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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 문장 10개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등록 2023-08-06 10:00수정 2023-08-16 16:32

[한겨레S] 김희수의 3분이면 할 말 다함 _ 말하기와 자존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안녕하세요. 먼저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2002년에 한국방송(KBS)에 입사한 김희수 아나운서라고 합니다. 한겨레 독자들 중에는 제 이름이 생경한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저는 입사 이후 줄곧 뉴스 진행자로 활동했습니다. 보통 예능 엠시(MC)를 해야 금세 대중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데, 저는 그 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제 입사 동기 중에는 홍콩에 거주하는 강아무개 전 아나운서가 있습니다. 이제야 ‘아 그렇구나. 그분 동기구나’ 하면서 조금은 친근함을 느끼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오랜 기간 뉴스 진행자로서 활동하다 보니 제가 얻게 된 이미지는 매우 냉철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는 평을 심심찮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안 그렇습니다. 10여년 전에 많이 들었던 이야기이고, 지금은 세월의 풍파(?)를 많이 겪다 보니 겉으로 봤을 때도 많이 친절해 보인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겨레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이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이제 20년 넘게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말 잘하는 법’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서기 476년과 ‘똑똑이’ 명성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 타인에게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말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게 될까요? 말을 잘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수백 수천 가지의 정의가 존재하겠지만, 저는 ‘내 말을 듣는 상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내 말에 오롯이 귀 기울이도록 만드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상대는 관심이 전혀 없는데, 자기가 준비한 말만 들입다 전달하는 사람을 우리는 말 잘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관찰한 ‘말 잘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①자존감이 매우 높습니다.

②‘3할’의 중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③쉽게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지금부터는 각각의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높은 자존감’입니다.

케이(K)는 서기 476년을 좋아합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는 분? 어머! 그때 유럽에서 서로마 제국이 멸망했다는 걸 알고 계시네요? 서기 476년도에 당시 동서양을 통틀어 무수히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났겠지만 케이에게 중요한 사건은 바로 서로마 제국의 멸망이었습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게 뭐가 그리 중요한 거지?’ 이런 의문이 자연스레 생기시죠?

때는 바야흐로 케이의 중학교 2학년 시절, 세계사(그 당시는 사회) 시험에 서로마 제국의 멸망 연도를 적으라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서기 330년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겼습니다. 내부 분열은 물론 페르시아와 이슬람 세력의 외침을 막으려는 판단이었지만 콘스탄티누스의 천도는 결국 로마의 동서 분할로 이어졌고 서로마 제국은 라벤나 전투에서 게르만 용병들에게 패배합니다.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가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황제까지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좌에 오르면서 서로마 제국은 패망합니다. 그게 476년입니다.

보통의 학생들은 연도 외우는 게 싫어서 역사를 멀리한다고 하는데, 케이는 사건과 연도를 짝지어 외우는 걸 매우 즐겼습니다. 그래서 케이는 주저하지 않고 그 문제에 대한 답으로 ‘서기 476년’을 적어 냈습니다. 숫자를 잘못 쓰지도 않았고 정확하게 적었습니다.

‘후후후 한 문제 맞혔군.’ 케이는 그저 개인적으로 흐뭇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시험이 끝난 뒤 첫번째 세계사 수업 시간. 선생님께서 “이번 시험에서 너희들 다 틀리라는 의도에서 문제를 낸 게 하나 있는데, 전교에서 유일하게 그 문제를 맞힌 녀석이 있다. 그 녀석은 바로 케이다.”

‘오잉, 그 쉬운 문제를 혼자만 맞혔다고?’ 그 문제는 시험의 변별력을 한층 끌어올리기 위한 이른바 ‘킬러문항’이었습니다. 순간 같은 반 친구들의 시선이 케이에게 꽂히며 열렬한 환호를 보냈습니다. 케이는 처음에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얼떨떨했지만 곧 친구들과 마음껏 즐거워했습니다. 그 일 이후로 케이는 ‘똑똑이’라는 별명으로 전교에서 유명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전보다 더 자신감 있는 아이로 성장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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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보잘것없는 일이어도

우리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크건 작건 엄청난 사건을 일으키고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오롯이 본인 혼자서만 겪어온 그 엄청난 사건들에 대해서 매우 인색하게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저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말하기 강좌를 진행하면서 첫번째 수업이 끝난 뒤 다음과 같은 숙제를 내줍니다.

①나를 문장 10개로 소개해 보시오.

②지금의 나를 있게 한 사건을 문장 10개로 작성해 보시오.

어떤 이는 쓸 게 너무 많아서 10개로 줄이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기롭게 어찌어찌 대여섯개까지는 작성하지만, 10개를 채운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걸 절감하게 됩니다.

제가 이 ‘고난의 과정’을 거치게 하는 이유는 수강생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본인에게는 ‘보잘것없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일개 초라한 일’도 타인의 시선으로는 위대한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가 살아온 환경에 갇혀 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 상태인 것이죠. 하지만, 우물 밖에 있는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있는 이가 우물 안을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경이로운 존재 그 자체일 수도 있습니다. 다음 연재에는 제 수업의 수강생들이 작성한 문장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제가 낸 숙제를 해보세요. 당신이라는 우주의 소중함을 찾아보는 경험을 꼭 해보시기 바랍니다.

김희수 한국방송 아나운서

어릴 때는 목소리가 큰 아이였습니다. 청소년기부터는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년인 지금은 스며드는 목소리이고 싶습니다. 현재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말하기 강연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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