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해체된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마지막 공연을 하고 있다. 박종찬 기자
해체된 국립오페라합창단 마지막 무대
7년간 70만원 연습생, 꿈도 자부심도 ‘강제해체’
유례 없다며, 예산 없다며 예술마저 ‘코드 행정’
7년간 70만원 연습생, 꿈도 자부심도 ‘강제해체’
유례 없다며, 예산 없다며 예술마저 ‘코드 행정’
한겨레 시사다큐 <한큐>가 다시 ‘큐!’했습니다. <한큐>는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뉴스의 현장과 진솔한 삶의 현장으로 카메라가 출동합니다. ‘사회와 사람’이 묻어나는 영상으로 우리들의 ‘오늘’을 요모조모, 촘촘하게 비춰드리겠습니다.
〈한겨레 시사다큐〉‘해체결정’ 국립오페라합창단 마지막 무대
“그리워 그대 노래가. 그대 내 가슴 속 푸른 사람아. 그리워 그대 노래가. 나를 위해 부르던 그 노래가. 나를 위해 부르던 그 노래가~”
무대도 없다. 관객도 없다. ‘사랑’과 ‘축배’의 노래만 흐른다. 시대의 역설일까. 노래의 역설일까.
꽃샘 추위가 맵짠 서울역 광장. 여전히 ‘겨울’이 윙윙거리는 아린 바람에 ‘촛불’들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 앞에 두툼한 점퍼 차림의 남녀 성악가들이 ‘향수’ ‘사랑합니다’ ‘축배의 노래’ 등 귀에 익은 오페라곡을 합창했다. 횡뎅그레한 광장만이 화답했다.
꽃샘추위 서울역 광장, 촛불도 흔들리고 노래도 흔들리고
화려한 조명도 뜨거운 갈채도 없었다. 지난달 31일자로 해체된 국립오페라합창단의 마지막 무대는 그렇게 광야였다. 그러나 현실로 다가온 해고에도 합창단원들의 희망 목소리는 식지 않았다. 소프라노 조은혜(32)씨는 “해고가 실감나지 않는다”며 “다시 복직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테너 우필명(34)씨도 “우리가 해고되는 마지막 날이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노래밖에 없다”며 차분하게 웃었다. 이들의 마지막 공연에 눈물을 흘리는 이들은 따로 있었다. 이들을 응원하려고 촛불을 든 해고 노동자들이었다. 성아무개(40·서울 강남구 개포동)씨는 “해고 첫날 캄캄했던 기억이 생각나 가슴이 아팠다”며 “저 사람들 내일 당장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울먹였다. 해고되기 전까지 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은 어디서든 노래를 불렀다. 지난달 25일 찾은 서울 서초동의 오페라합창단 연습실. ‘구호 대신 노래하고 싶다’는 대자보에 단원들의 절실한 심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연습실에 단원들이 한두 사람씩 모여들었다. 2명만 모이면 바로 노래다. 누군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면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화음을 맞췄다. 테너 최재혁(30)씨는 “노래를 하면 위로가 되고 무대에 서면 힘이 난다”며 “우리는 음악이 없으면 하루도 못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평생 무대 위에서 노래만 부를 것 같던 그들이 이제 ‘거리의 투사’가 되어간다. 낯설던 팔뚝질도, 투쟁가요도 이제 익숙한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한 합창단원은 연습실 대자보에 이런 글을 붙여놓았다. “부당해고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남을 이해하고, 다른 이가 처한 현실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유인촌 장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거짓말 발단은 지난해 7월 이소영 단장이 새로 부임하면서부터였다. 넉 달 뒤 이 단장은 “오페라합창단을 해체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2002년부터 직제규정에 없는 오페라합창단을 운영하면서 인건비를 너무 많이 지급했고, 국립합창단을 활용해 충분히 오페라 공연이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7년 동안 ‘70만 원 연습생’으로 지내면서 “정식 합창단원이 될 수 있다”는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연간 60여 회 크고 작은 오페라 공연을 소화하면서 명실공히 세계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성과와 ‘국립’이라는 자부심도 한순간에 무너졌다.
김소영 단원은 “성악을 전공한 것부터, 공부를 한 것부터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성악가로서 30년 삶이 순식간에 부정 당했다. 노동조합은 삶의 터전인 무대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오페라합창단 해체의 이유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예산은 올해 18%나 더 늘었는데 예산 탓을 둘러댔다. 7년 동안 오페라단이 필요해서 합창단을 운영해놓고 이제 와 ‘규정 타령’을 하니 기가 막혔다.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은 “외국에는 오페라합창단 자체가 없다”고 단정했다. ‘국립합창단과 합치겠다’는 방안은 더 현실성이 없었다. 순수 합창과 오페라 합창은 음악적 영역이 다를 뿐 아니라 국립합창단이 1년에 30여 회의 자체 공연을 하면서 60 회 넘는 오페라합창단의 공연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라 안팎에서 오페라합창단 해체를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문화예술계 인사를 포함해 1만 3천여 명이 ‘해체 반대’에 서명했다. 프랑스에선 ‘바스티유 합창단’,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지지 서명이 날아들었다. 오페라 <나비부인>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 소속 성악가와 제작자들이 오페라합창단 집회를 찾아 “오페라합창단은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존재하며, 이탈리아에만 13개가 있다”고 증언했다. 유 장관의 말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정은숙 전 단장 희생양으로 꼼수에 꼼수 거듭 다급해진 쪽은 문광부였다. 3월27일 문광부 박순태 예술국장이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박 국장은 “사회적 일자리 사업으로 민간업체가 운영하는 새로운 오페라합창단을 만들 것”이라며 “기존 단원도 오디션을 통해 새 합창단에 신입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밝혔다. 문광부의 발표는 곧바로 반발에 직면했다. 단원들은 “규정에 없어 해체하겠다더니 민간 합창단을 만들어 우리 보고 다시 들어오라는 말이냐”고 고개를 저었다. 브리핑에 참석한 기자들조차 “꼼수로 여론을 무마하려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오페라합창단을 해체하려는 속셈이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으면서 정치적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유 장관이 산하 단체장 인사를 놓고 ‘좌파척결’ 발언이 한창이던 때 전임 정은숙 단장이 물러났다. 사퇴의 표면적인 이유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화재사건 책임을 물은 것이었다. 그러나 정 전 단장이 문익환 목사의 며느리이자 노사모를 이끈 문성근씨의 형수로 노무현 정부에 가깝다는 것이 교체의 숨은 이유가 아니겠느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진중권 교수는 <오마이뉴스> 기고에서 “국립오페라합창단을 해체하여 정은숙 전 단장의 그림자마저 지워버리겠다는 생각”이라며 “이것은 불필요한 연좌제”라고 일갈했다. 신임 이소영 단장은 정 전 단장과 오페라단에 함께 있을 때 캐스팅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뛰쳐나간 전력도 있다. 이런 이유로 오페라합창단 안팎에서 ‘코드인사의 희생양’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한 단원은 “유 장관이 코드 인사를 내세워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오페라합창단이 희생양이 된 것”이라며 “정치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정치색을 띈 적도 없는 우리가 정치에 영향을 받아 해체될 운명이 되니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생활고에 연습실도 없지만 “단 1%라도 희망이 있다면 끝까지” ‘70만 원 연습생’에서 ‘해고 노동자’ 신분으로 바뀐 지 보름째. 오페라합창단은 여전히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을까? 노조 대외협력부장을 맡고 있는 이정상 단원에게 근황을 물었다. 단원 27명은 여전히 국립오페라단으로 출근투쟁을 벌이고, 국회와 문광부 앞에서 1인 시위도 벌이고 있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촛불문화제의 거리무대에도 선다. 겉으로는 달라진 게 없어보인다. 그러나 다른 해고 노동자처럼 이씨와 동료들도 막막한 생계의 벽과 마주하고 있다. 한 달 70만 원 벌이였지만 그마저 없으니 가정이 있는 단원들은 한푼이 아쉽다. 오페라단이 연습실을 폐쇄해 마음 놓고 노래할 곳도 없다. 이씨는 “막상 길거리에 내몰리니 7년 동안 이런 대우를 받으려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했을까 하는 좌절감이 몰려왔다”며 “음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람이 살아야 하는데 돈에 치여 예술도 사람도 다 죽어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복직을 포기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노래를 포기할 수 없고, 후배들에게 연습생 신분과 해고자라는 꼬리표를 물려줄 수 없다”는 오기는 더 강해졌다.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고 정당하기 때문에 단 1%라도 희망이 있다면 끝까지 싸우겠다.” 예술마저 ‘경제 논리’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정리해고’해버리는 시대, 젊은 예술가들이 설 자리는 차가운 거리밖에 없다. ‘거리오페라합창단’의 ‘사랑합니다’는 오늘도 울려 퍼진다. 연출=김도성 피디 kdspd@hani.co.kr 글=박종찬 기자 pjc@hani.co.kr
화려한 조명도 뜨거운 갈채도 없었다. 지난달 31일자로 해체된 국립오페라합창단의 마지막 무대는 그렇게 광야였다. 그러나 현실로 다가온 해고에도 합창단원들의 희망 목소리는 식지 않았다. 소프라노 조은혜(32)씨는 “해고가 실감나지 않는다”며 “다시 복직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테너 우필명(34)씨도 “우리가 해고되는 마지막 날이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노래밖에 없다”며 차분하게 웃었다. 이들의 마지막 공연에 눈물을 흘리는 이들은 따로 있었다. 이들을 응원하려고 촛불을 든 해고 노동자들이었다. 성아무개(40·서울 강남구 개포동)씨는 “해고 첫날 캄캄했던 기억이 생각나 가슴이 아팠다”며 “저 사람들 내일 당장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울먹였다. 해고되기 전까지 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은 어디서든 노래를 불렀다. 지난달 25일 찾은 서울 서초동의 오페라합창단 연습실. ‘구호 대신 노래하고 싶다’는 대자보에 단원들의 절실한 심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연습실에 단원들이 한두 사람씩 모여들었다. 2명만 모이면 바로 노래다. 누군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면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화음을 맞췄다. 테너 최재혁(30)씨는 “노래를 하면 위로가 되고 무대에 서면 힘이 난다”며 “우리는 음악이 없으면 하루도 못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평생 무대 위에서 노래만 부를 것 같던 그들이 이제 ‘거리의 투사’가 되어간다. 낯설던 팔뚝질도, 투쟁가요도 이제 익숙한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한 합창단원은 연습실 대자보에 이런 글을 붙여놓았다. “부당해고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남을 이해하고, 다른 이가 처한 현실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유인촌 장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거짓말 발단은 지난해 7월 이소영 단장이 새로 부임하면서부터였다. 넉 달 뒤 이 단장은 “오페라합창단을 해체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2002년부터 직제규정에 없는 오페라합창단을 운영하면서 인건비를 너무 많이 지급했고, 국립합창단을 활용해 충분히 오페라 공연이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7년 동안 ‘70만 원 연습생’으로 지내면서 “정식 합창단원이 될 수 있다”는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연간 60여 회 크고 작은 오페라 공연을 소화하면서 명실공히 세계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성과와 ‘국립’이라는 자부심도 한순간에 무너졌다.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 정찬희씨가 3월31일 문화부 앞에서 합창을 하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영상캡처. 김도성피디.
김소영 단원은 “성악을 전공한 것부터, 공부를 한 것부터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성악가로서 30년 삶이 순식간에 부정 당했다. 노동조합은 삶의 터전인 무대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오페라합창단 해체의 이유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예산은 올해 18%나 더 늘었는데 예산 탓을 둘러댔다. 7년 동안 오페라단이 필요해서 합창단을 운영해놓고 이제 와 ‘규정 타령’을 하니 기가 막혔다.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은 “외국에는 오페라합창단 자체가 없다”고 단정했다. ‘국립합창단과 합치겠다’는 방안은 더 현실성이 없었다. 순수 합창과 오페라 합창은 음악적 영역이 다를 뿐 아니라 국립합창단이 1년에 30여 회의 자체 공연을 하면서 60 회 넘는 오페라합창단의 공연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라 안팎에서 오페라합창단 해체를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문화예술계 인사를 포함해 1만 3천여 명이 ‘해체 반대’에 서명했다. 프랑스에선 ‘바스티유 합창단’,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지지 서명이 날아들었다. 오페라 <나비부인>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 소속 성악가와 제작자들이 오페라합창단 집회를 찾아 “오페라합창단은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존재하며, 이탈리아에만 13개가 있다”고 증언했다. 유 장관의 말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정은숙 전 단장 희생양으로 꼼수에 꼼수 거듭 다급해진 쪽은 문광부였다. 3월27일 문광부 박순태 예술국장이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박 국장은 “사회적 일자리 사업으로 민간업체가 운영하는 새로운 오페라합창단을 만들 것”이라며 “기존 단원도 오디션을 통해 새 합창단에 신입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밝혔다. 문광부의 발표는 곧바로 반발에 직면했다. 단원들은 “규정에 없어 해체하겠다더니 민간 합창단을 만들어 우리 보고 다시 들어오라는 말이냐”고 고개를 저었다. 브리핑에 참석한 기자들조차 “꼼수로 여론을 무마하려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해고 통보를 받은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이 3월 25일 오후 서울 세종로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앞에서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 반대’와 ‘부당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거리공연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8월 부임한 이소영 국립오페라단장은 직제규정에 없다는 이유로 지난 2월 합창단을 해체하고 합창단원 전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오페라합창단을 해체하려는 속셈이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으면서 정치적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유 장관이 산하 단체장 인사를 놓고 ‘좌파척결’ 발언이 한창이던 때 전임 정은숙 단장이 물러났다. 사퇴의 표면적인 이유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화재사건 책임을 물은 것이었다. 그러나 정 전 단장이 문익환 목사의 며느리이자 노사모를 이끈 문성근씨의 형수로 노무현 정부에 가깝다는 것이 교체의 숨은 이유가 아니겠느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진중권 교수는 <오마이뉴스> 기고에서 “국립오페라합창단을 해체하여 정은숙 전 단장의 그림자마저 지워버리겠다는 생각”이라며 “이것은 불필요한 연좌제”라고 일갈했다. 신임 이소영 단장은 정 전 단장과 오페라단에 함께 있을 때 캐스팅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뛰쳐나간 전력도 있다. 이런 이유로 오페라합창단 안팎에서 ‘코드인사의 희생양’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한 단원은 “유 장관이 코드 인사를 내세워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오페라합창단이 희생양이 된 것”이라며 “정치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정치색을 띈 적도 없는 우리가 정치에 영향을 받아 해체될 운명이 되니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생활고에 연습실도 없지만 “단 1%라도 희망이 있다면 끝까지” ‘70만 원 연습생’에서 ‘해고 노동자’ 신분으로 바뀐 지 보름째. 오페라합창단은 여전히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을까? 노조 대외협력부장을 맡고 있는 이정상 단원에게 근황을 물었다. 단원 27명은 여전히 국립오페라단으로 출근투쟁을 벌이고, 국회와 문광부 앞에서 1인 시위도 벌이고 있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촛불문화제의 거리무대에도 선다. 겉으로는 달라진 게 없어보인다. 그러나 다른 해고 노동자처럼 이씨와 동료들도 막막한 생계의 벽과 마주하고 있다. 한 달 70만 원 벌이였지만 그마저 없으니 가정이 있는 단원들은 한푼이 아쉽다. 오페라단이 연습실을 폐쇄해 마음 놓고 노래할 곳도 없다. 이씨는 “막상 길거리에 내몰리니 7년 동안 이런 대우를 받으려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했을까 하는 좌절감이 몰려왔다”며 “음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람이 살아야 하는데 돈에 치여 예술도 사람도 다 죽어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복직을 포기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노래를 포기할 수 없고, 후배들에게 연습생 신분과 해고자라는 꼬리표를 물려줄 수 없다”는 오기는 더 강해졌다.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고 정당하기 때문에 단 1%라도 희망이 있다면 끝까지 싸우겠다.” 예술마저 ‘경제 논리’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정리해고’해버리는 시대, 젊은 예술가들이 설 자리는 차가운 거리밖에 없다. ‘거리오페라합창단’의 ‘사랑합니다’는 오늘도 울려 퍼진다. 연출=김도성 피디 kdspd@hani.co.kr 글=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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