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군 고지에서 내려다본 관타나모 포로수용소.
친구 블레어마저 ‘없애야 할 변종’ 말하는데 끄떡않고 버티며 쉼없이 가혹행위 입길에…
수감자들의 요구는 ‘공정한 재판’ 하라는 것 그들에게 귀닫은 부시, 인권 말할 자격없어
수감자들의 요구는 ‘공정한 재판’ 하라는 것 그들에게 귀닫은 부시, 인권 말할 자격없어
안과 밖 2003년 8월 미국 워싱턴의 펜타곤(국방부) 건물에선 한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미군 특수작전국 고급장교들이 본 영화는 ‘알제리의 전투’. 1965년 이탈리아 영화감독 길베르토 폰테코르보의 작품으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흑백영화다. 펜타곤에서 ‘알제리 전투’가 상영될 무렵, 이라크 주둔 미군은 게릴라들의 매복공격으로 날마다 사상자를 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웠던 펜타곤 지휘부가 영화를 본 까닭은 무엇일까.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나고자 알제리 사람들이 8년 동안(1954-1962년) 벌였던 독립전쟁은 폭탄테러와 살육으로 얼룩졌다. 알제리 게릴라 조직인 FLN 지도부는 폭탄테러전술로써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과 일반 프랑스 시민들을 가능한 한 많이 죽이려 했다. 그럼으로써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 “이제 그만 알제리에서 손을 떼자”는 여론을 일으킨다는 전략이었다. FLN의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를 비롯한 프랑스의 지성들은 “알제리를 독립시켜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샤를 드골 장군은 프랑스군을 알제리에서 철수시켰다. 펜타곤 고급장교들이 ‘알제리 전투’ 영화를 본 것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였다. 그들은 이라크 반미 저항세력의 규모가 어느 정도고 누가 지도자인지 몰라 답답해했다(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군은 이라크 게릴라를 포로로 붙잡으면 어떻게든 정보를 캐내야 했다. 그 영화 속에서 프랑스 특수부대는 알제리 도시게릴라들을 붙잡아 물고문, 전기고문, ‘통닭구이’(사람을 전기구이 통닭처럼 막대기에 묶어 공중에 잡아매는 고문) 끝에 게릴라 점조직 정보를 캐내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거기서 펜타곤은 게릴라 조직 분쇄를 위한 힌트를 얻었다. 펜타곤에서 이 영화가 상영된 몇 달 뒤 큰 파문이 터졌다. 이라크 바드다드 서쪽 교외에 자리 잡은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몇몇 미군병사들의 잔혹행위가 저질러졌다는 사실이 바깥세상에 알려졌다. 포로학대는 그들로부터 정신적 항복을 받아내, 미군이 바라는 정보를 끄집어내기 위한 심리전에 다름 아니었다. 정보를 얻기 위한 수감자 고문이란 측면에서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감옥과 쿠바 관타나모 포로수용소는 닮은꼴이다. 관타나모 수용소를 관할하다가 2003년 가을 이라크의 악명 높은 아부 그라이브 감옥 책임자로 옮겨갔던 제프리 밀러 미 육군 소장은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미군은 매우 가치 있는 정보들을 걷어 들였다”고 강변했다. 이 대목에서 의문점이 생겨난다. 수감자들은 그냥 순순히 ‘정보’를 털어놓았을까? 아부 그라이브와 닮은 꼴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와 마찬가지로 관타나모의 미 경비병들은 수감자들에게 일상적인 폭력을 휘둘렀다. 관타나모에 2년 넘게 갇혀 있다가 풀려난 영국 국적의 두 사람(아시프 이크발, 루할 아흐메드)이 2004년5월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 보낸 편지는 관타나모에서의 폭력이 어느 정도 심각하게 그리고 자주 벌어졌는가를 잘 보여준다. “8-9명의 미군병사들이 수용소 건물 안으로 몰려 들어왔을 때, 그 수감자는 바로 우리 곁에 누워 있었다. 당시 그는 복부수술을 해서 배가 성치 않았다. 미군들은 군화발로 그의 배를 발로 차고 목을 짓눌렀다. 그의 얼굴은 마루 바닥에 대인 채 군화발로 짓뭉개졌다. 미 여군 한명도 폭행에 끼여들어, 그의 성치 않은 배를 발로 찼다” 쿠바의 미 해군기지 안에 있는 관타나모 포로수용소는 2002년 1월 문을 연 뒤로, ‘국제법을 무시한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비난을 들어온 곳이다. 관타나모 포로들은 변호사 접견은 물론 정당한 재판절차를 박탈당한 채로 하릴없는 나날을 보내왔다. 수감자들은 공정한 재판을 열 것과 수용소 안의 가혹행위들을 문제 삼아 여러 차례 단식투쟁을 벌여왔으나, 요구는 번번이 묵살됐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가혹행위, 국제법을 무시한 장기구금 등 인권침해 의혹을 제기하면서 그들의 석방을 촉구해왔다. 국제사면위원회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가리켜 ’우리 시대의 굴라그(Gulag, 옛소련의 정치범들을 수용한 강제노동수용소)라 일컬었다(현재 수용인원은 460명). 이미 알려진 바처럼, 지난 6월10일 관타나모 포로수용소 안에서 수감자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적 2명, 예멘 국적 1명으로 알려진 자살자들은 재판도 없이 바깥세상과 격리돼 지내는 수감생활에 좌절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곳 포로수용소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안에 있는 격리공간이다. 해군기지의 이름은 ‘엑스레이 기지’(Camp X-ray). 이 해군기지는 펜타곤의 서류엔 GTMO로도 표기된다. 미군들 사이에선 발음 나는 대로 이 기지를 흔히 ‘지트모’(Gitmo)로 일컫는다. 현재 기지 안에는 군인 1천명, 관련 미국인 2천명이 머물고 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 관련 혐의를 받는 포로들을 격리시킨 별도의 삼엄한 수용소의 이름은 ‘델타 기지’(Camp Delta)다. 관타나모 수용소에 대한 비난이 커지면서, 유럽 국가들도 관타나모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2001년 아프간침공과 2003년 이라크침공을 비롯, 미국의 군사적 강공책을 함께 펴온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마저도 관타나모 수용소를 ‘없애야 할 변종’이라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자살사건을 계기로 유럽국가들과 인권단체들의 수용소 폐지를 바라는 목소리들은 한층 커가는 중이다. 그러나 미국은 관타나모를 폐쇄할 뜻을 전혀 내비치지 않는다. 인권 변호사들은 부시대통령이 지난 12월30일 서명함으로써 발효된 ‘수감자 처리법’을 맹비난한다. 이 법은 관타나모 수감자가 미 연방대법원에 부당한 장기구금을 둘러싼 헌법소원을 내는 것조차 어렵도록 만들었다. 9.11 테러 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며 세계 곳곳에 수감시설들을 운용해왔다. 문제의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감옥,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북쪽 외곽에 자리잡은 바그람 기지(옛소련 군용비행장) 안의 수용소는 쿠바 관타나모와 더불어 미군이 반미 게릴라들을 잡아 가두는 공포의 장소로 꼽힌다. 풀려난 이들의 증언을 모아보면, 그곳들 모두에서 ‘전쟁범죄’ 수준의 가혹행위가 저질러졌다. 이들 말고도 또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폴란드를 비롯해 유럽 몇 나라에서 ‘비밀수용 시설’을 운영, 논란을 빚어왔다. 6월초 유럽연합(EU)의 하부기구인 유럽위원회는 한 조사보고서에서 “미국이 테러용의자를 불법적으로 가두는 비난받을만한 네트워크(reprehensible network)를 동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에 걸쳐 만들어왔다”고 지적했다. 바그람·CIA 비밀수용소도 논란
김재명/국제분쟁 전문가, 국민대·성공회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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