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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중국식 ‘국뽕’…양조위 텅 빈 눈빛 안에서 길을 잃다

등록 2023-04-24 14:20수정 2023-04-25 02:49

영화 <무명>의 한 장면. 콘텐츠판다 제공
영화 <무명>의 한 장면. 콘텐츠판다 제공

중일전쟁이 격화되고 친일 국민당 정부의 탄압과 중국 공산당의 저항이 격렬해지던 1930년대 말 상하이. 중국인 엘리트 허주임(량차오웨이∙양조위)과 예선생(왕이보)은 일본 정부의 손발이 되어 공산당 색출작업에 나선다. 하지만 허주임은 공산당 비밀결사체의 핵심 인물로 일본 조직에 침투해 정보를 빼내려는 스파이. 1941년 일본이 진주만 공습으로 지배의 고삐를 조이면서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누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기 힘든 아수라장이 벌어진다.

지난 1월 중국에서 개봉해 좋은 흥행성적을 거둔 <무명>(청얼 감독)은 한국인들에게는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중일전쟁과 진주만 공습 사이의 중국 정세만도 충분히 복잡한데 영화는 스파이와 이중스파이들이 난립했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수시로 플래시백을 오가며 시간적 흐름을 뒤집는다. 계속되는 무거운 효과음이 극의 긴장감을 몰아가지만 정작 내용의 이해가 어려워 극에 몰입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양조위의 힘이 크다. 그가 연기하는 허주임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친일파 정보부 대장으로 연기했던 <색, 계>(2007)의 이씨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앞부분에서 자수하는 공산당원을 앞에 두고 취조하면서 가짜 웃음 사이 순간순간 냉혹해지는 양조위의 표정은 복잡한 마음을 냉혹한 얼굴 속에 숨기던 <색, 계>의 이씨와 닮아있다.

영화 초반 관객도 속을 정도로 과묵하고 냉정한 친일파 역할을 하던 허주임의 진짜 신분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긴장감이 점차 고조된다. 허주임과 대결구도를 이루는 예선생이 치열하게 육탄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영화의 긴장은 최고조에 이른다. 다만 한중합작 아이돌 보이그룹 유니크 출신의 왕이보와 비교하면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피지컬과 나이 차이로 팬들의 입장에서는 양조위의 몸싸움 연기가 안타깝게 느껴질 만도 하다.

<무명>은 중국 공산당의 치열한 항일투쟁을 그리는 이른바 ‘국뽕’영화이기는 하지만 중국 밖 관객에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원색적이지 않은 메시지에, 누아르의 어둡고 스타일리시한 화면이 영화 전반에 왕자웨이(왕가위)의 느낌을 뿌려놓는다. 창을 등지고 담배를 무는 실루엣이나 웃고 있는 표정 속의 공허한 눈빛 등 양조위의 아름다운 연기에는 <색, 계>뿐 아니라 <화양연화>(2000) 등 그의 다른 대표작들이 스쳐 지나간다. 26일 개봉.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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