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오브 스틸>(2013)로 시작한 디시확장유니버스(DCEU:DC Extended Universe) 10년의 마지막 작품 <플래시>는 길었던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 천하를 끝낼 수 있을까?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실망스러운 작품을 반복해 봐야했던 디시팬들로서는 올해 가장 큰 기대작일 <플래시>가 14일 개봉한다.
작품 리뷰에 대한 공개 금지 시한이 미국에서 풀린 뒤 하루 지난 8일 영화평가 사이트 로튼토마토의 신선도 지수(전문가 평가)는 71%. 혹평은 아니지만 그동안 디시를 되살릴 작품이라고 한참 전부터 나왔던 화려한 소문을 떠올리면 고개를 갸웃거릴 점수다. 흥행에 더 결정적인 팝콘 지수(일반관객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플래시>는 히어로 무비의 기본 요소들에 충실하다. 또한 요즘 히어로 무비 프랜차이즈의 중요한 코드가 된 ‘향수’를 적절하게 사용한다.
<플래시>는 무엇보다 기본적인 이야기의 틀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1961년 코믹스 <두세계의 플래시>에서 최초로 멀티버스(다중우주)를 선보였지만 이제 와 원조 멀티버스를 주장하기에는 이미 마블의 <닥터스트레인지>시리즈에 비해 한참 늦은 출발. 멀티버스라는 이제는 ‘흔해빠진’ 소재로 승부를 걸기 위해서는 스토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특히 엠시유 영화들은 페이즈4부터 평가와 흥행에서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으며 스토리가 갈수록 엉성해진다는 걸 계속 지적받아왔다. 개봉 일정에 맞춰 무리한 촬영일정을 강행하다가 시나리오 작가들이 촬영현장에서 ‘쪽대본’을 쓰는 상황까지 흔히 벌어지면서 질적 저하를 낳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최근 엠시유 영화 중에 유일하게 호평을 받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의 제임스 건 감독은 지난해 11월 디시스튜디오의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스토리를 완전하게 완성한 다음에 촬영에 들어가겠다”는 다짐을 했을 정도다.
어릴 때 엄마가 괴한에게 살해당하고 아빠마저 살인범으로 몰린 배리 앨런(애즈라 밀러)은 오로지 아빠의 무고함을 입증하기 위해 법의학을 공부하다가 실험실에서 쏟아진 화학약품을 맞고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초능력을 얻게 된다. 브루스 웨인(벤 애플랙)의 지도를 받고 원더우먼(갤 가돗)의 지원을 받으며 ‘저스티스 리그’의 막내로 활동하다가 자신의 가공할 속도로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엄마의 억울한 죽음을 되돌리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
저스티스 리그의 막내이자 배트맨의 제자로 좌충우돌하며 히어로로 성장해나가는 배리 앨런은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를 떠올리게 한다. 젊은 플래시는 제임스 건이 이끌어갈 리부트 시리즈에서 주요한 히어로로 활약할 것임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앳된 청년 특유의 활기와 천진함으로 디시이유의 고질적 문제인 어두운 분위기를 밝게 만든다. 과거에서 만난 또 다른 자신과 싸우고 협력하면서 두 명의 플래시를 활용해 액션 장면의 화려함과 스케일도 두배로 키웠다.
팀버튼의 <배트맨>시리즈를 보면서 디시의 작품에 빠져든 오랜 관객들에게는 33년 만의 원조 배트맨 마이클 키튼의 귀환이 더 반갑다. 현재의 조언자인 배트맨은 벤 애플랙이, 과거로 돌아가 만난 자신과 함께 뛰는 플래시를 돕는 배트맨은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다. 먼지 수북이 쌓인 배트케이브에 불이 켜지고 배트윙이 화면에 드러나는 장면은 올드팬들에게 더없이 설레는 순간이다. 여기에 또 다른 전작의 배트맨이 깜짝 등장한다.
<플래시>에는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뿐 아니라 크리스토퍼 리브와 니콜라스 케이지의 슈퍼맨까지 이전 디시 영화의 주요 캐릭터들이 모두 등장한다. 향수 전략을 다 털고 새로운 캐릭터들은 아직 매력을 발산하지 못한 엠시유에 비하면 자신들이 훨씬 더 유리한 고지에 있음을 알리는 자신만만한 도전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임스 건 체제의 디시는 <블루 비틀>과 호평받았던 <아쿠아맨> 차기작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의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최고의 기대작이 될 제임스 건의 연출작 <슈퍼맨: 레거시>는 2025년 개봉 예정이다.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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