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한국, 복합위험사회 진입”

등록 2005-04-21 19:48수정 2005-04-21 19:48

 한국 사회는 이미 각종 재해·재난과 대형사고가 ‘구조화’된 복합위험사회로 진입했다. 이를 분석하는 ‘위험사회론’의 한국적 논의는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97년 구제금융 위기, 2002년 대구지하철 참사 등이 촉발시켰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 사회는 이미 각종 재해·재난과 대형사고가 ‘구조화’된 복합위험사회로 진입했다. 이를 분석하는 ‘위험사회론’의 한국적 논의는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97년 구제금융 위기, 2002년 대구지하철 참사 등이 촉발시켰다. <한겨레> 자료사진.
22일 ‘위험사회와 재난’학술대회

지금 대한민국은 ‘경보’ 공화국이다. 폭설의 기억이 가시기도 전에 대형산불이 발생하고, 어렵게 불을 끈 뒤에는 최악의 황사가 온다. 일시적인 자연재해와 달리 사회적 재난은 아예 우리의 곁에서 물러날 기미조차 없다. 급증하는 자살과 실업률, 급감하는 출산률 등은 한국사회 ‘재난’의 근본을 암시한다.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위험신호와 경계경보가 끊이지 않는다.

서울대 사회학과의 임현진·이재열 교수는 “한국사회가 ‘이중적 위험사회’로 진입했다”고 규정한다. “과거의 전통적 위험과 복합적이고 체계적인 현대적 위험이 동시에 공존하게 됐다”는 것이다. 두 교수는 이런 요지의 공동 논문을 22일 오후 1시부터 서울 혜화동 함춘회관에서 열리는 ‘위험사회와 재난’ 학술대회(서울 내러티브 연구소 주관)에서 발표한다.

서울대 임현진·이재열 교수
울리히 벡 ‘위험사회론’ 적용
국가안보위험은 줄었느나
생태·사회·경제적 위험 급증
7가지 굴레 사회구성원 포위

두 교수는 이번 논문을 통해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주창한 ‘위험사회론’의 이론 틀을 2000년대 한국사회에 새롭게 적용한다. 이들이 보기에,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위험은 “압축적이고도 돌진적인 한국 근대화의 특성을 잘 반영”하는 것이다.

우선 “(계급·계층 간) 사회적 조정의 실패와 높은 위험추구성향, 관료 부패 등이 어우러져 위험을 극대화하는 발전이 이뤄졌다.” 여기에 “전지구적으로 진행된 정보화의 물결과 생태환경오염이 중첩돼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위험사회의 양상을 띠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은 생태적·사회경제적 위험이 동시에 발생하는 ‘현대적 위험사회’의 전형이자,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발생하는 ‘국가안보의 위험’까지 안고 있는 복합위험 국가다.

임·이 교수는 한국사회의 위험요소를 모두 7가지로 분류했다. △지구적 생태위험(지구온난화·삼림파괴 등) △자연적 재해위험(태풍·가뭄·폭우·지진 등) △국가안보위험(전쟁·테러 등) △정치적 억압위험(고문·인권침해 등 국가폭력) △경제적생계위험(사회안정망 붕괴 등) △기술적 재난위험(대형건축물·교통수단 등에서 발생하는 대형사고) △사회적 해체위험(자살·강력범죄·가정 및 학교폭력 등)이 그것이다. 곰곰이 살펴보면, 이들 7가지 범주의 위험이 한국 사회 구성원의 시간·공간을 ‘포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과 장소가 사라진 것이다.

특히 임·이 교수는 “90년대 이후 국가안보위험과 정치적 억압위험이 줄어든 반면, 지구적 생태위험·자연재해위험·기술적 재난위험·사회적 해체위험은 모두 급증했고 경제적 위험도 다시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초고속 성장을 지탱해온 힘 자체가 대규모의 위험요인들을 발생시킨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졸속성장전략이 사회 여러 부문 간의 조정의 실패를 낳고 △그 결과 사회조직원리의 부실화를 초래했으며 △이는 거시적 사회조정기능 약화는 물론 미시적 수준의 개인간 상호작용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두 교수는 “새로운 (국가재난관리)기구를 만들거나 (대국민 안전)캠페인을 벌이는 일회적 처방으로는 위험을 벗어나는 게 불가능하다”고 짚는다. 한국사회의 복합적 위험은 이미 “생활세계 내에 구조화됐고 미시적 수준의 관행이나 관습에 내장돼” 있으며 “사회의 기술체계와 구조물의 성장에 걸맞는 사회적 통합과 도덕적 자원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진단은 있으나 처방은 없다

삼풍 사태뒤 논의 촉발불구 아직도 걸음마
‘붕괴 10년’ 오는 6월 각분야 학술대회 추진

한국이 복합위험사회라는 분명한 진단에 비해 그 ‘처방’이 뾰족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위험사회’라는 이론적 틀로 사회를 분석하는 학문적 시도가 이제 막 걸음마를 뗐기 때문이다.

국내 학계의 위험사회 논의를 촉발한 것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태였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그때까지는 위험문제에 대한 사회과학적 연구가 없었다”며 “당시 삼풍백화점 붕괴의 이면을 분석하려는 사회학자들이 막상 이론적 틀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회고했다.

1997년 초, 번역·출간된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새물결)는 이런 국내 학자들에게 일종의 ‘등대’ 노릇을 했다. 이후 벡을 비롯해 미국 사회학자 찰스 패로우 등이 주창한 위험사회론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됐다. 이는 드리마일 핵발전소 사건(79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참사(86년) 등을 계기로 미국과 유럽에서 위험사회 논의가 등장한 것과 흡사하다.

1997년 구제금융 위기는 한국의 위험사회 논의를 촉발시킨 또 다른 계기였다. ‘삼풍 참사’가 기술적 재난에 해당한다면, 구제금융 사태는 한국사회가 일찍이 겪지 못했던 사회·경제적 재난이었다. 생태적 재난과 함께 신자유주의가 빚어낸 사회·경제적 재난의 위험을 경고한 울리히 벡의 함의도 새롭게 부각됐다.

계간 <사상>이 1998년 가을호에서 ‘위험사회’를 특집으로 다뤘다. 임현진 서울대 교수 등이 <한국인의 삶의 질;신체적·심리적 안전>(서울대 출판부)이라는 단행본을 통해 위험사회론의 한국적 적용을 시작한 것도 1998년이었다.

그러나 2003년 계간 <문화과학> 가을호가 한국의 위험사회론을 집대성한 뒤로는 학계 논의가 잠시 주춤한 상태다. 홍성태 교수는 “한국사회 특수성에 착목한 깊이 있는 연구가 나오지 않아, 구체적인 대안 마련으로 발전되지 않고 있다”며 “단순히 위험사회론의 틀을 차용하는 사회학적 논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제도적 개혁을 염두에 두고 행정학 등 다른 학문 분과의 논의를 끌어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침 삼풍백화점 붕괴 10주년을 맞는 오는 6월에 맞춰 사회학·행정학·건축학자들이 각각 관련 학술대회를 추진하고 있다. 위험사회 한국의 위험사회 논의가 한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