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에서 영화감독 김열을 연기한 송강호.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부산영화제 기간에 ‘거미집’ 야외 토크도 있고 부산 지역 개봉관 무대 인사도 예정돼있었어요. (개막식 참석 위해) 이틀 먼저 내려가니까 큰 부담은 아녜요.”
이사장과 집행위원장 공석으로 개막 전부터 흔들렸던 부산국제영화제 호스트 배우 송강호가 말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큰 분란이 일어난 집안에서 임시 주인 노릇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단이 필요했을 터다. 올해로 데뷔 33년. 송강호의 자리는 뛰어난 연기자에서 선배 안성기와 같은 국민배우, 영화계를 책임지는 얼굴로 옮겨졌다. 18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신작 ‘거미집’의 27일 개봉을 앞둔 송강호를 만났다.
“‘거미집’이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라 관객 대중과 얼마나 잘 소통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새로운 영화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관객들에게는 반가운 영화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은 이류 감독이라는 콤플렉스를 가진 김열이 걸작을 만들기 위해 영화의 결말을 재촬영하기로 마음먹으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영화다. 영화 속 영화라는 형식이 낯설 수 있지만 송강호가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앙상블이 웃음과 긴장의 리듬을 유려하게 탄다.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등 거장 감독들과 작업한 송강호가 영화감독을 연기하는 건 처음이다. “함께 했던 감독님들한테 구체적인 연기의 힌트를 얻었다기 보다는 긴 세월 동안 작업을 하면서 그분들이 했던 고뇌의 흔적이 파편처럼 마음에 남아 있어요. 외롭고 고통스럽고 또 환희에 찬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감독의 상이 내 안에 그려져 있던 거 같아요.”
김지운 감독과도 긴 인연이다. 김 감독의 데뷔작 ‘조용한 가족’(1998)에서 “학생은 고독이 뭔지 아나?”라는 손님의 질문에 “나 학생 아닌데요” 답했던 그의 대사는 이후 이어진 송강호발 ‘명대사’의 시작이 됐다. ‘반칙왕’(2000)으로 첫 주연을 맡았고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2008) ‘밀정’(2016)까지 함께 했다. “‘놈놈놈’ 찍을 때 ‘거미집’ 같은 아수라장이 있었어요. 중국 둔황에서 100일 동안 촬영하고 내일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찍어야 할 분량은 남아있고 해는 떨어져 가는 상황이었죠. 감독님한테도 광기가 보이고 배우들도 모두 미쳐 돌아가는 지경이었어요. 그렇게 찍은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영화를 멋지게 완성했죠.” ‘거미집’은 이처럼 하나의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미쳐돌아가는 순간까지 ‘앙상블’이 되는 게 영화의 매력이라는 걸 보여주는 영화다.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는 게 선호되는 시대에 영화란 무엇일까, 어떻게 만들어야 영화라는 매체가 존중받을 수 있겠느냐는 고민이 많이 드는 시기인 거 같아요. 그래서 ‘거미집’에 대한 애착이 더 컸어요. 뻔하지 않은, 새로운 영화를 찍는다는 설렘이 있는 반면 이게 관객에게 얼마나 먹힐까 싶은 두려움도 있죠. 자신감에 넘쳤다가, 불안에 빠졌다가, 영화 속 김열과 똑같았어요.”
그는 ‘거미집’을 찍으면서 ‘조용한 가족’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 ‘살인의 추억’을 찍던 20년 전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옛날에는 많은 배우들이 한 앵글에 들어가는 앙상블 연기가 참 많았어요.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연기하는 게 굉장히 신났거든요.”
영화산업이 고도화되고 효율성이 강조되면서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투입되는 앙상블 영화나 장면들은 점차 선호되지 않는다. “‘설국열차’를 찍을 때 함께 출연한 제이미 벨이 대사를 약간 씹고 나서 지나칠 만큼 미안해하더라고요. 시간이 돈과 직결되는 할리우드는 첫 번째 컷에서 베스트가 나올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해요. 때로는 숨이 막힐 정도죠. 낭비되는 시간이 줄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건 좋지만 여러 번 시도하면 얻어지는 것들이 있거든요. 이젠 옛날이야기죠.”
송강호는 ‘거미집’까지 여덟 작품으로 칸영화제를 ‘내 집’처럼 드나들고 지난해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타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가 됐다.
“책임감에 짓눌리지는 않지만 흥행이라는 결과를 떠나서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작업에 도전하는 게 후배 배우들과 동료 영화인들을 향한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배우 송강호가 말하는 자신의 역할이었다.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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