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블루스소사이어티와 한겨레신문사 공동 주최로 열리는 ‘2023 서울국제블루스페스티벌’에 출연하는 신촌블루스 엄인호(왼쪽)와 기타리스트 이경천.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신촌블루스의 엄인호(71)는 한국 블루스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1980년대 한국 블루스의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터줏대감처럼 중심을 잡아왔다. 오는 30일부터 7월2일까지 서울 한강 노들섬 라이브하우스에서 한국블루스소사이어티와 한겨레신문사 공동 주최로 열리는 ‘2023 서울국제블루스페스티벌’ 마지막 날 무대의 ‘호스트’로 그가 나선 이유다.
그룹 트리퍼스 출신 이경천(75)은 ‘기타리스트들의 기타리스트’로 불린다. 대중에겐 낯설지만 기타 좀 친다는 이들 사이에선 대가로 추앙받는 기타리스트다. 그는 서울국제블루스페스티벌 마지막 날 엄인호의 ‘친구’로 무대에 오른다. 솔로 무대는 물론, 이날 출연진인 신촌블루스·김목경·소울트레인과 함께 잼(즉흥 연주)을 펼친다.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둘은 서로 형님·아우 하며 정다운 모습이었다. 처음 마주친 인연은 오래 전이지만,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건 10여년 전부터라고 한다. 그런데도 마치 수십년 전부터 함께해온 사이처럼 느껴졌다. 기타와 블루스로 끈끈하게 엮였기 때문이리라.
한국블루스소사이어티와 한겨레신문사 공동 주최로 열리는 ‘2023 서울국제블루스페스티벌’에 출연하는 신촌블루스 엄인호(왼쪽)와 기타리스트 이경천.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엄인호는 유명 음반사에 들어갔다가 맘에 안 들어서 나왔다. 1986년 “그냥 우리끼리 재미난 음악 해보자”고 이정선, 한영애, 김현식 등과 서울 신촌 라이브 카페 레드제플린에서 뭉친 게 발단이었다. 처음엔 이름도 없었는데, 방송 인터뷰에서 갑자기 팀명을 물어서 얼결에 ‘신촌블루스’라고 답한 게 이름이 됐다. 2집 이후 이정선, 한영애, 김현식 등은 각자 활동했고, 엄인호가 지킨 신촌블루스에는 이은미, 정경화, 강허달림 등이 보컬로 거쳐갔다. 지금은 제니스·강성희·김상우가 보컬을 맡고 있다.
“당시 방송에선 밝은 음악만 해주길 원했어요. 거기에 일종의 반감을 가진 우린 하고 싶은 대로 분위기 있고 묵직한 블루스를 했던 거죠. 신촌블루스는 직접 만든 창작곡이 많아 외국 곡 대신 우리 곡을 주로 연주했어요. 우리 히트곡이 많아서 외국 곡을 하면 오히려 관객들이 안 좋아했어요.”
“우리 때는 한국 노래 하면 오히려 이상했는데….” 옆에서 듣던 이경천이 말했다. “1970년대 초반 들어간 트리퍼스는 미군 클럽에서 공연을 많이 했어요. 그러니 외국 곡을 할 수밖에. 나이트클럽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컨트리, 록, 사이키델릭 등 여러 장르를 했는데, 그 모든 바탕에 블루스가 있거든요. 블루스가 자연스럽게 몸에 익었죠.”
한국블루스소사이어티와 한겨레신문사 공동 주최로 열리는 ‘2023 서울국제블루스페스티벌’에 출연하는 신촌블루스 엄인호(오른쪽)와 기타리스트 이경천.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엄인호가 이경천을 처음 본 건 1980년대 초반이었다. 막 밴드를 시작한 엄인호는 당시 잘나가는 밴드들이 연주하던 서울 강남 나이트클럽 머치모어에 구경하러 갔다가 이경천을 봤다. “감히 인사는 못하고 춤추면서 흘끔흘끔 보기만 했어요. 그때 난다긴다하는 기타리스트 형들이 다 거기서 연주했는데, 지금까지 기타 치는 형은 경천이 형밖에 없어요.”
1987년 일본에 간 이경천은 비자 만료로 홍콩으로 넘어갔다가 영국까지 흘러가게 됐다. “한국에 돌아와보니 트리퍼스 시절 알던 방송사 피디가 고위 간부가 됐더라고요. 음악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달라고 해서 자문하다 작가 일을 하게 됐어요. <지구촌영상음악> <열린음악회> <가요톱텐> 등에 관여했죠. 나중엔 드라마 음악 일도 했고요.”
이경천은 2000년 서울 강남 논현동에 라이브 클럽 리더스를 열었다. 기타리스트들이 자유롭게 와서 연주하는 곳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신대철, 김목경, 한상원, 이중산 등 강호의 고수들이 모여들었다. 자신도 매일 무대에 올랐다. 2010년께 엄인호가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술 한잔 마시고 함께 즉흥 연주를 하면서 친해졌다. 정식 공연도 종종 같이 했다. 리더스는 코로나 팬데믹 때 폐업했다고 한다.
2023 서울국제블루스페스티벌 포스터. 한국블루스소사이어티 제공
각자 생각하는 서로의 장점은 뭘까? “경천이 형님은 거의 모든 장르를 넘나드는 스케일이 있어요. 연구를 참 많이 하죠.” “엄인호는 기타를 잘 치고 못 치고의 차원이 아니라 자기만의 블루스를 가지고 있어요. 연주자가 까딱 잘못하면 카피, 흉내 내기가 되는데, 그런 거 없이 그냥 엄인호예요.”
이번 공연에서 둘은 신촌블루스 레퍼토리 몇곡 같이 연주하고, 맨 마지막에 에릭 클랩턴의 ‘아이 샷 더 셰리프’와 ‘레일라’ 합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 예정이다. 엄인호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하듯 나누는 즉흥 연주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