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양세형은 지난 4일 시집 ‘별의 길’을 발간했다. 그는 5일 서울 정동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시는 행복한 놀이”라고 밝혔다. 이야기장수 제공
“걷다가 그냥 걷다가/ 보고 싶어 눈을 감았어요/ 오늘은 약속을 취소해야겠어요/ 계속 보고 싶어서/ 눈을 뜰 수가 없네요.”
시 ‘아빠가 해주는 삼겹살김치볶음 먹고 싶어요’의 한 대목이다. 시인이 누굴까.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게 당연하다. 뜻밖의 인물, 코미디언 양세형이니까. 양세형이 지난 4일 생애 첫 시집 ‘별의 길’을 발간했다. 연예인들이 집필한 에세이집은 많지만 시집은 드물다. 방송인 김태균이 수십년 전 시집을 낸 바 있다. 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양세형은 “어렸을 때부터 단어들을 끄집어내어 조립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게 즐거웠다. 시를 쓰는 일은 행복한 놀이였다”고 밝혔다.
시집에는 ‘시를 쓰게 하는 당신에게’ ‘어떤 향기’ ‘그러지 말걸’ 등 총 88편을 담았다. 스케줄이 끝난 늦은 밤, 문득 맑은 하늘에 마음이 벅차오를 때 끄적였던 감정들이다. ‘아빠 번호’ ‘아빠와 아들’ 등 아빠에 관한 내용과 ‘코미디 빅리그’처럼 본업 관련 내용이 많다. 양세형은 “시는 나의 마음을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더라”며 “200편 되는 시 중에서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선택했다”고 했다.
양세형이 시집이라니? 양세형은 꽤 오랫동안 시를 사랑해왔다. 올해 초 예능프로그램 ‘집사부일체’(SBS·종영) 방영 당시 즉석에서 시 ‘별의 길’을 써 화제를 모았고, 유튜버 엔조이 커플 결혼식에서 직접 쓴 축시 ‘우리’를 낭독하기도 했다. 평소 지인들한테 직접 쓴 시를 선물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를 통해 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양세형도 시를 쓰면서 힘든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일도 안 풀리고 모든 것이 꼬였을 때 오피스텔에서 아래를 바라보면서 시를 썼었어요. 너무 독해서 시집에는 담을 수 없었지만, 그러면서 마음을 다 쏟아낼 수 있었죠. 다음날 쓴 시를 다시 읽으며 내 마음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됐었죠.”
양세형은 “사람들이 친근하게 여기는 코미디언이 시를 직접 쓰는 걸 보면서 시를 어려워하지 않고, 가까이하며 읽고 쓰고 아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구준회는 직접 쓴 시를 소셜미디어에 공개했다. 그는 최근 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에 출연했다. 143엔터테인먼트 제공
시를 쓰며 감정을 표현하고 마음을 다잡는 눈에 띄는 연예인들은 또 있다. 배우 로운도 시를 통해 생각을 정리한다. 그가 처음 쓴 미공개된 시 ‘처음’은 드라마 배역에 이입했던 어느 날 그 감정을 끄적인 것이다. 아이돌그룹 트와이스 채영, 아이콘 구준회도 시를 사랑하는 아이돌이다. 구준회는 시 노트를 따로 마련해 쓸 정도로 열정적이다. 지금껏 200편 넘게 썼고, 직접 쓴 시를 개인 소셜미디어(SNS)에서 공개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6월8일에는 ‘그는 바다였기에’가 올라왔다. 그가 쓴 시는 팬들이 저마다의 풀이를 하며 결국 많은 이들이 시를 읽게 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내고 있다. 구준회의 한 팬은 “구준회가 쓴 시를 읽으면서 시집을 찾게 됐고 이젠 나도 어색하지만 시를 써보고 있다”고 했다.
함축적 의미를 담아내려고 단어를 고심하다 보면 감정이 풍부해질 수 있어서 기획사에서 연습생한테 시 쓰기를 추천하기도 한다. 한 연예인 지망생은 “시를 쓰면서 내가 느끼는 것 외에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흡수할 수 있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연예인들의 도전은 시를 친근하게 느끼게 하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한 방송 작가는 “평소 감정을 감추며 살아야 하는 연예인들이 시를 쓰면서 진짜 마음을 털어놓다 보면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