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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서구화로 무너진 ‘독서 공동체’ 재구성 디딤돌 될 것

등록 2008-04-20 23:29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오른쪽)와 김언호 한길사 사장이 16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대산문화재단 회의실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가 문학과 출판 분야에서 이해와 교류의 폭을 넓히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진수 기자 <A href="mailto:jsk@hani.co.kr">jsk@hani.co.kr</A>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오른쪽)와 김언호 한길사 사장이 16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대산문화재단 회의실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가 문학과 출판 분야에서 이해와 교류의 폭을 넓히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김우창 교수-김언호 사장 대담 (동아시아 문학포럼·출판인회의가 나아갈 길)
“‘문화포럼’ 한·중·일 이질적 느낌 없애는데 도움
서로의 차이 인정하며 공통 관심사 논의 적절”


“‘출판인회의’ 책을 통한 문화적 다양성 확보 취지
한국 출판계 역동적…중·일, 국내 역량에 큰 기대”

올 가을 서울에서는 동아시아의 문학인들과 출판인들의 모임이 잇따라 열린다. 9월 29일~10월 1일 열리는 제1회 ‘한일중 동아시아 문학포럼’(문학포럼)과 10월 말 열리는 제7차 ‘동아시아 출판인회의’(출판인회의)가 그것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가 주축이 된 이 두 모임은 정신문화의 핵심이라 할 문학과 출판 분야에서 세 나라 사이의 이해와 교류의 폭을 넓히고 서구 중심 세계 질서에 맞설 공통의 기반을 마련하자는 취지를 지니고 있다. 문학포럼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와 지난달 출판인회의 대표에 취임한 김언호 한길사 사장이 지난 16일 오후에 만나 두 모임의 탄생 배경과 의의, 전망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 김언호 한길사 사장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 김언호 한길사 사장
김언호(이하 호)=과거 한·중·일을 비롯한 동아시아 나라들에는 한자를 바탕으로 한 출판 및 독서 공동체가 존재했습니다. 가령 조선에서 나온 다산의 책이 중국과 일본에서도 유통되고 읽혔던 거죠. 지금은 번역을 통해 많은 양의 책이 오가고 있지만, 과거와 같은 의미의 독서 공동체는 소멸한 지 오래입니다. 출판인회의는 말하자면 과거와 같은 출판 및 독서 공동체를 현대적 버전으로 다시 만들 수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탄생했습니다.

김우창(이하 창)=동아시아 공통의 한자 문화권이 붕괴된 것은 역시 서양 때문입니다. 동시에, 서양이 근대 이전의 전통을 깼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세 나라가 평등해진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겠죠. 이렇게 과거의 공동체가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중국과 일본은 너무도 강한 나라인 데 비해, 한국은 잘살긴 하지만 강대국이 될 것 같진 않기 때문에 다른 두 나라가 경계를 덜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호=출판 쪽만 보아도 서양은 아시아에 비해 훨씬 앞서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미국 등 서구의 출판은 지나치게 상업주의 경향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에 맞서 동아시아 공통의 문화와 전통, 역사, 현실을 책으로 담아내자는 것이 우리 모임의 취지입니다. 서양을 배제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일방이 지배하는 풍토를 지양하고 적어도 책을 통해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것이죠.


창=동아시아 나라들 사이에는 공유하는 것도 많지만 차이도 있습니다. 차이는 차이대로 인정하고, 그 위에서 공통의 관심사를 논의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동안의 서양 중심 문화에서 동양적인 것으로 옮겨 옴으로써 세계를 보는 눈도 바뀌게 될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동시에 서양적인 것 역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겠죠. 이미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서구적 근대화의 바탕 위에서 동양적인 것을 재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호=출판 현실에 관한 한 한·중·일이 같은 처지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연간 4만 종의 신간이 나오고 일본은 8만 종, 중국은 20만 종이 넘는 신간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그 책들이 다 ‘좋은’ 책이냐에 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한편으로는 생태의 측면에서 이렇게 많은 책이 나오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새로 나오는 책이 많은 만큼 사라져 가는 책도 많다는 뜻이 되겠죠. 상업적 차원에서는 많은 책이 소통, 교류되고 있지만, 정말 서로를 알기 위해 필요한 책들은 충분히 유통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출판인회의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창=책을 많이 내는 것과 생태의 관계를 토의하는 출판인 모임은 아마도 서양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이 바로 동아시아적 가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서양에서는 비즈니스와 민주주의가 같이 발전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비즈니스가 너무 커져서 다른 부문을 억압하면 곤란하겠지만, 시장주의는 존중할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각자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게 바로 민주주의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호=문학 쪽을 보자면, 일본은 물론 요즘은 중국 소설도 국내에 대거 번역 출간되고 있는 반면,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은 아직도 미미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높은 수준의 문학은 인문학의 절정이라 볼 수 있을 텐데, 한국에서 그런 수준의 문학이 나오게 할 방도는 무엇이겠습니까? 한국문학은 동아시아에서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창=한국은 에너지가 많은 나라입니다. 그동안은 그 에너지가 정치의식 쪽으로 쏠린 감이 있습니다. 작가들이 작품만 쓸 수는 없는 상황이었죠. 작가들은 민주주의의 요소가 강한 작품을 써 왔고 그것은 우리 사회의 상황에서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그것만 앞세워서는 곤란합니다. 지금은 정치 차원에서 많은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에 에너지를 문학적인 방향으로 돌려서 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작품이 나올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인위적인 노력을 하는 데에는 반대합니다. 세계의 출판사들이 한국 문학작품을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다투어 내려 할 겁니다.

호=노골적으로 노벨문학상을 염두에 둔 듯한 번역 출판과 수상 캠페인 같은 걸 보면 걱정이 듭니다. 독자들 중에서는 출판인회의나 문학포럼에 대해서도 노벨문학상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창=노벨문학상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노벨문학상이 절대적으로 ‘세계 제일’을 가리는 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로는, 운동이나 캠페인을 통해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호=출판계만을 놓고 보면 한·중·일 세 나라 가운데 한국이 비교적 늦게 출발했지만 역동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 행사를 어쨌든 치러 냈고, 파주 출판도시를 성사시킨 걸 보면서 중국과 일본 쪽에서는 한국 출판의 잠재적 역량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저를 비롯한 한국 사무국의 3년 임기 동안 실질적인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이 큽니다. 당장은 동아시아 현대 고전 100선 출간, 편집자 학교, 출판 저작권 완화 같은 일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출판인회의를 국제 법인으로 등록해서 좀 더 책임 있는 기구로 만들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창=아무래도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사업에서 출발하는 게 좋겠죠. 문학포럼에서도 당장의 큰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서로 이질적인 느낌을 없애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작가들도 국내 독자만 생각하고 쓰는 것과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독자를 상정하고 쓰는 것은 다를 겁니다. 그렇게 시야를 넓히다 보면 우리 사회 내부를 보는 눈도 달라질 겁니다. 오에 겐자부로 선생과 제가 대담을 하면서 문학포럼과 같은 형식의 필요성을 제기했을 때에는 일본 내의 평화운동 지원과 같은 이념적 요소도 없지 않았지만, 실제로 일을 진행하다 보니 역시 구체적이고 문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에 세 나라가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들이 ‘나’에서 출발해 인간적 교류를 이어 가다 보면 더 깊은 문화적, 사회적 교류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한일중 동아시아 문학포럼’=2006년 김우창 고려대 교수와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대담에서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지난해 12월 베이징을 방문한 고은·김우창·황석영씨 등 한국 문인들과 중국작가협회(주석 티에닝)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짐으로써 창설되었다. 올 가을 서울 대회를 시작으로 2010년에는 일본에서, 그리고 2012년에는 중국에서 행사가 열리며, 일단 한·일·중으로 시작한 다음 북한과 대만, 몽골, 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을 포괄하는 더 큰 모임으로 발전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아시아 출판인회의’=2005년 가을 일본 도쿄에서 창립 회의를 열었다. 한·중·일과 대만, 홍콩에서 온 출판인과 편집자들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통한 출판 및 독서 운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매년 두 차례씩 회의를 열고 있다. 지난달 일본 교토에서 있었던 6차 대회에서 한길사 김언호 사장에게 3년 임기의 대표를, 창비 고세현 사장에게 사무총장을 맡기는 등 사무국을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올 10월 말 서울에서 제7차 대회가 열린다. 웹사이트(www.eapubc.net)에 한·중·일·영어로 회의 성과가 소개되고 있다.

정리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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