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위가 2024년 창작지원 예산을 대폭 줄이면서 시나리오 공모전 운영 예산도 60% 가량 축소했다. 사진은 지난 7월11일 열린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시상식. 영화진흥위원회 제공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 예산안에서 한국 영화 다양성 확대와 시장 성장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창작·제작 지원 예산을 대폭 줄인 것으로 확인됐다. 독립∙다큐멘터리 영화 등 제작 위축 등 창작 생태계의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영화계에서 나온다.
20일 한겨레가 입수한 영진위의 ‘2024년도 예산 사업 설명 자료’를 보면 올해부터 기획개발과 제작 지원을 항목을 하나로 합친 ‘영화 창∙제작 지원’ 예산은 내년부터 국고 지원으로 이관되는 영상전문투자조합 출자 금액(80억원)을 제외하면 2023년 217억5600만원에서 2024년 107억2500만원으로 50.7% 감소했다.
세부항목을 보면 시나리오 공모전 운영비 예산은 4억1350만원에서 1억6100만원으로 61.1% 줄었고, 한국영화 차기작 기획개발지원 예산은 2023년 28억460만원에서 전액 삭감했다. 영진위의 가장 큰 지원 사업인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 예산은 2023년 117억3천만원에서 2024년 70억원으로 40.3% 줄였고, 애니메이션 지원 항목은 아예 없어졌다. 영진위 지원을 받는 장·단편 영화 및 다큐멘터리 작품 수는 올해 136편에서 내년에는 75편으로 줄어든다.
영진위 예산 삭감 이유는 운영자금인 영화발전기금이 크게 줄었는데도 국고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관 입장료의 3%를 떼는 부과금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영화발전기금은 코로나 이후 극장 관객이 줄면서 감소했다. 영진위의 2024년 영화발전기금 예산은 464억원으로 2023년 729억원보다 36.4% 줄었다. 영화인들은 고갈 위기에 놓인 영화발전기금의 국고 지원을 요구해왔다. 국고 지원이 270억원 추가됐지만 이중 250억원은 영화발전기금으로 통합되지 않고 영상전문투자조합 출자 항목, 즉 상업영화에 주로 투자하는 항목으로 분리됐다.
영화발전기금 집행 예산 가운데 유일하게 증액된 항목은 ‘영화·영상 로케이션 지원’이다. 외국 영화 제작자들에게 한국을 홍보하기 위해 관광진흥개발기금으로 운영되던 이 예산은 코로나로 관광기금이 줄면서 영화발전기금이 떠안게 됐는데 2023년 3억2000만원에서 2024년 10억2000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영화계에선 정부가 영화제작지원 사업의 실집행률을 문제 삼아 예산을 삭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6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영진위의 영화발전기금 운영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영진위의 영화제작지원 사업의 최근 3년간 실집행률은 30~40%대에 불과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영화계는 제작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예산 편성이라고 지적한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당해년도 집행 예산만 놓고 실집행률을 평가하는 건 비상식적”이라며 “제작 지원 받은 영화의 사업기간은 최소 1년으로 하반기에 선정 지원을 받으면 다음 해로 완성 시기가 넘어가고 코로나 때에는 평년보다 작품 완성이 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영진위 관계자는 “영화제작지원 사업의 최종 실집행률은 90%가 넘는다”고 밝혔다.
예산안이 국회에서 이대로 확정되면 우선 직격탄을 맞게 되는 건 독립예술영화 창작자들이다. 데뷔작 ‘작별’부터 최근작 ‘수라’까지 영진위 독립예술영화지원 공모를 통해 지원금을 받아온 황윤 감독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영진위 예산을 받아 최소한의 스태프들을 꾸리고 영진위 지원이 영화제나 지역문화재단 등 다른 지원으로 이어지면서 5~6년간 작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며 “영진위 지원이 줄면 비상업적 다큐멘터리나 독립영화가 직격탄을 맞아 한국 영화의 다양성이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소 제작사들의 타격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한 중견 영화제작사 대표는 “시나리오 공모전이나 한국영화 차기작 기획개발 지원이 축소·폐지되면 리스크가 가장 높은 기획개발비가 올라가고 대기업이 아닌 제작사는 존폐 자체가 흔들리고 영화 생태계 전반이 고사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화계 일각에선 정부가 영진위를 흔들어 정부나 사회에 비판적인 영화 제작을 막으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일고 있다. 실제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달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에) 좁은 문을 만들어 철저히 선별해야 한다. 나랏돈으로 국가 이익에 반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말이 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