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는 하늘 아래>(1977)같은 대중성 있는 영화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 등 사회비판적 작품으로 한국영화를 이끌었던 이원세 감독이 19일 별세했다. 향년 83.
평안남도 출신으로 해방 후 가족과 함께 월남한 고인은 경기도 시흥의 군자염전마을에 정착해 성장했다. 이곳에서의 성장은 훗날 그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쳐 <엄마 없는 하늘 아래>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도 염전마을을 이야기의 무대로 삼았다.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이원세 감독은 재학 중이던 1961년 김수용 감독의 연출부로 들어가면서 충무로 영화현장에 뛰어들었다. 소금밭 노동자들의 고된 삶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시나리오 <수전시대>를 써 19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입선작에 당선됐고 이 작품에서도 연출을 맡은 김수용 감독의 연출 아래 조감독을 했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971년 남편을 잃은 여자(문희)가 벌을 치는 남자(신성일)와 사랑에 빠졌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멜로드라마 <잃어버린 계절>(1971)로 감독 데뷔를 한 뒤 <나와 나>(1972),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아빠하고 나하고>(1974) 등의 작품을 연달아 발표했다. 고인은 1970년대 한국영화의 정형화된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감독들인 하명중, 이장호 등 6명의 젊은 동료 감독들과 함께 영화운동단체 ‘영상시대’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실험적 시도가 돋보였던 작품들은 흥행에 쓴맛을 봤고 가족 신파 드라마인 <엄마 없는 하늘 아래>를 발표하며 흥행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다진다. 이 밖에도 70년대 후반에는 태국 등 국외 합작으로 괴수물 <악어의 공포>(1977), 실제 총격전을 감행하며 특수효과도 강화한 전쟁영화 <전우가 남긴 한마디>(1979)등 다양한 장르의 상업영화를 연출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상업영화 연출작들이 잇달아 성공한 이후 그는 자신이 큰돈을 벌어다 준 한진흥업을 설득해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의 연출에 도전했다.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의 시나리오 사전 검열로 촬영현장에서 8번이나 수정을 할 정도로 누더기가 된 대본으로 촬영을 마쳐야 했지만 서정적인 화면 안에 주인공들의 고통과 분노를 그려내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혜영, 조용원이 주인공으로 나온 차기작 <여왕벌>(1985)에서도 이태원을 배경으로 서양남자(문화)에 착취당하는 여성을 그리며 사회비판적 시선을 담으려 했으나 ‘반미 운동권영화’라고 정부에 낙인이 찍히면서 개봉 전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 2011년 귀국한 고인은 2021년 춘사국제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으며 “시나리오를 집필 중이며, 완성된 영화로 다시 찾아뵙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혀 영화인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