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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찍는 강릉 할머니들 “보여주기 부끄럽지만, 내 말 귀담아줬으면”

등록 2023-07-11 08:00수정 2023-07-11 09:58

다큐 ‘작은 정원’ 출연 김희자·문춘희 씨
영화 <작은 정원>의 출연하는 김희자(가운데), 문춘희(오른쪽)과 이마리오 감독(왼쪽).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영화 <작은 정원>의 출연하는 김희자(가운데), 문춘희(오른쪽)과 이마리오 감독(왼쪽).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강릉의 구도심 명주동에는 영화인들이 산다. 평균 나이 75살, 50년 넘게 한 동네에서 우정을 쌓아온 계모임 친구들이 카메라를 들고 컷을 외친다. 12일 개봉하는 <작은 정원>의 일곱 주인공들이다.

“마을에서 휴대폰 사진을 가르쳐주던 선생님이 뭐 다른 것좀 해보자고 했어요. 그때만 해도 영화는 탈렌트들이나 찍는 건 줄 알았지, 늙은이들이 나오는 거 누가 보려고 하겠냐고만 생각했지요.” 김희자(76)씨가 말하자 이들이 완성했던 단편 <우리 동네 우체부>의 공동 감독이자 마을 통장인 문춘희(76)가 받았다. “우리 나이에 핸드폰을 잘 못 다루잖아요. 그런 걸 가지고 이야기하는 걸로 영화가 될 줄 몰랐는데 이게 상을 타니까 깜짝 놀랐죠. 별거 아니네, 우리 한번 잘 해보자 이런 생각도 들었고요.”

‘날라리’같은 젊은 우체부가 터줏대감 할머니들의 집을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단편으로 만든 <우리 동네 우체부>는 2021년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서울독립영화제,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등에서도 상영됐다. <작은 정원>은 이들의 수상부터 차기작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를 각자 화면에 담는 과정까지 다큐멘터리로 엮어냈다. 이마리오 감독은 말했다. “명주동이라는 오랜 동네가 지금까지 활력을 잃지 않은데는 ‘언니’들이 큰 역할을 했어요.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살아가시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나도 저렇게 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2019년부터 3년 동안 촬영을 했습니다.”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는 모두가 각자 휴대전화를 켜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작업으로 완성됐다. 산책을 하고 미용실에 가는 일상풍경으로 시작해 자식에 대한 애틋한 감정, 먼저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 등 쑥스러워 좀처럼 꺼내놓지 못하는 속마음을 카메라 앞에서 털어놓는다. “전에는 내가 없었어요. 상대방만 눈에 보이니 평생 상대방 위주로 살고 뭐든지 양보하고 섭섭한 일이 있어도 참고 살았죠. 그런데 화면에 내가 보이니까 내 마음도 보이게 된 거 같아요. 전보다 표현을 많이 하게 되니까 남편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거 같고 아이들도 엄마가 이야기도 많아지고 밝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카메라를 든 희자씨의 극적인 변화는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내 말을 귀담아들어 줬으면 좋겠어요. 전깃불 좀 켜고 삽시다.” 희자씨의 카메라는 남편에게 참아왔던 말들을 전하거나 남편이 엉망으로 넣어놓은 빨래들을 ‘고발’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봉을 앞두고 희자씨는 맘 앓이를 한참 했다. 올 2월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영화에 담은 에피소드들이 남편에게 미안해졌다. “국어 선생님으로 평생 책만 보면서 산 남편이 은퇴하면 집안일 좀 도와줄 줄 알았더니 또 손도 까딱 안 하고 책만 보니까 내가 약이 올랐죠. 그래도 그동안 동영상 찍은 것도 보여주고 남편도 같이 찍으면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시니까 내 마음이 너무 안좋고 참을 걸 그랬다고 후회가 많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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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원>. 시네마달 제공

아이 셋을 키우며 평생 살림만 해온 춘희씨는 자기한테만 말하지 않고 큰 수술을 받으러 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카메라를 통해 처음으로 드러냈다. 처음 알게 된 “내 걸음걸이”만큼 “나이 들어가는 내 외모나 목소리 같은 것도 받아들이게 되더라”고 했다. 춘희씨는 자신이 태어나서 평생 살아온 명주동 마을을 앞으로도 계속 찍고 싶다고 했다. “벚꽃 필 때 눈 올 때 우리 마을의 사계절을 영화로 남기고 싶어요. 눈 오는 날 새벽녘에 집에서 불빛 나오는 게 너무 예쁘거든요.”

다음 작품까지 구상할 만큼 영화적 열정이 넘치지만 정작 개봉소식은 부끄러워서 자식들한테 알리지도 않았단다. “아이들이 보면 엄마를 어떻게 생각할까 창피해서 아직 이야기도 안 꺼냈어요.”(문춘희) “가족들이 봐도 될까요? 괜찮을까요?”(김희자) 자제분들이 더 좋아하실 거 같다고 답하니 두 ‘언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머금어졌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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