘부활하는 산하’, 망월동 묘역에서 울던 기억을 담은 ‘망월동, 1993년 여름’, 제주 4·3항쟁을 노래한 ‘한라산’은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장엄함을 살렸다. “‘낡은’ 감수성은 낡은 대로, 유치한 건 유치한 대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해야겠죠. 반전가요와 포크에 뿌리를 둔 노래들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야 대중음악도 다양해지죠.” 그렇다고 이 앨범에 그의 옛 자취만 담겨 있는 건 아니다. 미국 유학시절 보고 들은 그곳 한국인들의 지난한 삶을 노래하고(눈물로 피리니),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며 겪은 혼란을 잔잔하게 그리기도 한다(비 오는 날). 최근 곡에 가까워질수록 개인적인 사색과 관조의 색깔이 깊어진다. ‘하늘’에선 “알 수 없는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이럴 땐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바라봐”라며 신바람까지 보태 기타를 튕긴다. 하지만 옛 노래나 요즘 곡이나 뼈대를 이루는 정조는 닮은 꼴이다. “꿈 꾸고 살고 싶을 뿐이에요.” 그의 진혼곡들은 슬프게 울리되 절망하지 않는다. “자기를 깎아내리는 우중충함이 아니라 희망이 있어 흘리는 눈물을 그리고 싶었죠.” 올해 만든 ‘신곡’ 에서 그는 “다시 푸르를 하늘 세상 꿈꾸는 어리석은 희망이라도”(언젠간)라고 노래한다.
그는 감리교청년회 전국연합회에서 노래패 활동을 하다 “무언가 쌓아 가고 싶어” 1987년 미국으로 떠났다. 박사 학위를 딴 뒤 10년만에 돌아왔지만 전공인 물리학으로 돈 벌이하는 게 녹록치 않았다. 대학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생활비에 보탤 겸 시작한 학원 강사 일이 생업이 됐다. 지금은 서울 대치동에 있는 과학학원 원장이다. “잘 되는 편”이라고 피식 웃던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데도 여전히 ‘노래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면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좀더 나은 세상을 향한 목표가 있던 시절, 그 20년에 대한 반추가 앞으로 살아가야할 막연한 길에 이정표가 되어주지 않을까요?” 이 전혀 상업적이지 못한 앨범을 구하려면 그의 홈페이지(leeseongji.com)에 접속하면 된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한겨레 21>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금은 과학학원 원장
“반추가 살아가야 할 길에 이정표” 윤씨를 비롯해 김창남씨, 원동욱씨, 김영인씨 등 이씨가 속했던 ‘메아리’의 선후배들과 김은희씨, 김영남씨 등 민중가요 진영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흔쾌히 목소리를 빌려줬다. “미술 평론가, 주부, 번역가, 회사원…. 하는 일은 다 다르죠. 노래 부르지 않은 지 꽤 된 사람들도 있는데 대부분 응해줬어요.” 역사적 무게로 묵직한 ‘부활하는 산하’, 망월동 묘역에서 울던 기억을 담은 ‘망월동, 1993년 여름’, 제주 4·3항쟁을 노래한 ‘한라산’은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장엄함을 살렸다. “‘낡은’ 감수성은 낡은 대로, 유치한 건 유치한 대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해야겠죠. 반전가요와 포크에 뿌리를 둔 노래들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야 대중음악도 다양해지죠.” 그렇다고 이 앨범에 그의 옛 자취만 담겨 있는 건 아니다. 미국 유학시절 보고 들은 그곳 한국인들의 지난한 삶을 노래하고(눈물로 피리니),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며 겪은 혼란을 잔잔하게 그리기도 한다(비 오는 날). 최근 곡에 가까워질수록 개인적인 사색과 관조의 색깔이 깊어진다. ‘하늘’에선 “알 수 없는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이럴 땐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바라봐”라며 신바람까지 보태 기타를 튕긴다. 하지만 옛 노래나 요즘 곡이나 뼈대를 이루는 정조는 닮은 꼴이다. “꿈 꾸고 살고 싶을 뿐이에요.” 그의 진혼곡들은 슬프게 울리되 절망하지 않는다. “자기를 깎아내리는 우중충함이 아니라 희망이 있어 흘리는 눈물을 그리고 싶었죠.” 올해 만든 ‘신곡’ 에서 그는 “다시 푸르를 하늘 세상 꿈꾸는 어리석은 희망이라도”(언젠간)라고 노래한다.
그는 감리교청년회 전국연합회에서 노래패 활동을 하다 “무언가 쌓아 가고 싶어” 1987년 미국으로 떠났다. 박사 학위를 딴 뒤 10년만에 돌아왔지만 전공인 물리학으로 돈 벌이하는 게 녹록치 않았다. 대학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생활비에 보탤 겸 시작한 학원 강사 일이 생업이 됐다. 지금은 서울 대치동에 있는 과학학원 원장이다. “잘 되는 편”이라고 피식 웃던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데도 여전히 ‘노래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면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좀더 나은 세상을 향한 목표가 있던 시절, 그 20년에 대한 반추가 앞으로 살아가야할 막연한 길에 이정표가 되어주지 않을까요?” 이 전혀 상업적이지 못한 앨범을 구하려면 그의 홈페이지(leeseongji.com)에 접속하면 된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한겨레 21>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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