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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성 뚜렷한 경제·물질주의적 우파다

등록 2008-03-21 19:16

이명박 정부로 상징되는 새로운 보수는 계급적 속성이 강한 경제적 우파에 물질주의의 이념이 결합되어 있다는 게 강원택 교수의 분석이다. 지난 1월 대운하 착공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도보 순례를 벌이고 있는 종교인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이명박 정부로 상징되는 새로운 보수는 계급적 속성이 강한 경제적 우파에 물질주의의 이념이 결합되어 있다는 게 강원택 교수의 분석이다. 지난 1월 대운하 착공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도보 순례를 벌이고 있는 종교인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이명박 정부’의 성격은
우리시대 지식논쟁 /

③ 자기 변신한 보수

지난 두 주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와 고세훈 고려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를 ‘신보수’로 규정할 수 있는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조 교수는 새 정부가 시장자율 주의와 전면적인 개방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점에 주목하면서 국가개입 주의와 보호주의를 표방한 박정희 정권과 한 묶음으로 보기 힘들다고 했다. ‘신보수’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고세훈 교수는 보수는 “대외적으로는 국가의 자율성을, 대내적으로는 유기체적 일체성을 추구”한다면서 이런 기준으로 따질 때 박정희 정권이든 새 정부든 보수라고 볼 수 없다는 관점을 보였다.

강원택 교수는 ‘신보수’ 논쟁에서 비켜나 이명박 정부의 이념적 지형 분석에 치중했다. 그는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보수를 “계급적 속성을 띠는 경제적 우파와 물질주의적 가치의 결합”으로 요약했다. 구보수 세력은 냉전 이데올로기에 기반했다면 새 정부는 경제적 요인과 계급적 특성을 지닌 우파적 속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보수 세력의 경우 경제적 우파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으나 새로운 보수에서 상층계급이나 자본가와 같은 계급적 기반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는 또 다른 가치로 물질주의를 들었다. ‘물질주의적 우파’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는 새로운 보수의 등장과 함께 한국 사회의 갈등 지형이 경제적 가치를 둘러싼 좌우의 대결 혹은 물질주의 대 탈물질주의와 같은 한층 보편성을 띤 이념적 갈등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보수는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 질서나 가치를 보존하고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지켜야 할 가치나 대상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항상 조금씩 변화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보수라고 해도 그 속에 담고 있는 내용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둘러싸고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보수성’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것은 예전의 보수가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곧 우리나라의 보수 역시 변했다는 인식이 이 논란 속에는 깔려 있다.

2007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세력이 승리한 것은 보수파의 자기개혁, 자기변신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구보수가 지녔던 지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을 유권자에게 제시했기 때문에 보수 세력은 승리했다. 구보수가 대표했던 가치는 냉전 시대의 반공이데올로기에 기반해 있었다. 과거 냉전 시대, 권위주의 체제의 이념적 유산이 우리나라 구보수를 상징하는 것이었다면, 이명박의 보수는 냉전적 보수에서 벗어나 경제적 요인과 계급적 특성을 지닌 우파적 속성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냉전시대 반공이데올로기 기반으로
다양한 계층 속해 있던 구보수와 달리
이념 벗어나 경제적 우파 정책 강조
기득층 대변·친기업 등 계급속성 강화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실용’이라는 용어는, 노무현 정부의 과도한 이념성에 대한 비판일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이념성이 강조되었던 구보수로부터 거리두기의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여기서 ‘실용’에 대비되는 ‘이념’은 서구 정치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경제적 가치를 토대로 한 좌파 대 우파의 균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북관계, 대미관계, 국가보안법 등 반공이데올로기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명박의 새로운 보수가 강조하는 실용은 이런 과거 반공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이념적 갈등에서 벗어나, 시장 중심, 성장과 효율 추구라는 전통적인 우파 정책의 강조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자기변신으로 이명박의 보수는 더는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을 지키려는 ‘꼴통’ 보수로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 때문에 과거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선택했던 많은 ‘진보적’ 유권자들로부터도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를 우파로 지칭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구보수에 비해서 계급적 특성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구보수 세력은 계급적 속성이 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지는 개인의 경제적 지위나 계급과는 무관한 개인의 가치와 신념의 문제였다. 계급이나 소득과 무관하게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한 신념을 지닌 이들이 과거의 보수 세력의 핵심 지지 기반이었다. 따라서 다양한 계급이 보수 세력 내에 공존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이념의 문제는 계급보다 세대적 요인이 더 큰 차별성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소득수준이 낮은 계층에서 보수이념 성향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곧 과거 보수 세력은 경제적 의미의 우파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의 새로운 보수는 상층계급이나 자본가와 같은 계급적 기반이 한층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보수 세력의 계급성이 강화되는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강부자’ 내각, ‘고·소·영’과 같은 용어는 이명박 정부의 계급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런 용어들은 재산과 학연·지연·종교 등을 통해 형성된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을 상징하는 것이며, 이명박 정부는 조각 과정에서 이미 이들을 대표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역시 계급적으로 노동보다 자본에 대한 강한 선호를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풍요 부르짓는 물질주의가
대중지지 이끌어내 대선 승리했지만
환경·노동·인권 등엔 소홀 드러나
경제가치 둘러싼 좌-우 대결 신호탄

이처럼 계급적으로 비교적 편협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압승을 거둔 이유를 단지 냉전적 보수로부터의 이탈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명박의 새로운 보수가 지닌 또 다른 특성은 바로 ‘물질주의’이다. 물질주의는 인간 삶의 기본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는 경제적 풍요와 사회질서의 유지와 같은 생존과 안전의 문제를 강조한다. 삶의 질의 추구에 앞서 생존을 위한 최소 요건의 충족을 선호하는 것이다. 물질주의에서는 개발과 경제 논리가 우선시되며 법과 질서가 강조될 수밖에 없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같은 개발 논리, 노동쟁의에 대한 엄벌과 질서와 법치의 강조 등은 이명박의 보수가 담고 있는 물질주의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이명박을 선택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물질주의적 호소의 위력이었다. 아파트 가진 이들은 부동산 재개발, 시장 상인들은 경기 회복, 젊은이들은 취업 등 물질주의적 메시지로 중산층과 서민, 노동자의 지지를 확보해 간 것이다. 경제적 침체가 지속되면서 물질주의에 대한 강조는 커다란 정치적 호소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탈물질주의적 가치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대운하 논란에서 드러나는 환경 문제의 경시, 각료 임명 과정에서 본 대로 성 평등 문제에 대한 취약함, 노동이나 인권 문제에 대한 소홀함 등이 이명박의 물질주의적 편향을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경제적 성취와 가시적인 결과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물질주의는 이명박의 새로운 보수가 중시하는 또 다른 가치인 것이다.

결국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보수는 계급적 속성을 띠는 경제적 우파와 물질주의적 가치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이명박 정부의 이념적 지향점은 물질주의적 우파의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특성은 한국 사회가 나아가고 있는 정치적 변화의 특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과거 한국 정치의 균열이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을 둘러싼 갈등에 기반해 있었다면 이제는 서구의 경험을 고려할 때 한층 보편성을 띤 이념적 갈등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성장·효율 대 분배·형평이라는 경제적 가치를 둘러싼 좌우의 이념 대결, 개발·안전 대 보존·자유라는 물질주의 대 탈물질주의 이념의 대결이 한층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갈등의 축 역시 지역이나 세대를 넘어서 사회경제적인 의미의 계층·계급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
강원택 숭실대 교수
과거 우리 사회의 진보가 권위주의 유산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자임하면서 정치적 신뢰를 확보해 왔다면, 이제 이명박의 보수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런 진보의 역할은 이미 그 소임을 다한 것 같다. 과연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구현하면서 좌파적 분배 정의를 강조할 우리 시대의 진보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변화된 시대에 걸맞은 진보의 자기개혁, 자기변신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강원택/숭실대 교수


강원택 교수는 1961년생으로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영국 보수당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정치개혁과 민주주의>, <한국의 선거정치>, <한국 정치 웹 2.0에 접속하다>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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