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그날들>에 출연하는 배우 유준상.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1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는 남자가 있다.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그날들>에서 청와대 경호부장 차정학 역을 맡은 배우 유준상이다. 김광석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은 2013년 초연 이후 2021년까지 다섯 시즌을 이어왔다. 올해 10주년을 기념해 다음달 12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여섯번째 시즌(9월3일까지) 막을 올린다.
“10년을 해보니 예전엔 그냥 했던 대사 한마디, 노래 하나에 대한 감정이 좀 달라진 것 같아요. 같은 대사도 이 상황에서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알고 하고, 같은 노래도 어떻게 불러야 이야기와 더 맞아떨어질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2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유준상이 말했다.
올해 54살인 그는 나이 들면서 작품에 대한 공감이 더 깊어졌다고 했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도 이해하게 됐고,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슬픔과 미련도 경험한 나이가 됐어요. 이제는 이 대사, 이 노래 가사가 왜 여기 있는지 더 잘 보여요. 나이 먹는 게 나쁜 게 아니구나, 생각했죠.”
뮤지컬 <그날들>에 출연하는 배우 유준상.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유준상은 정학의 20대와 40대 시절을 모두 연기한다. 그는 “무대에선 내가 20대라고 생각하며 임한다”고 했다. 정학의 친구 무영은 20대 시절만 나오기에 아이돌 출신 등 젊은 배우들이 연기한다. “무영을 연기하는 후배와 친구처럼 친해지려고 노력해요. 무대에서도 친구처럼 보이려고 몸 관리도 더 하고요. 아이돌 팬 관객을 보면 ‘둘이 친구라는 게 말이 돼?’ 하는 표정이 다 보여요. 그런데 뒤로 갈수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느껴져요. 그러면 안도하죠.”
그는 공연하면서 감정이 북받칠 때가 많다고 했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서른 즈음에’)을 노래하면서 ‘내 40대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울컥하고, “집 떠나와 열차 타고”(‘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면서 자신이 집과 가족을 떠나던 순간이 떠올라 눈물이 흐른다고 했다. 우는 관객을 보면 따라 울고, 상대 배우가 울어도 따라 운다.
심지어 김광석을 떠올리면서도 운다. “원래 김광석 노래 좋아했지만, 이 작품 하면서 애착이 더 깊어졌어요. 공연 때 객석 하나를 ‘김광석 자리’로 정해 비워놓고 꽃을 놔두거든요. 공연하다 그 자리가 보이면 ‘김광석님도 저기서 보고 계시는 거야’ 하는 생각에 또 울컥해요.”
뮤지컬 <그날들> 10주년 기념 공연 포스터.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는 김광석 노래의 진실된 가사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점을 <그날들> 롱런의 비결로 꼽았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 그리움, 미련, 용서 같은 주제는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 와중에 용기와 희망을 가져야 하고요. 이 이야기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그날들>을 할 수 있을까? “40대 때는 냉정하게 ‘55살까지만 해야지’ 했어요. 지금 그 나이가 되니 동작도 더 빨라지고 해서 ‘더 할 수 있겠는데? 60살까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데 연출은 ‘선배님, 앞으로 10년 더, 65살까지 하셔야죠’ 하더라고요.” 그는 <그날들>이 아니어도 80살까지 뮤지컬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이 들수록 배우 생활을 하는 데 더 많은 희생과 노력이 든다고 그는 말했다. 건강 관리를 위해 테니스를 죽어라 치고, 매일 뮤지컬 전 곡을 다 부르며 연습한다. 노래와 연기 레슨도 빼놓지 않는다. “50대 들어 제 분수를 잘 알게 됐어요. 더 많이 연습하고 노력해야 어딘가에 쓰일 수 있다는 걸 알아요. 내가 쓰임을 당하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잘 버텨보려 합니다.”
뮤지컬 <그날들>에 출연하는 배우 유준상.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늘 열정이 넘치는 그는 또 다른 일들도 여럿 펼치는 중이다. 몽골에 여행 갔다가 즉흥적으로 스마트폰으로 찍은 단편영화 <평온은 고요에 있지 않다>가 오는 29일 개막하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됐고, 촬영을 마친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2>(tvN)는 7월 말 방영된다. 직접 작곡한 클래식 음반 녹음을 마쳤고, 올해 안에 에세이집도 발간한다. 뮤지컬 대본·작곡 작업도 하고, 어른을 위한 동화도 집필 중이다.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오냐’는 물음에 그는 답했다. “젊을 때 비하면 줄었죠. 그때는 열정이 너무 넘쳐 주체가 되지 않아 많이 서둘렀어요. 이제는 서두름도 줄고, 제가 저 스스로를 말리고 있어요.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있는 날이면 ‘오늘은 뭔가 와닿지 않네’ 이래요. 하하.”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