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베자르 발레 로잔 공연

등록 2005-02-15 16:12수정 2005-02-15 16:12

현란하고 관능적 안무 그 명성 그대로

무용수들 힘·도약은 기대 못미쳐

무용 공연에서 다음 막을 기다린 것 가운데 가장 긴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새 관객은 이미 지켜본 세 작품에 대한 흥분으로, 또는 무대 안쪽이 궁금해 종종 웅성댔다. 커튼 안쪽에선 공연의 마지막 작품, 바로 <볼레로>를 위해 큰 원탁이 설치되는 중이었다. 4~5분이 지나고서야 무대는 다시 열렸다.

주홍색 원탁 위의 한 남자 무용수(사진). 번갈아 내디딘 무릎이 반복적으로 접히는 절도 있고 단순규칙적인 춤사위와 동시에 팔, 손목 따위로 그려내는 힘이 넘치면서도 현란한 동선이 교차한다. 이 극적 대비를 이어주는 허리는 지독히도 꼿꼿했다. 삽시에 땀이 이 무용수, 옥타비오 스탠리의 허리 위 알살을 덮었다. 남성의 관능이 모리스 베자르에 의해 숨을 쉬는 방식이었다. 배경음악인 모리스 라벨의 잔잔하고도 리드미컬한 음악이 점점 거세지며 관객을 압도하는 춤이 되어 보여지는 방식이었다.

삼면으로 둘러 앉아있던 30여명의 무용수가 하나하나씩 스탠리의 춤을 따라하며, 마침내 절대자를 떠받들듯 원탁 아래로 헤쳐 모여 작은 점이 되기까지 17분. 관객은 열광했고 무용수들을 10차례 가깝게 무대 앞으로 불러냈다.

지난 12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아트홀. ‘현대 발레의 혁명가’로 꼽히는 모리스 베자르가 이끄는 ‘베자르 발레 로잔’의 내한 공연 첫날이었다.

그 명성에 걸맞게, 네 작품 모두 안무를 포함한 형식적 아름다움에 대한 이견은 없는 듯 하다. 평이 갈리는 대목은 무용수들의 실력이다. 무용평론가 장인주씨는 “대부분 젊은 무용수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원들 실력이 떨어졌고, <불새>나 <볼레로>의 주역도 기대보다 힘과 카리스마가 떨어졌다”고 평했다. <불새>의 주역은 여성적으로 비칠 만큼 선이 여렸고 도약도 크지 못했는데, 이렇듯 대부분의 주역이 1979년부터 베자르와 함께한 질 로망(부감독이자 <브렐과 바르바라> 주역)의 관록과 극명히 대비된 게 사실이다.

이제 현대 발레의 산 역사이자 신화가 된 베자르. 올해로 일흔여덟이 되었고, 안무를 시작한지는 50년째다. 이날 <불새>(1970년) <브렐과 바르바라>(2001) <빈, 빈>(1982)에 이어 <볼레로>(1961)로 갈무리하며 한국 관객이 자신의 50년 안무 인생을 가로지르도록 한 까닭이다. 모두 처음 한국에 선보인 작품이다. 게다가 큰 공연치곤 이례적으로 지역 단독 공연이어서 원로 평론가 김영태씨를 포함해 이름 있는 무용 관계자는 모두 불원천리 ‘한밭’을 메웠다. 하지만 베자르는 약속과 달리 오지 않았다. 이틀 공연의 유료관객 점유율도 45% 선에 그쳤다. 질 로망은 “베자르의 실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작품을 통해 그 존재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고, 우리 관객은 줄곧 ‘서울공화국’을 비난하지만 한국, 그 안에서 지역의 공연이 감내하는 한계는 여전히 커 보인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