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신라인의 미소’는 환생한 사람의 얼굴?

등록 2023-06-01 07:00수정 2023-06-01 08:48

‘주술’과 ‘도사’는 한국미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미술과 주술 주제로 이색학술대회 열려
일제강점기 경주 사정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신라시대의 사람 얼굴 무늬 수막새 기와. 당대 건축물에 화재를 일으키는 화마(불귀신)를 막기 위해 불교의 왕생자상을 형상화한 것이란 설이 최근 한정호 동국대 교수에 의해 제기됐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일제강점기 경주 사정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신라시대의 사람 얼굴 무늬 수막새 기와. 당대 건축물에 화재를 일으키는 화마(불귀신)를 막기 위해 불교의 왕생자상을 형상화한 것이란 설이 최근 한정호 동국대 교수에 의해 제기됐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730’을 쳐보세요.

‘주술’과 ‘도사’의 신통력은 한국 미술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황당한 물음이 아니다. 부귀영화를 좇고 흉한 기운은 내치려는 길상과 벽사의 갈망은 권력자든 민중이든 피해갈 수 없었다. 이를 반영한 불교와 무속계의 주술과 비기, 비책은 옛적 이 땅의 선조들이 미술품을 창작한 과정에서 유력한 막후 동력으로 작동했다.

실제로 최근 국내 미술사학계의 연구자들은 이런 주술의 미술사를 조금씩 파헤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경주에서 출토된 이래 ‘신라인의 미소’로 널리 알려지게 된 신라시대의 얼굴무늬 수막새 기와는 불귀신을 막는 왕생자(죽어서 새로이 다른 세상에 태어난 사람)의 상이라는 설이 제기되었다. 그런가하면 조선시대 궁궐에서 임금이 앉는 어좌의 뒤편을 수놓는 대형 그림 ‘일월오봉도’에도, 무속계에서 궁면이라고 부르는, 해와 달의 형상을 한 입체 금속판 조형물을 붙였던 시각적 풍습이 있었고 이는 곧 나라 권력의 영속을 기원하는 주술적 상징성을 부여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이런 근래의 연구성과들을 모아 한국 미술의 역사에 입김을 넣은 주술과 권력의 다기한 양상들을 다루는 이색 심포지엄이 펼쳐진다. ‘미술과 초자연: 길상, 벽사, 주술, 영험’이란 제목으로 3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동악미술사학회가 주최하는 학술대회가 화제의 담론마당이다. 허형욱 국립박물관 연구관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우선 눈길이 쏠리는 논고는 한정호 동국대 교수가 발표하는 ‘화마와 신라의 장식기와’.

한 교수는 이 논고에서 신라 장식기와의 문양인 연꽃, 용, 치미, 날짐승, 사자 등을 화마(불귀신)를 용납하지 않는 상극(相剋)의 상징물이자 화재 위험에서 건물을 지키는 벽사적인 의미를 담은 것들로 해석한다. 경주 황룡사 터에서 발견된 지붕 장식물 치미에 새겨진 연꽃무늬와 웃는 사람 얼굴 무늬는 불경 <관무량수경>의 칠보연못에서 새롭게 태어나 화생하는 왕생자의 환희어린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며, ‘신라인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영묘사터 출토 얼굴무늬 수막새 역시 구품연지 연꽃서 화생한 왕생자 얼굴을 표현한 것이라는 파격적 해석이다.

명세라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사는 궁궐 전각에 있던 금속제 거울 일월경이 지닌 주술, 권력 측면의 상징성을 분석한다. 일월경은 경복궁 근정전과 덕수궁 중화전 등에 있던 ‘일월오봉도’의 해와 달 부위에 철사로 이어져 붙어있다가 해방 뒤 사라져버린 기구한 내력을 지니고 있어 흥미로운 논의가 기대된다. 이외에도 부적 용도로 쓰인 불상과 탑 모양의 도장인 ‘불인(佛印)’과 ‘탑인(塔印)’의 역사적 활용양상(중앙승가대 교수 정각스님)과 19~20세기 근대 소상팔경도에 새롭게 덧붙여진 길상과 벽사의 상징 분석(장계수 동국대 연구원), 불교 사천왕 신상의 하나인 ‘비사문천’에 대한 초현실적 영험담과 신앙이 티베트와 당나라의 전쟁사에서 싹텄다는 역사적 논증 성과(일본 나라여자대학 교수 사토 유키코) 등이 발표될 예정이다. 뒤이어 정우택 동국대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김수진(성균관대), 김자현(동국대), 옥나영(홍익대), 서남영(경북대) 강사와 강영주(문화재청), 김동하(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연구사가 발표자들과 함께 토론을 벌이게 된다. 학회 회장인 신광희 중앙승가대 교수는 “미술은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때론 초월하려는 이중적인 속성을 지닌다”면서 “인간의 바람과 욕망이 미술에 어떻게 담겨 있는지 그 다양한 양상을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학회 쪽은 원래 대회 주제를 ‘미술과 주술’로 구상하기도 했으나 정치적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 ‘미술과 초자연’으로 다듬었다는 후문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