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은 힘이 있습니다. “격렬한 슬픔의 습격. 울다.” 세계적인 비평가로 알려진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애도 일기’ 중 한 구절입니다. 이런 강렬함도 짧은 글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힘이 있는 문장은 어떤 형태일까요?
①어제 저녁 서대문구에서 ○○ 사건 용의자가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붙잡혔습니다.
②어제 저녁 경찰이 서대문구에서 불심검문 끝에 ○○ 사건 용의자를 붙잡았습니다.
어떤 문장이 더 힘있게 느껴지십니까?
①번 피동형 문장보다는 ②번 능동형 문장이 더 힘있게 다가오죠. 힘 있는 문장으로 쓰고 싶다면 이렇게 능동형으로 쓰는 게 좋습니다. 능동형이라는 건 주어가 당한 게 아니라 주어가 뭘 한 것, 동사와 서술어의 주체가 주어인 것, 그러니까 주어 중심의 화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의 기본형은 능동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할 때나 글을 쓸 때, 능동형을 사용하는 게 훨씬 편하고 자연스럽습니다. 빙 둘러말하지 않기 때문에 의미가 모호해지거나 오해가 생길 여지도 없고요. 문장 자체가 짧아진다는 중요한 장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능동형으로 쓰기 위해서는 주어 선택이 중요합니다. 주어가 어떤 행위를 하는 주체가 되도록 써줘야 하니까요. 대부분의 경우엔 문장을 짧게 쓰고, 힘 있는 문장을 만드는 데 능동형이 도움이 됩니다.
물론 피동형 문장이 독자에게 더 힘있게 다가갈 때도 있습니다.
①ㄱ그룹 회장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똑같은 형량을 선고했습니다.
②ㄱ그룹 회장에게 항소심에서도 1심과 똑같은 형량이 선고됐습니다.
①번 문장이 능동형인데도 사람들에게 더 와닿고 힘있게 전달되는 문장은 ②번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더 관심 있는 주체는 재판부가 아니라 ㄱ그룹 회장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능동형과 피동형은 그 쓰임에 따라 힘이 실리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능동형을 쓰는 게 좋은지, 피동형이 더 나은지는 그때그때 선택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능동과 피동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더 전달력 있고 힘 있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능동과 피동을 능수능란하게 요리할 수 있는 테크닉을 기른다면 상대방을 잘 설득하고 상대방과 잘 소통할 수 있을 겁니다.
설득과 소통의 힘을 지닌 글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볼까요? 일단, 일관성이 있어야 설득과 소통의 힘이 커집니다. 일관성이 있다는 건 글의 흐름이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건데, 내 주장이 하나로 집중되고 통일돼야 글에 설득력이 있겠죠. 그런데 글을 쓰다보면 내가 앞에서 한 말을 바로 다음 문장에서 부정하고, 다시 그다음 문장에서 또 뒤집어서 제일 처음의 문장을 긍정하는 꼴이 되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단순한 예문을 들어보겠습니다.
“짧은 글은 좋은 글이다. 그런데 생각만큼 쓰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짧으니까 괜찮다.”
자기 말을 연달아 부정하면서 자기모순에 빠지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에 무슨 얘길 쓰려고 했더라’ 하고 자문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는 잠시 멈추고 초심을 떠올려야 하는데, 그게 잘 정리돼 있지 않으면 참 난감합니다.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한 방향으로 글이 통일되게 흘러가도록 하려면 지향점, 목적지가 뚜렷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주제’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이 글을 통해서 말하려 했던 것, 말하고 싶은 것을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정리해 놓아야 합니다. 컴퓨터에 쓸 땐 화면 가장 윗줄에, 종이에 쓸 땐 가장 첫 줄에 주제를 적어놓고 시작해야 합니다. 왜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목적과 이유를 자신에게 상기시켜주기 때문에 확실한 동기부여도 되고 일관성 있는 글이 나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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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일관성 있게 한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지는 접속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속어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나’와 같이 앞의 내용을 부정하거나 반대되는 경우에 사용하는 역접 접속어, ‘그리고, 그래서’처럼 앞의 내용을 긍정하면서 계속 이끌어가는 순접 접속어입니다. 접속어의 사용과 이야기의 연관성을 살피기 위해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고 생각해볼까요? 상대방 얘기에 ‘근데’라는 말을 꺼냈다면 그 사람의 얘기에 동의하지 않거나 내용이 지루해서 이제 다른 화제로 전환하고 싶다는 무언의 압박을 하는 거죠. 반대로, ‘그리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로 반응하는 경우는 어떤가요? 상대에게 동의해주고 관심을 보이면서 그다음 얘기를 궁금해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말하는 사람도 더 신나서 얘길 하게 되고 분위기도 좋아질 겁니다. 더구나 글은 자신이 온전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글을 쓰면서 계속 부정을 하고 있다면 뭔가 방향성에 문제가 있거나 정리가 제대로 안 돼 있는 거겠죠.
‘그러나, 그런데’ 같은 역접 접속어는 비판의 대상을 먼저 제시하고 이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접속어가 자주 등장한다는 건 내 글의 방향이 일관성 있게 나아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중간이든 마지막 점검이든 자신의 글에 ‘그러나, 그런데’ 같은 역접 접속어가 너무 자주, 많이 등장한다면 그 부분을 다시 한번 잘 살펴보세요. 역접 접속어 앞뒤 문장·문단뿐 아니라, 처음부터 전체적으로 내용이 일관성 있게 잘 이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방향을 다시 잡을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걸 긍정의 화법, ‘그러나, 그런데’가 아닌 ‘그리고, 그래서’로 연결되는 문장 이어가기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긍정적인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게 읽는 사람에게나 쓰는 사람에게나 긍정의 감정을 심어준다고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접속어라는 건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겁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그 거리를 최대한 좁혀서 다리가 필요 없게 해주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죠. 굳이 접속어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매끄럽게 연결되는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송작가
물리학을 전공한 언론학 석사. 여러 방송사에서 예능부터 다큐까지 다양한 장르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짧은 글의 힘’, ‘웹 콘텐츠 제작’ 등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