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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딸에게 영화로 ‘한결같은 엄마 마음’ 보여주고 싶었죠”

등록 2023-12-05 22:51수정 2023-12-05 23:35

영화 ‘3일의 휴가’ 엄마 역 김해숙
사후 지상으로 ‘휴가’ 온 엄마 연기
영화 ‘3일의 휴가’. 쇼박스 제공
영화 ‘3일의 휴가’. 쇼박스 제공

“나도 젊은 시절 ‘진주’였어요. 지금 우리 집에도 ‘진주’가 있죠. 딸이 제 영화 잘 안 보는데 이번에 보고 와서는 “진주가 나네” 말하더라구요.”

진주는 누구인가. 공부로, 일로 바쁘다고 엄마 전화를 ‘더럽게’ 안 받는 영화 ‘3일의 휴가’(육상효 감독)의 주인공 딸(신민아) 이름이다. 다른 전화는 벨이 울리자마자 받으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밥은 잘 챙겨 먹냐, 감기 안 걸리게 옷은 잘 껴입었냐”는 엄마의 안부 전화는 잘 안 받고 회신도 늘 까먹는 반도의 수많은 딸들이 바로 진주다. 6일 개봉하는 영화 ‘3일의 휴가’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쌀쌀맞았던 딸이었던 과거를 후회하는 진주와 3일간의 휴가를 얻어 지상으로 내려온 엄마를 그린다. 진주 엄마 ‘박복자’를 연기한 김해숙을 지난달 30일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진주 엄마처럼 우리 엄마도 하나밖에 없는 딸이 성공하길 바라서 그 옛날 뼈 빠지게 뒷바라지를 했는데 제가 삼수를 하고도 대학에 또 떨어졌어요. 염치가 없어서 어쩔 줄 모르는데 엄마가 용산의 한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시대요. 영화를 보고 나와서 엄마 화 안났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던 말이 지금도 생각나요.” 목이 메어 말이 잠시 끊겼다. 대학 졸업을 간절히 바라던 엄마의 염원과 달리 딸이 길 가다가 본 방송국 탤런트 모집 광고에 원서를 넣고 최종 심사까지 올라가자 엄마는 말없이 “옷 한벌을 처음으로 해주셨다.” 48년 차 배우 김해숙의 데뷔 스토리다.

영화 ‘3일의 휴가’. 쇼박스 제공
영화 ‘3일의 휴가’. 쇼박스 제공

‘3일의 휴가’에서 진주는 홀로 갖은 고생을 하면서 키운 박복자의 기대에 부응해 외국 명문대 교수가 된다. 딸이 얄밉게 말을 하고 엄마 마음을 몰라줘도 오로지 딸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속상함을 삭이던 복자는 번듯하게 교수 노릇을 하는 줄만 알았던 딸이 시골집에서 밥집을 하고 사는 모습을 보고 속이 터진다. 못된 딸보다 힘들게 사는 딸에 더 억장이 무너지는 복자의 마음 역시 이 땅의 많은 엄마들과 닮아 있다. 복기되는 기억을 통해 서서히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면서 끝내 눈물을 참기 힘든 영화지만 외국서 교수를 하고 있어야 할 딸이 시골에서 밥을 짓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분통이 터져 산 사람에게는 들리지도 않는 핀잔을 쏟아내는 복자의 ‘케이(K)엄마 잔소리’가 영화에 따뜻한 웃음과 활기를 준다.

영화 ‘3일의 휴가’ 쇼박스 제공
영화 ‘3일의 휴가’ 쇼박스 제공

“우리 엄마도 저한테 많이 당하고 사셨고, 저도 딸에게 답답하거나 서운할 때도 잦지만 굳이 내 마음이 이렇다는 걸 자식한테 설명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게 엄마라는 사람, 엄마의 사랑인 거 같아요.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도 각자 사정은 다르지만 한결같은 게 엄마 마음이라는 걸 자식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딸이 원망스러울 때나 고된 촬영으로 지쳐 집에 돌아왔을 때도 집밥 한 끼 제대로 챙겨 먹이는 데 온 정신을 쏟는 제 모습에서 문득 우리 엄마를 보는 것처럼요.”

영화 ‘3일의 휴가’에서 주연 박복자를 연기한 배우 김해숙. 쇼박스 제공
영화 ‘3일의 휴가’에서 주연 박복자를 연기한 배우 김해숙. 쇼박스 제공

김해숙은 선배 배우 김혜자나 나문희, 고두심처럼 ‘국민엄마’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연기해온 엄마는 선배세대와는 또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다. ‘3일의 휴가’ 에서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전통적인 엄마를 연기한 데 비해 최근 종영한 드라마 ‘힘센 여자 강남순’에서는 무례한 남자들을 가차 없이 응징하고 사랑을 위해 거침없이 뛰어드는 엄마 ‘길중간’을 연기했다. “정보석씨와 달달한 장면은 너무 창피하고 민망해서 컷 나오면 부리나케 도망가곤 했지만 많은 사람이 여전히 거부감을 느끼는 노년의 사랑을 거침없이 그린 작가의 용기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어요. 노년의 여성이 제힘으로 사회의 악을 응징한다는 캐릭터도 너무 매력적이었고요.” 앞으로 하고 싶은 캐릭터는 길중간보다 한 발짝 더 나간 조직의 여자 보스. “나이 든 남자들은 지금도 조직의 보스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제대로 된 액션도 해보고 싶고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올해로 예순일곱. 김해숙의 연기 욕심은 ‘국민 엄마’에 새겨져 있던 한가지 이미지를 다양한 갈래로 확장하며 바뀌는 세상과 함께 ‘국민 엄마’의 진화를 끌어내는 중이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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