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생 직장인 이야기를 다채롭게 펼치는 <레이스>. 디즈니플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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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도 엠제트(MZ)야?’
젊은 층을 뭉뚱그려 표현할 때 ‘엠제트’만한 게 없다. 하지만 정말 엠제트를 하나로 싸잡아 이야기해도 될까? 최근 드라마들은 최대 31살까지 차이 나는 ‘엠’(밀레니얼 세대, 1980년대 초~1990년대 중반 출생)과 ‘제트’(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를 나눠 조명하는 등 다양한 세대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전 직원이 4명인 작은 홍보대행사. 입사 일주일 된 신입이 회사가 가장 바쁜 날 월차를 썼다. 일손 부족하니 나오라는 실장(박윤조) 얘기도 무시한다. 전화도 안 받고, 문자에 답도 없다. “회사가 바쁘면 나와야지, 연락이 안 되는 게 말이 되냐?”는 실장 지적에, “쉬는 날 연락 안 받는 건 내 권한이다. 내가 작은 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월급은 적지만 개인 사정을 잘 봐주기 때문”이라고 신입은 받아친다. 신·구 세대 대립처럼 보이지만, 여기서 실장은 ‘엠’이고, 신입은 ‘제트’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가 지난 10일부터 6회까지 공개한 12부작 드라마 <레이스>는 1990년대생 직장인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30대 중반인 박윤조(이연희) 실장은 작은 회사에서 신입 신지효(백지혜)한테 ‘영꼰’(어린 꼰대) 소리를 듣더니 대기업 홍보실로 이직해서는 기성세대를 보며 답답해한다. 이 드라마는 엠제트 세대 안에서도 존재하는 세대 차이를 보여준다.
일과 사랑 둘 다 포기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연애코치’ 데보라(유인나)가 등장하는 <보라! 데보라>(ENA)도 엠제트 안에서도 존재하는 차이를 드러내며 젊은이들이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펼친다.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트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주요 캐릭터로 배치하며, 엠과 제트 세대 사이의 간격을 그려낸다.
20대 전공의 캐릭터를 본격적으로 등장시킨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3. 에스비에스 제공
드라마 속 제트 세대는 극적인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낭만닥터 김사부3>(SBS)에서 전공의 장동화(이신영)는 밤샘 근무 중 새벽에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고 피시(PC)방에 간다. 그러면서 에스엔에스(SNS)에는 이렇게 쓴다. “오늘도 밤샘 야근, 새벽 퇴근 실화냐.” 이를 야단치는 선배한테는 “저희는 주 80시간만 일하도록 교육받고 있다. 전공의 36시간 연속 근무 못 하게 되어 있다”고 얄밉게 말한다. <닥터 차정숙>(JTBC)에서도 3년차 전공의 전소라(조아람)와 1976년생이지만 후배인 차정숙(엄정화)은 초기에 갈등 관계로 시작한다. 한 드라마 제작사 프로듀서는 “드라마의 중심 요소는 갈등인데, 비슷한 세대 간 갈등은 다양한 이야기를 유발할 수 있다”며 “할 말 다 하고 권리를 내세우는 제트 세대 캐릭터는 생동감이 넘쳐 점차 주요 인물로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드라마는 여러 세대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펼치며 교집합의 실마리를 찾아가기도 한다. 지난 24일 4부까지 공개한, 오티티 웨이브 <박하경 여행기>(8부작)는 4부 ‘돌아가는 길’에서 박하경(이나영)으로 대표되는 젊은 여성, 중년, 노년을 등장시켜 각자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로 한 회를 채웠다. 뉴스를 보던 노인(박인환)은 “젊은 애들이 지 편한 일만 하려고 하니 문제다. 우리 때는 다 참고 살았다. 목숨 걸고 해야지”라고 말하면, 중년은 “목숨 걸면 어떡해요 죽으면 어떡하려고. 그러니 데모하는 거 아니냐”고 받고, 박하경은 “어느 세대든 항상 힘든 점이 있다. 그건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정리한다. 박하경은 노인이 손주와 영상 통화하는 것을 보며,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된 뒤 혼자 힘든 시간을 견뎠을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노인은 아이들을 주려고 만든 음식을 박하경한테 건넨다.
시대를 바라보는 여러 세대의 목소리를 듣는 <박하경 여행기> 4회. 웨이브 제공
<레이스>의 신지효, <낭만닥터 김사부> 속 장동화의 행동이 늘 잘못된 것처럼 다뤄지는 등 여전히 기성 세대 시선으로 20대를 바라본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드라마가 엠제트에서 엠과 제트를 구분하는 등 세대를 더 자세히 나눠 조명하는 것은, 각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작업이기도 하다. 엠과 제트를 한 무리로 묶어 대상화하며 ‘요즘 것들’이라고 비판하고, 노인이나 기성 세대는 ‘꼰대’라고 일반화하는 데서 나아가 서로를 이해하며 소통을 원활히 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레이스>를 집필한 김루리 작가는 “‘라떼’를 외치는 ‘꼰대’ 세대와 엠제트 세대가 함께 있도록 강요되는 곳이 회사다. 회사를 통해 단절과 소통이 공존하는 혼돈의 시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하경 여행기>를 연출한 이종필 감독은 “보는 이들에 따라 ‘씁쓸’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구나, 그래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며 같이 한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과 공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