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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군부독재 저항했던 칠레 노부부의 사랑과 기억, 그리고 예술

등록 2023-09-18 13:35수정 2023-09-19 02:43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
‘이터널 메모리’ 주연 파울리나 우루티아
다큐멘터리 ‘이터널 메모리’. 앳나인필름 제공
다큐멘터리 ‘이터널 메모리’. 앳나인필름 제공

“한국과 칠레는 군부독재라는 공통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나라 관객을 연결해주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21일까지 열리는 제15회 디엠지(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 ‘이터널 메모리’는 칠레 피노체트 군부에 저항했던 저널리스트 아우구스토 공고라와 아내 파울리나 우루티아의 노후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민주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군부 정권의 어두운 기억들이 잊히지 않도록 기록하는 역할을 했던 공고라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면서 점점 기억을 잃어버린다. 영화는 쇠약해져 가는 공고라와 우르티아의 일상을 기록하면서 노부부의 사랑과 기억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공고라가 올해 5월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25년의 세월을 함께 보낸 우루티아는 배우 출신으로 칠레의 첫 여성 대통령인 바첼레트 정부에서 문화부 장관(2006~2010)을 역임했다. 영화제를 기념해 내한한 우르티아를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씨지브이용산에서 만났다.

DM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 ‘이터널 메모리’ 주인공으로 내한한 칠레 배우겸 행정가 파울리나 우루티아. 앳나인필름 제공
DM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 ‘이터널 메모리’ 주인공으로 내한한 칠레 배우겸 행정가 파울리나 우루티아. 앳나인필름 제공

“공고라는 영화화 제안에 바로 동의했지만 저는 반대했어요.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 왜 그가 쉽지 않은 결정을 했는지 이해하게 됐죠. 그는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맞닥뜨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이 영화는 용기 있는 삶의 결과물입니다. ”

영화 초반 공고라는 기억이 사라져 가도 온화한 일상을 유지하지만 알츠하이머가 점차 심해지면서 아내를 못 알아보고 집에서 나가라고 분노하기도 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 싸웠던 기억들이 지워져 가는 것에 크게 상심한다. 그 모든 순간에 그의 손을 단단히 잡는 우루티아의 모습은 전 세계적인 고령화 현상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는 돌봄에 대한 성찰도 담겨있다.

“공고라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뒤 보호자로서 한번 받았던 심리상담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정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긴 시간 전문가 면담을 통해 환자와 보호자가 이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다르다는 걸 알게 됐죠. 우리가 꾸려가야 할 현실은 서로가 각자의 빈 구석을 보완하면서 두 사람이 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르티아는 “아이를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후의 돌봄 역시 개인이나 가족이 떠맡는 차원이 돼서는 안된다. 우리 삶의 가장 긴 시간이 된 노후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는 모든 사회가 중요한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큐멘터리 ‘이터널 메모리’. 앳나인필름 제공
다큐멘터리 ‘이터널 메모리’. 앳나인필름 제공

1980년대 피노체트 정권에서 배우생활을 시작해 문화부 장관까지 역임한 우루티아는 “민주주의의 발전에는 문화예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칠레 국민이 머릿속에 새겨진 공포를 이겨내고 민주화된 삶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게 예술의 역할이었습니다. 장관으로서 가장 큰 책무는 문화예술의 공공적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었죠. 한국에 비하면 칠레의 영화시장이나 산업의 규모는 아직도 미미하지만 좋은 감독들이 탄생하고 국제 사회에서 성과를 낸 것도 이러한 정부의 역할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칸과 아카데미가 주목하는 젊은 다큐멘터리스트 마이테 알베르디는 ‘이터널 메모리’로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20일 개봉.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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