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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인문학 열풍, 실업계고교에 불어라

등록 2009-07-24 19:20

정윤수 문화평론가
정윤수 문화평론가




정윤수의 문화 가로지르기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일 원주정보공고를 방문하였다. 국내 유일의 의료기기 마이스터고교로 선정된 학교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무분별한 대학 진학(진학률 83.8%)으로 야기되는 사교육비 고통과 청년 실업 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핵심과제”라고 언급하면서 “모든 사람이 대학 가는 것보다 마이스터고교에 들어가길 원하는 시대가 몇 년 안에 온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방문은 이 고교의 재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될 것이 틀림없는데,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한두 가지 생각할 만한 것을 제공한 방문이기도 했다.

우선 이 대통령 자신이 ‘무분별한 대학 진학’의 좋지 않은 경우를 남겼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자녀들의 명문 사립초교 입학 때문에 다섯 차례나 위장 전입한 사실이 있음을 시인한 바 있다. 이에 대하여 당시 보수 언론도 사설을 통해 ‘그는 왜 진실 앞에 솔직하고 당당하질 못하는가. 설령 몰랐었다 해도 폭로 직후 우선 사실을 확인한 뒤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했어야 하지 않는가.’(중앙일보) 하고 비판한 바 있다. 마이스터고교 방문에 대해서도 동아일보 ‘김순덕 칼럼’은 ‘아들딸 누구도 상고나 공고에 보내지 않았다. 자녀의 좋은 학교 진학을 위해 위장전입을 한 일도 있다.’고 썼다. 이명박 대통령은 적어도 공직에 나서기 전까지는, 저 70, 80년대의 이른바 ‘특권층 특례 특혜’의 한 사례였던 것이다.

그런데 좀더 진지한 측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마이스터고교 방문과 발언은 신중하게 판단해볼 여지가 있다. 마이스터고교는 글로벌 기술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로 학비 면제와 졸업 후 군 입대 4년 연기 등의 혜택이 있다. 이와 별개로 특성화고교도 있다. 만화, 요리, 영상, 관광, 멀티미디어, 원예 등을 말 그대로 ‘특성화’한 고교다. 사실 이 모든 형태는 ‘전문계 고교’, 그러니까 실업계 고교의 변화와 모색의 한 과정이다. 인문계로 전환하는 곳도 있다. 지난해 말 집계로 전국의 전문계고는 697개인데 10년 전보다 65개가 줄었고, 이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예정이다.

이 다양한 모색들은 실업계 고교의 현실이 아직은 여의치 않다는 점을 반증해준다. 몇몇 학교가 마이스터고교나 특성화 고교로 순조롭게 전환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600개가 넘는 실업계 고교가 존재한다. 이 일반 실업계 고교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이 자칫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소수의 고교에 대비하여 줄어든다고 하면 이 또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일반론과 더불어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은 실업계 고교야말로 ‘인문학 공부’의 가장 진지하면서도 낮은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의 ‘인문학 열풍’은 비교적 여유가 있는 대기업 경영자에서 여러모로 불편한 처지에 있는 재소자나 장애인들까지 폭넓게 펼쳐지고 있는데, 그 한 대상으로 반드시 실업계 고교 재학생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실업계 고교를 마친 후에도 대학에 진학하거나 서태지처럼 고교 때의 공부와는 전혀 다른 길을 모색하여 살아갈 수 있지만, 평범한 상식으로 볼 때 실업계 고교를 마치고 나면 이른바 ‘산업 현장’으로 취업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여겨진다. 이 경우 실업계 고교 학생들이 인류의 역사와 오늘의 삶과 미래의 세계를 풍요롭게 성찰할 수 있는 학습의 기회는 오로지 고교 재학 시기밖에 달리 없다. 만약 실업계 고교 학생들이 졸업 이후 곧바로 일터로 취업하여 나간다면 그들이 정치, 역사, 문화, 평화, 생태, 인권 등 소중한 주제를 안정적으로 배울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에 살벌한 생존의 현장으로 걸어가야만 하는 학생들이다. 그들과 함께 인간적 삶과 가치를 깊이 배우고 생각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오늘의 고교 현실은 인문계 고교에서도 이런 것을 품위 있게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입시 지옥의 긴 터널에 갇혀 있다. 그럼에도 인문계 학생들은 다행히 그 터널 끝에 대학이라는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실업계 고교 학생들은 적어도 학제상의 목표로 볼 때 고교 재학이 마지막 배움의 시간이다. 그래서 제안하건대, 최근 들어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와 전국의 대학들 그리고 뜻있는 시민단체들이 다양한 방식의 ‘인문학 강좌’를 의욕적으로 개설하고 있거니와 그 대상에 반드시 실업계 고교 학생들을 포함하자는 것이다. ‘문화 자본’의 심각한 격차를 줄이는 데 이만한 일이 달리 없을 것이다.


재소자나 장애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가 그렇듯이, 아마도 처음에는 학생들이 낯설어하고 자신의 미래와는 무관한 ‘교양 강좌’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로 ‘낮은 곳’을 지향하는 희망의 인문학이라고 한다면 장차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터에서 살아가게 될 실업계 고교 학생들과 진지하고도 자상하게 만나야 한다. 좀더 인간적인 사회를 향한 진지한 배움의 열망을 ‘희망의 인문학’이라고 줄여 말할 수 있다면 실업계 고교 학생들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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