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영화 <아기공룡둘리: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예고편 갈무리
“둘리야 네가 이제 마흔이라니, 철 좀 들었는지 모르겠구나. 철들지 말 거라. 네 모습 그대로 그립고 아름다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건강해라. 그리고 오래오래 모두의 기억 속에 살아가 주렴”
추억의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 40주년을 맞아 24일 <아기공룡둘리: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이
재개봉된 가운데 둘리와 친구들을 거둬준 만화 속 캐릭터 고길동의 편지가 공개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둘리를 기억하는 팬들이 ‘눈물난다’라며 추억에 젖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영화 배급사 워터홀컴퍼니는 23일 인스타그램에 “고길동 아저씨가 지금의 나에게, 당신에게, 세상의 모든 작은 둘리라는 이름의 우리에게 이런 편지를 써준다면 잠시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라는 글과 함께 고길동의 편지를 공개했다.
고길동은 “안녕하세요, 고길동입니다. 껄껄껄. 오랜만이란 말조차 무색할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리 어린이들, 모두 그동안 잘 있으셨는지”라고 안부 인사를 전하며 말문을 열었다.
고길동의 편지. 워터홀컴퍼니 인스타그램 갈무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는 둘리와 친구들을 괴롭혀 ‘악역’으로 자리매김했던 자신의 과거를 소환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제가 아기공룡 둘리에서 동명의 역할 고길동을 연기한 지 4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오랜 시간을 일일이 세지는 않았으나 시간은 공평하게 제 어깨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들 제 역할을 이해한다면서요? 제가 악역이 아니라 진정한 성인이었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 껄껄”
이제 자신이 더는 악역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고길동은 “인생이란 그런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한 상대를 이해해 나가는 것. 내가 그 입장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 모든 거절과 후회가 나를 여기로 이끌었음을 아는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고길동의 편지. 워터홀컴퍼니 인스타그램 갈무리
그는 자신과 같이 나이가 든 팬들에게, 또 둘리를 처음 접하는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2023년, 한국에선 많은 분들이 90년대의 향수와 문화를 추억한다고 들었습니다. 지난날 누군가를, 어느 장소를, 그 기억들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축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며 “추억하는 모두의 모습을 축복하고, 추억을 통해 지나온 시간을 다시 마주하고 싶어하는, 여전히 앳된 당신의 모습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라고 했다.
고길동은 “마지막으로 꼰대 같지만 한 마디 남긴다. ‘한때를 추억하는 바로 지금이 내 미래의 가장 그리운 과거가 된다’는 것을”이라며 편지를 마무리했다.
물론 둘리에게 할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추신을 통해 “둘리야 네가 이제 마흔이라니, 철 좀 들었는지 모르겠구나. 철들지 말 거라. 네 모습 그대로 그립고 아름다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건강해라. 그리고 오래오래 모두의 기억 속에 살아가 주렴”이라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둘리를 추억하는 팬들이 ‘어렸을 때 아저씨 욕한 거 반성합니다’ ‘어른이 돼서 편지를 보니 눈물이 난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고길동의 편지. 워터홀컴퍼니 인스타그램 갈무리
극장판 만화영화인 <아기공룡둘리: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은 1996년 개봉한 만화영화로 27년 만에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24일 재개봉했다. 고길동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만년 과장’이다. 자녀 2명에 어린 조카 희동이를 맡아 키우다 둘리와 친구들까지 거두게 되며 졸지에 대가족의 가장이 됐다. 만화영화 방영 당시 둘리와 친구들을 구박하는 고길동에 대해 ‘나쁜 사람’이라는 어린이들의 비난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이 자라 어른이 된 뒤 군말 없이 둘리와 친구들을 거둔 고길동에 대해 ‘대인배’ ‘성인’이라며 재평가를 하고 있다.
<아기공룡둘리:얼음별 대모험>의 총감독 김수정 작가는 지난 19일 <시비에스>(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내가 아이냐, 아니면 청년이냐, 그다음에 어른이냐에 따라서 각자의 그 이해하는 그다음에 그 소통하는 서로 간에 감정 이입이 달라지는 것 같다”며 “그래서 그 시선이 처음에는 내가 어릴 때는 둘리에 전폭적으로 지지했다가 어른이 되니까 길동 씨의 입장에서 보게 된다.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