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사랑의 시련’-서양대사(아나톨 오브코프)의 도착. 파리국립극장 도서관 소장
‘춘향전’서 따온 ‘사랑의 시련’
현대발레 거장 미하일 포킨
1936년 몬테카를로 무대 올려
연극평론가 김승열씨 자료 확인
현대발레 거장 미하일 포킨
1936년 몬테카를로 무대 올려
연극평론가 김승열씨 자료 확인
20세기 현대발레를 대표하는 안무가 미하일 포킨(1880~1942)이 1936년 한국의 고전 〈춘향전〉을 토대로 만든 발레 〈사랑의 시련〉을 공연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가 처음으로 나왔다. 연극평론가 김승열(프랑스 파리 제8대학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씨는 7일 “1936년 미하일 포킨이 러시아발레단을 이끌고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사랑의 시련〉을 초연할 때 찍은 사진과 당시 무대·의상 디자인 자료를 최근 입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 자료들은 파리국립오페라극장 도서관과 파리 자크-두세 도서관, 파리 고서점 등지에서 찾은 것들로, 당시 춘향역은 베라 네므치노바와 마리아 루아노바가 번갈아 했으며, 이도령에 해당하는 역은 앙드레 에글레프스키가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킨은 러시아 출신 무용가로, 현대 발레를 정립한 것으로 평가받는 러시아발레단(발레뤼스)에서 20세기 발레의 고전 〈불새〉 〈세헤라자데〉 등을 안무한 현대무용사의 거장이다. 포킨의 작품인 발레 〈사랑의 시련〉은 △여주인공 이름이 ‘춘향’과 비슷한 ‘충양(Chung Jang)’이며 △암행어사가 탐관오리의 재산을 몰수하듯 남자 주인공이 나쁜 서양대사의 재산을 몰수하는 점, 그리고 남녀 주인공들과 부모들 사이의 관계와 상황 설정 등 여러가지 부분에서 〈춘향전〉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아 〈춘향전〉을 각색한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가 포킨이 1936년 몬테카를로에서 러시아발레단을 이끌고 이 작품을 초연했다고 30년 전부터 자신이 발굴한 자료를 근거로 주장해왔는데, 구체적인 사진 자료는 없었다. 이번에 김씨가 자료를 찾아내 실제로 포킨이 1936년에 춘향전 각색 발레를 선보였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1938년 10월 14일 미국초연(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의 나탈리 크라소프스카(춘향)와 장야즈빈스키(고관). 파리국립극장 도서관 소장
김씨는 발레 〈춘향전〉은 “포킨이 김옥균의 암살범인 홍종우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향기로운 봄〉을 통해 춘향전을 접한 뒤 모차르트의 음악을 반주로 하고, 프랑스 야수파 화가 앙드레 드랭이 꾸민 무대 및 의상을 토대로 작품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며 “당시 유럽이 동양을 중국편향으로 보는 기류가 지배적이어서 중국풍으로 각색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씨는 “홍종우의 〈춘향전〉에는 월매가 등장하지 않고 춘향은 일반 평범한 서민의 딸로 묘사되어 있는데, 〈사랑의 시련〉의 춘향 역시 어머니 월매 대신 아버지인 고관이 등장하고, 포킨이 이 작품의 배경을 중국이라고 못박지 않고 ‘머나먼 아시아’라고 표현한 점 등을 보면 포킨이 춘향전을 토대로 이 작품을 만든 것은 확실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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