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카야에서 사케를 즐기는 주당들이 안주로 가장 많이 찾는 고등어 초절임.
김중혁의 ‘달콤한 끼니’
일본술 ‘사케’
술 한잔 생각날 때면 동네를 방황하게 된다. 삼겹살집을 비롯한 고깃집들은, 방취제로도 도저히 씻을 수 없는 낙인과도 같은 냄새 때문에 정이 가지 않고, 지저분하고 너저분한 해장국집들은 위생을 신뢰할 수 없으며, 와인바들은 터무니없이 가격이 비싸서 큰맘 먹지 않고는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며, 생맥줏집은 있으나 마나 한 형편없는 안주들 때문에 먹을 게 없다. 그럴 때면 좋은 일식 주점 이자카야(居酒屋)가 그립다.
우선 이자카야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다. 꽁치구이 하나 시키고 1시간을 거뜬히 버틸 수 있으며, 다양한 음식을 소량으로 여러 가지 맛볼 수도 있다. 술과 안주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력적인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돈이 좀 문제가 되긴 한다. 보통 이자카야의 안주가 5천~9천원 정도이니 몇 접시만 시켜 먹으면 3만~4만원을 가볍게 넘어가지만 그래도 나쁜 기름으로 튀긴 통닭을 먹느니 돈을 더 주는 게 낫다. 그리고 이자카야에는 ‘맛좋은’ 사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케와 정종을 같은 뜻으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정종은 일본의 사케 상표의 하나일 뿐이다. 일제 때 조선 술 말살 정책을 펴면서 후쿠다라는 일본인이 부산에 최초로 청주공장을 세웠고, 그 상표 중 하나가 정종이었는데 이 술이 많이 팔리면서 일본식 청주의 대명사로 쓰이게 된 것이다.
사케에는 깊고 오묘한 맛이 있다. 첫맛은 맹맹한 듯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고 그윽한 향을 낸다. 실온에 가까워질수록 향이 극대화된다. 청진동의 사케바 ‘춘산’(02-732-1356)에서는 메뉴판에다 사케를 지역별로 구분해 두었는데, 물맛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후쿠시마현의 맛 다르고, 교토의 맛 다르다. 만드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지만 결국은 물맛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다. 포도주를 지역별로 골라 먹듯 사케 역시 그런 식의 새로운 탐구가 가능하다. 하나씩 새로운 맛을 공부해 가다 보면 재미가 쏠쏠할 듯싶다.
사케를 제대로 마시자면 안주와의 궁합도 필요하다. 너무 자극적인 음식은 사케의 단아한 맛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음식과 함께 먹느냐에 따라 100점이던 사케의 맛이 50점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사케바라면 사케에 걸맞은 안주를 내놓을 테니 주방장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위기 있는 이자카야인 명동의 ‘메데타이’(02-775-0207)도 좋다. 이곳은 특이하게 주방장이 한국 사람이다. 하지만 맛은 여느 이자카야 못지않다. 오히려 나은 메뉴도 있다. 고등어초절임이나 굴튀김 같은 음식도 안주로 그만이고 생선구이도 잘한다. 가게가 크지 않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지만 가게 안으로 진입하는 데만 성공한다면 퇴근 후의 들뜨면서도 쓸쓸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뻔한 안주만 있는 생맥줏집이나 처음부터 죽자고 마셔댈 수밖에 없는 소줏집보다는 다양한 음식과 사케의 은근한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사케 전문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무엇보다 사케 전문점에는 ‘골라 먹는’ 재미가 있으니 말이다. 따끈한 오뎅에, 향긋한 정종 한 잔, 침이 고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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