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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시청표’ 물길로 ‘시민표’ 문화 흘러라

등록 2006-05-15 23:14수정 2006-05-15 23:31

다시 열린 청계천은 시민들의 휴식과 관광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젠 서민삶터를 복원하고, 문화재 한 조각도 추슬러 진정한 문화도시의 원류로 만들어야 한다
다시 열린 청계천은 시민들의 휴식과 관광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젠 서민삶터를 복원하고, 문화재 한 조각도 추슬러 진정한 문화도시의 원류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문화도시
청계천 얻은 것과 잃은 것
물가에 핀 수세미꽃과 벌
물가에 핀 수세미꽃과 벌

돌아온 겨울철새 고방오리
돌아온 겨울철새 고방오리
오간수문 터에서  나온 통일신라시대 토기의 파편
오간수문 터에서 나온 통일신라시대 토기의 파편

회색빛 콘크리트와 근대개발주의 잔재 뜯어내고
다시 흐르는 인공물길 따라 ‘문화도시 꿈’ 커가는데
잃어버린 문화재·노점상 삶터·만물공장 활기 그립기만…
청계천 복원,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2005년 10월 청계천 복원은 우리 도시의 역사에 새 획을 그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은 한마디로, 고가도로를 뜯고 예전의 물길을 내는 작업이었다. 물길 덮어 고가도로를 냈던 근대개발주의에 대한 가시적 반성이자 극복이었다. 자동차가 빠르고 효율적으로 지나다니기에 적합한 도시가 예전 목표였다면, 이제 물가를 걸어 출근하고픈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청계천 복원은 또한 과거 생태적 가치를 복원해 새 도시문화를 만들자는 시도였다.

과연, 회색빛 콘크리트 도로가 사라지자 새로 난 푸른 물길 주변엔 갖가지 동식물들이 자라 나름의 생태계를 꾸려내고 있다. 복원을 진두지휘했던 이명박 서울시장은 준공식이 끝나자마자 서울을 진정한 ‘문화도시’로 만들겠다며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 등을 추진하고 나섰다. 다른 도시들에서도 도심 하천 재정비 등 ‘청계천 따라하기’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과연 ‘청계천’은 ‘문화도시’를 만들었는가? 앞으로 ‘문화도시’에 어떤 교훈을 준 것일까?

복원 뒤 일곱달간 연인원 1984만명 다녀가

사람이 모여든다=서울시 집계 자료를 보면, 청계천이 복원된 지난해 10월1일부터 ‘2006 하이서울 페스티벌’이 끝난 5월7일까지 청계천을 방문한 시민은 1983만9196명에 이른다. 한 사람이 여러번 다녀간 것도 통계에 포함됐지만 남한 인구가 약 4820만명인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숫자다. 방문객이 1천만명을 돌파한 것은 지난해 11월29일 오후 3시55분. 복원이 마무리된 지 두달도 채 안 된 때였다. 달라진 청계천이 얼마나 많은 호기심과 기대를 자아냈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이 모여들면 부동산값도 오르는 법. 1990년대 말 분양 당시 입주자가 안 몰려 낭패를 봤던 청계9가의 한 아파트는 요즘 매물이 없다. 이 아파트는 설계 당시 먼지와 소음이 심했던 청계고가를 피해 베란다와 창을 냈지만 이젠 청계천을 바로 조망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결점이 돼 버렸다.


모이고 접촉하고 소통하는 사람들

정월대보름날 광통교 다리밟기
정월대보름날 광통교 다리밟기

장애인 접근불가 계단
장애인 접근불가 계단

모이면 소통이 생겨난다=청계천을 사이에 놓고 이 아파트를 마주보는 곳에 서울문화재단이 자리잡고 있다. 재단은 본래 남산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지만 청계천 복원이 마무리되면서 청계9가로 이사왔다. 재단은 청계천을 거점 삼아 문화적 불모지에 가까웠던 서울 동북부 지역에 문화적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 목표다. 옛 성북수도사업소 건물에 리모델링 공사중인 재단은 앞으로 화랑·공연장 등을 열어 주민들을 불러들일 계획이다.

사람이 모여들면 ‘접촉’이 생겨난다. ‘접촉’을 문화적으로 표현해보면 ‘소통’이란 단어가 적절할 것이다. 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청계천 복원의 가장 큰 성과는 사람 사이 ‘소통’이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돌아왔지만 자연과 소통은 아직

옛 황학동 벼룩시장의 공구상
옛 황학동 벼룩시장의 공구상

자연과 사람의 소통은?=그러나 유 대표는 “사람과 자연 사이 소통은 5~10년 지나야 풀릴 수 있는 과제”라고 말한다. 청계천이 너무나 빨리, 거대한 인공물을 동원해 복원된 탓이다. 그래서 눈높은 전문가들은 복원 직후 ‘거대한 인공 어항’ ‘직선화한 콘크리트 수로’ 등의 자극적 단어로 청계천을 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좀더 천천히 생태계 질서를 관찰하는 이들은 조심스런 희망을 점치기도 한다. 생명은 물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물이 흐르면 기온차가 생기고, 뒤이어 바람이 생긴다. 바람이 생기면 오염된 공기를 순환시킨다. 물의 힘이다.”(동국대 산림자원학과 석사과정 정은영) 바위도 뚫는 물의 힘을 생각하면, 사람도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유 대표는 “사람들이 그 소통의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없는 것은 만들었던’ 생산현장 살리고

뒷골목으로 밀려난 철거민들의 대책위 사무실
뒷골목으로 밀려난 철거민들의 대책위 사무실

즐기는 문화는 늘었지만=과거엔 과연 청계천에 ‘소통’이 없었을까? 예전 청계천 일대는 퇴근 시간 뒤나 주말이면 썰렁한 느낌에 왠지 발길이 닿지 않았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 눈에 그저 고요하게 비쳤던 청계천은 그냥 고인 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생산 현장이었다. 머리심는 주사기, 성형턱 고정기, 돼지똥 정수장치, 황태 두드리는 프레스, 레일 바이크, 사극 드라마 소품, 호두과자 상자, 아이스크림 교반기, 대장세척 분배기, 파이프 청소기, 카지노 룰렛, 각종 볼트·너트, 모형 탱크까지. 한때 청와대 경호원들 부탁을 받고 ‘휴대폰 총’도 만들었다. ‘없는 게 없다’에서 더 나아가 ‘없는 건 만든다’는 청계천은 어쩌면 진정한 꿈의 공장이었는지도 모른다. 복원공사 이전부터 수년째 청계천을 탐구해온 작가 그룹 ‘플라잉시티’의 전용석씨는 “시는 여기를 ‘도심 부적격산업 밀집지’라고 일컫지만, 나는 ‘금속가공공방’이라고 부르겠다”고 말한다. “가끔 사람들이 와서 먹고 놀고 쉬고 가는 청계천이 아니라 터 박고 사는 이들의 생산 문화가 펄떡거리는 청계천을 만들고 싶다.” 지난해 청계천에서 생산·판매되는 물품들을 모아 ‘미니박람회’를 열었던 전씨의 큰 꿈이다.

지자체 ‘건설 하천’, 예술로 생명력 채우자

맑아진 물의 지표 천연기념물 어름치
맑아진 물의 지표 천연기념물 어름치

‘건설’에서 나아가 ‘복원’으로=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식 기념사에서 생계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양보해준 천변 상인·노점상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청계천 복원은 생계터가 날아갈지 모르는 걱정 속에서도 시의 뜻을 따라준 상인 수백만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애초 청계천 복원을 상상하며 연구역량을 보탰던 전문가들과 여론 조성에 힘쓴 시민단체도 있었다. 그러나 처음 의욕적으로 동참했던 전문가·시민활동가들은 점점 ‘서울시=이명박’에 등을 돌렸다. 균형보다 속도를, 보존보다 개발을 우선시하는 독선적 행정을 지적한 것이다. 전문가들의 비판은 명분 있는 쓴소리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수의 목소리로 변해갔다. 많은 시민들이 회색 도시에 푸른 물 흐른다는 사실 자체에 감동받았기 때문에 청계천 옛 문화재 한 조각을 잃고얻음은 작은 문제가 돼버린 셈이었다. 전문가·시민단체가 대중의 민심을 읽어 제대로 타격 지점을 설정하지 못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청계천을 바라보면서 ‘건설형 문화도시’의 모습을 읽는다. 정부·지자체의 행정력이 주도해 만들어진 대표적 문화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도시 만들기’의 노력이 멈춘 것은 아니다. ‘건설형 문화도시’의 빈 틈새를 채워가는 건 앞으로 창조적인 예술가들과 관심있는 시민들의 노력이다. 청계천은 ‘건설’됐지만 아직 ‘복원’되진 않았다. 청계천이 완전히 복원될 때, 서울은 진정한 문화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이종근 김진수 기자 root2@hani.co.kr,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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