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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투자 확대 약속에도…웃지 못하는 드라마 제작사들

등록 2023-06-23 08:00수정 2023-06-23 08:33

22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 이야기’ 에서 테스 서랜도스 공동 최고경영자가 이야기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22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 이야기’ 에서 테스 서랜도스 공동 최고경영자가 이야기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최근 국내 드라마 시장이 어려운 시기와 맞물리면서 모든 작품(대본)이 넷플릭스로 몰린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22일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와 국내 제작사 대표들의 간담회에서 <오징어 게임>을 만든 김지연 퍼스트맨스튜디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김 대표의 말처럼, 제작사들의 넷플릭스 줄서기가 심해지면서 케이(K) 드라마 세계화를 북돋웠던 넷플릭스가 시장 침체의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넷플릭스의 시장 지배력이 확대되면서 지상파, 케이블,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제작사들이 방영 채널(플랫폼)을 잡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 제작을 병행하는 한 스튜디오의 임원은 “지금 나오는 모든 대본의 퍼스트룩(투자 우선권)은 넷플릭스다. 모두가 넷플릭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협상의 주도권이 이미 넷플릭스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제작사들이 넷플릭스에 줄을 서는 이유는 안정적인 제작비를 확보할 수 있고 글로벌 진출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제작비 350억원의 <수리남>이나 250억원이 투입된 <택배기사> 같은 대작들은 넷플릭스의 지원이 있었기에 제작이 가능했다.

또 넷플릭스 상영작들은 대부분 전세계에 공개되기 때문에 배우나 감독들의 지명도가 높아지는 데에도 유리하다. 한 중견 영화감독은 “배우들은 넷플릭스에서 작품이 공개되면 에스엔에스(SNS) 팔로어가 전세계에서 순식간에 늘어나는 즉각적인 반응을 경험한다. 중국 등 큰 국외 시장이 막힌 상황에서 개봉보다 넷플릭스 공개를 원하는 배우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한국 투자를 늘린다 해도 공개할 수 있는 오리지널 작품 편수는 한정돼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제작된 오리지널 작품은 25편이고, 올해는 28편이다. 내년에는 이보다 적은 편수를 공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징어 게임> 성공 이후 드라마 제작이 늘었는데 작품을 공개할 기회는 줄어든 것이다. 업계는 2020년, 2021년 연간 140편 수준이었던 전체 드라마 제작 편수가 2022년 160편 정도로 늘어난 것으로 추산한다.

구독자 정체로 수익성이 악화된 티빙·웨이브 등 국내 오티티는 올해 들어 오리지널 드라마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이거나 사실상 중단했다. 디즈니는 미국 본사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대규모 구조조정 중인 가운데 기존 국내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기획팀이 대부분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견 제작사 피디는 “1, 2년 전만 해도 넷플릭스가 안 되면 (작품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다른 오티티 채널도 모두 막혔다. 여기에 지상파까지 드라마 방영을 줄이면서 찍어놓고 유통을 못 하는 작품이 수십편에 이른다”고 말했다.

서랜도스 공동 최고경영자는 이날 간담회에서 “한국의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겠다”고 말했지만 넷플릭스의 독점적 지배력이 강해질수록 콘텐츠 다양성에 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도훈 영화평론가는 “지금처럼 모든 지식재산권을 넷플릭스가 소유하는 오리지널 작품에 매달리는 상황이 강화되면 한국 창작업계는 하나의 플랫폼을 위한 납품업자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다”며 “과거 한국 영화 시장에서 씨제이(CJ)엔터테인먼트 등 일부 대기업이 시장을 휩쓰는 와중에도 작은 제작사들이 내놓는 독창적인 프로젝트들이 꾸준히 있었기 때문에 한국 영화의 다양성과 질적 도약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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