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열린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토리와 로키타>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장 피에르 다르덴(사진 왼쪽)과 뤽 다르덴 형제 감독. 김은형 선임기자
세계적인 거장 감독 다르덴 형제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벨기에 출신의 장 피에르 다르덴(72)과 뤽 다르덴(69) 형제 감독은 27일 개막한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토리와 로키타>를 들고 왔다. 두 형제는 1970년대 다큐멘터리로 영화 이력을 시작했을 때부터 꾸준히 함께 작업해오면서 <로제타>(1999)와 <더 차일드>(2005)로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두번이나 수상했다. <토리와 로키타>는 아프리카에서 벨기에로 밀입국한 뒤 체류증을 받기 위해 분투하는 로키타와 토리의 비극을 담은 영화로 사회적 약자를 꾸준히 영화에 담아온 다르덴 형제의 문제의식이 잘 녹아 있는 작품이다. 27일 영화제 개막 직전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노장 형제 감독을 만났다.
“거장 영화감독들이 활동하는 영화의 나라로만 알고 있던 한국에 처음으로 오게 돼 무척 기쁘다.” 형인 장 피에르 다르덴이 먼저 한국에 온 소감을 밝혔다. 그는 “2020년 오기로 약속이 됐다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취소되어 아쉬웠는데 마침내 전주에 도착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전주국제영화제는 2020년 <소년 아메드>로 형제를 초청해 특별전까지 준비했다가 코로나로 영화제가 대폭 축소되면서 초청을 취소한 바 있다. 장 피에르는 <토리와 로키타>를 제작하게 된 계기로 “신문에서 수백명의 외국인 미성년자들이 유럽으로 오면서 알게 모르게 사라진다는 기사를 읽었다. ‘현대 사회에서 아이들이 없어진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이 영화의 기획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27일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열린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토리와 로키타>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장 피에르 다르덴(사진 오른쪽)과 뤽 다르덴 형제 감독
영화에서 십대 후반의 로키타와 10대 초반의 토리는 가족없이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지만 로키타에게 체류증이 나오지 않으면서 곤경에 빠진다. 고향의 가족에게, 그리고 밀입국시켜준 브로커에도 돈을 보내야 하는 로키타는 체류증을 만들어준다는 어른들의 꼬임에 넘어가 불법 대마 재배 일에 나서게 되고 소년 소녀의 삶은 벼랑 끝으로 치닫는다. 이처럼 미성년자,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는 다르덴 형제가 모든 작품에서 카메라로 응시해온 주인공들이다. 동생 뤽 다르덴은 “부모가 없는 외국인 어린이는 약자 중에서도 최악의 상황에 놓인 약자들이다. 이들이 어른 앞에 있을 때 어떤 어려움이 봉착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나누는 우정은 어른들 세상의 그 무엇보다 고결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마지막 토리의 대사처럼 이들이 원한 건 체류증을 받아서 로키타는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토리는 학교에 가는 게 전부였다. 그것들을 빼앗아 가는 사회의 부조리를 전하고자 했다”고 했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토리와 로키타>.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시장을 빼앗기는 영화산업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더 커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뤽 다르덴은 “찰리 채플린 등 옛날 영화에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와 함께 비판적 시각이나 날카로움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점이 약화되서 아쉬운 면도 있지만 중요한 건 다양성이라고 생각한다. 블록버스터도 있고 코미디도 있고 우리 영화 같은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도 있는 다양성의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르덴 형제는 27일 개막식 참여를 시작으로 마스터클래스, <우리들>, <우리집>을 연출한 윤가은 감독과의 대화 등의 영화제 행사를 소화한 뒤 10일 한국 개봉에 맞춰 일반 극장의 관객들과도 만날 예정이다.
27일 저녁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배우 진구와 공승연의 사회로 개막식을 연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다음달 6일까지 이어지는 장도를 시작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국내 작품 122편을 포함, 42개국에서 온 246편의 영화가 전주 시내 6개 상영관에서 상영된다. 일반 영화제 상영 외에도 시민들과 가까이에서 만나기 위한 ‘골목 상영’, 공연과 영화를 결합한 ‘전주영화X산책’, 독립영화 배우와 함께하는 ‘전주영화X마중’등의 다양한 부대 행사들도 마련됐다.
전주/글·사진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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