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리망의’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되었다. 자기 이익을 챙기느라 의로움을 망각한 한해라는 지적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성찰하고 자책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이 살아 있다는 방증이다. 2023년의 끝자락에서 나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이기적인 태도로 외면한 ‘폭력사회’의 실상을 극적으로 형상화하여 사회적 담론장을 마련한 두편의 드라마를 되짚어보는 것도 그래서이다.
첫째, 학교폭력의 실상을 포착한 드라마 ‘더 글로리’(넷플릭스)는 임명직 고위 공직자의 자녀 문제와 맞물려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학교폭력의 피해자 문동은(송혜교)이 18년 동안 준비한 복수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학교폭력이 한 사람의 육체는 물론 영혼까지 파괴하는 대단히 심각한 ‘범죄 행위’라는 점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드라마가 일으킨 사회적 공분은 국가수사본부장 아들의 학교폭력에 대한 질타로 이어졌고, 결국 임명 하루 만에 낙마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역시 아들의 학교폭력을 권력으로 무마했다는 의혹에 휩싸였지만,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더 글로리’의 열기가 식거나 드라마라는 한계 때문이 아니다. 의로움을 챙길 겨를이 없을 만큼 고달픈 일상에 ‘기득권은 으레 그렇다’는 식의 좌절이 겹쳐지면서 나타난 포기였다. 그는 취임 95일 만에 다른 이유로 사퇴했다. 사적 복수라는 근본적 한계에도 보복적 정의를 구현한 복수극 ‘더 글로리’를 되짚는 까닭이다.
둘째, 국가폭력의 실상을 포착한 드라마 ‘무빙’(디즈니플러스)은 초능력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남북 분단의 문제적 현실을 재조명했다. 초능력이라는 판타지 장치로 남북 분단의 현실을 짚은 점이 흥미롭다. 하늘을 날고 훼손된 몸이 재생되며 물체를 관통하는 투시력과 괴력을 발휘하는 초능력자들이 등장하지만, 판타지 영웅 서사가 아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초능력자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는 국가폭력을 절묘하게 결합한 가족 서사다. 불안한 국제 정세 속에서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면 평화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분단 현실을 이용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 정보기관에 맞서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영웅 아닌 영웅들의 애환을 다룬 ‘무빙’을 되짚은 까닭이다. ‘견리망의’의 한해를 보내면서 ‘더 글로리’와 ‘무빙’을 통해 폭력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 있는 마무리가 아닐까 한다.
윤석진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