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블랙핑크 월드투어 ‘본 핑크’ 피날레 공연에서 블랙핑크가 공연하고 있다.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 제공
일요일 오후인데도 열차는 만원이었다. 특이하게도 여기저기서 중국어, 일본어, 영어 등이 들려왔다. 수도권 전철 1호선 구일역에 정차하니 승객 대다수가 우르르 내렸다. 구일역은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으로 가는 관문. 17일 오후 6시 이곳에선 그룹 블랙핑크 공연이 예정돼 있었다. 지난 1년간 펼쳐온 월드투어 ‘본 핑크’의 대미를 장식하는 피날레 무대다.
블랙핑크는 지난해 10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에서 두번째 월드투어 ‘본 핑크’를 시작했다. 이후 북미·유럽·아시아·오세아니아·중동 지역 34개 도시를 돌며 64회 공연을 펼쳤다. 그리고 16~17일 이틀간 서울 공연으로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전석 매진된 서울 공연의 3만5000명까지 더해 모두 18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케이(K)팝 사상 단일 월드투어로는 205만명을 모은 방탄소년단(BTS)의 ‘러브 유어셀프’(2018~2019) 투어 다음으로 큰 규모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블랙핑크 월드투어 ‘본 핑크’ 피날레 공연에서 블랙핑크가 공연하고 있다.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 제공
고척스카이돔 앞 또한 인산인해였다. 검은색과 분홍색으로 차려입은 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뿅망치를 닮아 ‘뿅봉’이라 불리는 블랙핑크 응원봉을 들고 곳곳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있었다. 월드투어 마지막 무대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고자 중국·일본·동남아 등에서 온 관객들도 많았다. 케이팝 걸그룹이 고척스카이돔에서 단독 공연을 한 건 블랙핑크가 처음이다.
공연이 시작되자 거대한 한옥 기와지붕 처마를 형상화한 무대세트 아래로 블랙핑크 네 멤버 지수·제니·로제·리사가 등장했다. 한옥 기와지붕 세트는 지난 4월 미국 음악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 케이팝 가수 최초로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진)로 출연했던 당시 처음 선보여 호평을 받았던 것이다. 블랙핑크는 ‘핑크 베놈’, ‘하우 유 라이크 댓’ 등 히트곡을 잇따라 부르며 공연장을 후끈 달궜다. 각 멤버들의 솔로 무대도 이어졌다. 한옥 기와지붕 세트는 시시각각 다채로운 빛깔로 변했고, 레이저·불꽃·꽃가루 등이 허공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블랙핑크 월드투어 ‘본 핑크’ 피날레 공연에서 블랙핑크가 공연하고 있다.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순간의 젊음을 영원히 박제하려는 듯 ‘포에버 영’으로 본공연을 마치고 블랙핑크는 무대 밖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대형 전광판이 관객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댄스 챌린지’라는 글자가 뜨고 블랙핑크 히트곡들이 흘러나왔다. 카메라에 잡힌 관객들은 하나같이 흥겹게 춤췄다. 다들 어찌 그리 춤을 잘 추는지 ‘그 가수에 그 팬들’이었다. 특히 춤을 잘 추는 어느 관객 모습에 함성이 커졌다. 화면 속 주인공은 지수와 리사였다.
다시 등장한 멤버들은 자동차처럼 움직이는 두대의 이동무대에 둘씩 짝지어 올라 그라운드 객석 주위를 한바퀴 돌며 노래했다. 관객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그들은 티셔츠, 인형, 수건 등 선물을 던져주었다. 무대로 돌아온 멤버들 앞에 케이크가 놓였다. 멤버들은 관객들에게 기념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관객들은 각자 자리에 있던 손팻말을 들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손팻말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이 순간이 영원할 수 있게 우리가 함께할게.”
지난 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블랙핑크 월드투어 ‘본 핑크’ 피날레 공연에서 블랙핑크와 관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 제공
감격한 멤버들이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수는 “지난 1년 동안 투어 하면서 아무도 안 아프고 건강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고, 로제는 “1년 내내 비행기 타고 왔다갔다 했지만, 항상 팬들과 하나 된 느낌이었다”고 했다. 리사는 블링크(블랙핑크 팬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왔다며 읽었다. “우리 만난 지 2596일이 됐어요. 이번 투어는 다양하고 대단한 공연장에서 했는데, 블링크가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저의 20대를 함께 빛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랙핑크는 데뷔 7주년을 맞은 지난달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만료됐다. 재계약 여부는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제니는 이날 공연 막바지에 “앞으로도 멋있는 블랙핑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멤버별 재계약이 어찌 되든 넷이서 블랙핑크 활동을 계속 이어가지 않을까 하는 해석을 낳았다. 블랙핑크는 앙코르 마지막 곡으로 ‘마지막처럼’을 불렀다. 마지막처럼 불사르지만 결코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은 멤버들과 관객들 모두 같아 보였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