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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이사람] 역사속 조선사랑 찾아낸 ‘일본 삼촌’

등록 2009-03-22 18:53수정 2009-03-22 20:58

일본인 작가 다고 기치로(53)씨
일본인 작가 다고 기치로(53)씨
글쓰기로 한-일 벽 무너뜨리는 작가 다고 기치로
우리 문화를 사랑하게 된 외국인들은 흔히 농담처럼 말한다. “아마 전생에 한국 사람이었나봐요.” 최근 한국에서 두 번째 책이자 장편 실화소설인 <야나기 가네코, 조선을 노래하다>(21세기북스 펴냄·박현석 번역)를 낸 일본인 작가 다고 기치로(53·사진)도 똑같은 대답을 했다.

“전생에 3·1 운동을 했던 조선인이어서 그 억울함을 풀려고 다시 한국에 오게 된 거 아닐까요?”

한국도예가와 우정담은 ‘또 하나의…’ 출간
독립 지원한 ‘성악가 가네코’, 실화 소설로

그가 굳이 ‘3·1 운동’과 인연을 짚어내는 것은, 책의 주인공인 성악가 야나기 가네코가 1920년 5월 서울에서 첫 자선독창회를 연 이유가 바로 “3·1 독립운동 실패로 절망에 빠진 조선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가네코의 공연 소식이 실린 당시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고, 그 시절에 예술로 두 나라를 잇고자 했던 일본인이 있었다는 게 놀라워 2년 넘게 자료를 찾고 생존 인물들을 찾아내 취재를 했습니다.”

가네코는 ‘조선 공예를 예찬한 미학자’이자 ‘광화문을 지켜낸 일본인’으로 유명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아내다. 그는 20~40년대 초 남편과 함께 ‘조선민족미술관 설립’을 위해 무료 순회공연을 열기도 하고 요절한 천재 시인 남궁벽을 비롯한 <폐허> 동인들과 교류하며 열정적인 음악활동을 했다. 소설에서 그는, 가네코가 무네요시와 결혼한 때부터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68년 일흔여섯의 나이에 이화여대 강당에서 초청 공연을 하는 장면까지를 감성 넘치는 문체로 그려놓았다.

그가 이처럼 가네코의 삶을 발굴해낸 배경에는 26년 전 그와 한국을 맺어준 2개의 특별한 인연의 끈이 있다. 83년 당시 <엔에이치케이>(NHK)의 신참 프로듀서로서 그는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정착해 일본 도자기 문화의 뿌리가 된 시모노세키에서 ‘한-일 도예가의 교류’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엔에이치케이>의 카메라맨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자주 들었던 “한국이 일본 문화의 뿌리”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 경험이었다.


“그때 방송국 근처에서 야식당을 하던 대구 출신 70대 재일동포 할머니와 친해졌어요. 헤어질 때서야 처음으로 자신의 한국 이름을 알려주던 그 할머니에게 인삼주와 명란젓 같은 음식 맛도 배우고 끈끈한 정 같은 걸 느끼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어요.”

다큐 취재를 위해 찾아간 경기도 이천의 도예가 조성우씨와 만남은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연세대 사학과 출신으로 이조다완의 맥을 잇고자 한평생 외길을 걷고 있는 조 선생님의 순수한 열정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의 따뜻한 인정이 잊을 수가 없었던” 그는 당장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듬해부터 휴가나 연휴 때면 조씨네를 찾았다. 한국말과 글에 익숙해진 어느날 그는 조씨에게 일제 강점기 일본의 만행에 대해 정중한 사과를 했고, 그 때부터 두 사람은 “마음을 연 친구”가 됐다. 그렇게 “손님에서 친구로, 마침내 삼촌으로” 불리며 조씨의 큰아들 결혼식 주례까지 서게 된 그의 이야기는 지난해 6월 <또 하나의 가족>(21세기북 펴냄)으로 묶여 나왔다.

그는 22년간의 프로듀서 시절 자신의 대표작으로 주저없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윤동주, 일본 통치 하의 청춘과 죽음>을 꼽는다. 95년 광복50돌(일본의 종전 50돌) 기념으로 <엔에이치케이>와 <한국방송>(KBS)에서 공동 제작해 사상 처음으로 한-일 동시 방영한 작품이다.

지난해 연말 <야나기 가네코…> 출간 작업을 위해 서울에 온 그는 런던에서 오는 길이었다. 2002년 퇴직하고 문필가로 전업한 그가 굳이 런던에 정착한 이유가 궁금했다.

“특파원으로 3년간 근무했는데, 그 곳에서는 한-일 두 나라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더라구요. 세계 지도를 놓고 런던-서울-도쿄를 잇는 이등변삼각형을 그려보면 한-일 사이의 거리는 정말 짧아요. 가네코와 남궁벽이 그랬듯이 두 나라의 벽을 넘어 진정한 우정을 이을 수 있는 작품을 계속 쓰고 싶습니다.”

그가 구상하는 다음 작품은 ‘일본이 절대 못 따라오는 한국만의 18가지’(가제). “흔히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는 오래전 일본이 잃어버린 것이 있다고들 하지만 오해입니다. 한국에는 일본에 원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푸근하고 깊은 정이 그 하나죠.”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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