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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빵 이어 검정고무신, ‘불공정 계약’ 노예…문체부, 뒷북 조사

등록 2023-03-31 09:00수정 2023-03-31 11:53

웹툰계 불공정 계약 만연…출판계 나쁜 관행 전이
문체부 내놓은 표준계약서 창작자 의견반영 미흡
지난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고 이우영 작가의 동생 이우진씨가 발언을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고 이우영 작가의 동생 이우진씨가 발언을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형이 마지막으로 걸었으나 제가 받지 못한 부재중 전화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아마도 형이 마무리하지 못한 이 분쟁을 해결하고 후배와 제자들의 창작 활동을 보호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아니었을까요?”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 이우영 작가의 동생 이우진씨가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울먹이며 한 말이다. 이 작가가 지난 11일 숨을 거둔 뒤 생전 출판·캐릭터 업체 형설앤과의 저작권 분쟁에 괴로워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화예술계 불공정 계약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분노가 들끓고 있다. 정부 등이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만화계 등 창작자들은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lt;검정고무신&gt; 티브이 애니메이션 장면. 한국방송 영상 갈무리
<검정고무신> 티브이 애니메이션 장면. 한국방송 영상 갈무리

이 작가가 2007년께 형설앤과 맺은 계약에서 <검정고무신> 사업권 일체를 양도한 것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장아무개 형설앤 대표는 캐릭터 공동저작자로 이름을 올리기까지 했다. 이후 형설앤은 지난 15년간 <검정고무신>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등 77가지 사업을 벌였지만, 이 작가가 받은 돈은 1200만원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오히려 이 작가는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자신의 창작물에 활용했다는 등의 이유로 2019년 형설앤에 고소당했다.

비슷한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을 받은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이 대표적이다. 백 작가는 2004년 1850만원에 저작권 등 모든 권리를 출판사에 넘기는 ‘매절’ 계약을 맺었다. 이후 <구름빵>은 애니메이션, 뮤지컬, 캐릭터 상품 등으로 확장돼 4000억원대의 부가가치를 올렸지만, 백 작가에겐 한푼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구름빵 보호법’이 국회에서 세차례나 발의됐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고, 백 작가는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고 이우영 작가. 유튜브 영상 갈무리
고 이우영 작가. 유튜브 영상 갈무리

이처럼 과거 출판계에 만연했던 불공정 계약이 이제는 웹툰계로 전이되는 모양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 웹툰 사업체·작가·불공정 계약 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웹툰 작가의 58.9%가 “불공정 계약이나 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의 범유경 변호사는 “웹툰 작가들 계약서를 보면 제작사가 창작에 관여하지 않았는데도 공동저작자로 이름을 올리거나 사업권을 무기한·포괄적으로 가져가는 사례가 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가들은 문제점을 알고도 연재 기회를 얻기 위해 서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뒤늦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문체부는 지난 15일 만화(웹툰) 분야 표준계약서 6종에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이용허락계약서’와 ‘양도계약서’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만화계 현장 반응은 부정적이다. 박광철 한국만화가협회 이사는 “정부가 추진하는 표준계약서는 오히려 제작사가 쉽게 공동저작자가 되는 길을 열어준 꼴”이라며 “표준계약서 연구 단계에서 창작자 의견을 듣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게다가 표준계약서는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이라는 한계도 있다.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대책위원장을 맡은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대책위원장을 맡은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론이 악화하자, 문체부는 <검정고무신> 계약이 예술인권리보장법을 어겼는지 판단하기 위해 특별조사팀을 꾸리고 조사에 착수한다고 30일 밝혔다. 이는 한국만화가협회가 지난 28일 문체부 예술인 신문고에 신고한 데 따른 것이다. 조사 결과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시정명령, 수사 의뢰, 공정거래위원회 통보 등 조처를 할 예정이다. 또 문체부는 ‘제2 검정고무신 사태 방지 티에프(TF)’를 통해 저작권법률지원센터를 구축하고 문화예술인 저작권 서비스 강화, 창작자 권익 강화를 위한 법·제도적 보완장치 강구, 찾아가는 저작권 교육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이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를 막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위원장은 “지난 7년간 문체부에 창작자를 위한 저작권법 개정을 요구했는데, 귀 막고 있었다. 이번에도 여전히 근본적 대책은 안 보인다”며 답답해했다.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다. 지식재산권 양도를 강제하거나 무상으로 양수하는 행위 등 금지행위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처벌 조항을 마련한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2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중복 규제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등 부정적 기류도 있다. 범유경 변호사는 “무엇보다 문체부가 큰 틀에서 저작권 관련 불공정 관행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 목표가 있어야 한다”며 “입법을 포함한 종합적이고 구체적 대책을 내놓고 실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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