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펼쳐진 뮤지컬 <광주> 공연 장면. 광주문화재단·라이브·극공작소마방진 제공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16일 오후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이 노래는 사실 1980년 5월 당시에 불리진 않았다. 계엄군에 맞서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목숨을 잃은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그보다 1년6개월 먼저 세상을 떠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1982년 만든 노래이기 때문이다.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를 황석영이 다듬어 가사를 만들고 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김종률이 작곡했다. 이후 5·18 기념식은 물론 여러 시위 현장에서 불리면서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해마다 5·18 즈음 이 노래가 광주에서 불려왔지만, 이날의 노래는 좀 더 특별했다. 5·18을 소재로 한 뮤지컬 <광주>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민군을 연기한 수십명의 배우들이 합창한 것이다. <광주>는 이날부터 21일까지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아홉차례 펼쳐진다.
16일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펼쳐진 뮤지컬 <광주> 공연 장면. 광주문화재단·라이브·극공작소마방진 제공
<광주>는 광주문화재단이 2019년 ‘임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세계화 사업’의 하나로 기획했다. 2020년 초연 이후 이번 공연으로 네번째 시즌을 맞았다. 초연 때는 극을 이끄는 인물 박한수가 시민군을 교란하고자 군이 투입한 편의대 소속인 탓에 관객들의 감정이입이 힘든 점 등이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이후 2021년 두번째 시즌과 2022년 세번째 시즌을 거치면서 박한수의 심경 변화 서사를 보강하는 한편 야학 교사 윤이건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의 서사를 강화하면서 작품이 탄탄해졌다는 호평을 들었다.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쇼케이스를 열어 ‘아시아의 레미제라블’이라는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기도 했다.
뮤지컬 속 윤이건은 윤상원 열사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윤이건은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대사를 하는데, 이는 실제로 윤상원 열사가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윤이건은 “1980년 5월27일, 새벽은 길었고 우리의 아침은 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말로 비통한 결말을 내비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들을 진정한 승리자로 기리고 있다.
16일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펼쳐진 뮤지컬 <광주> 공연 장면. 광주문화재단·라이브·극공작소마방진 제공
<광주>의 특별한 점은 민주화 투쟁을 축제처럼 그린다는 데 있다. 광주 시민들은 웃고 노래하고 춤추며 싸운다. 마지막 순간도 비장하고 비참하기보다는 담백하고 절제된 시선으로 그려낸다. 극작과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슬픔이 아니다. 뮤지컬은 뮤지컬로 보여야 한다. 광주 하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심리적 장벽을 허물고, 춤추고 노래하고 사랑하는 장면을 보면서 관객들이 광주의 진실을 알고 시민들을 이해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출했다”고 말했다.
16일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린 뮤지컬 <광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출연진과 제작진. 광주문화재단·라이브·극공작소마방진 제공
<광주>는 지난 3년간 서울과 광주를 비롯해 부산, 전주, 세종 등에서 공연했다. 하지만 올해는 이번 광주 공연이 유일하다. 광주문화재단이 3개년 프로젝트로 지원한 사업이 지난해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별도로 지원한 것이다. 유희성 예술감독은 “뮤지컬 <광주>처럼 민과 관이 오랜 시간 협업해 좋은 성과를 낸 사례는 흔치 않다”며 “전국 각지 공연으로 확산되고 세계 각국에서도 <레미제라블> 못지않은 작품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민과 관이 함께 방법을 찾기를 희망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광주/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