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문명박물관 들머리의 지상·지하를 틔운 중정 공간에서 상영 중인 미라와 별 모양 무늬의 미디어아트 영상. 노형석 기자
“저기 피라미드 언덕 아래로 박물관이 보입니다!”
누군가가 외치자 일행은 카프레왕 피라미드 앞쪽 광장으로 달려갔다. 모래 알갱이들이 얼굴을 때리는 사막 바람이 휘몰아쳐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흐릿한 시계 속에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역사박물관 단지의 벽체들이 가물거리며 나타났다. 벽체가 모두 피라미드의 갖가지 삼각형 무늬로 채워지고 각 출입구도 피라미드 모양으로 튀어나온 그랜드이집트뮤지엄이었다.
바닥 면적만 47만㎡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이 박물관은 이집트 수도 카이로 서쪽 외곽 기자지구의 핵심 유적인 쿠푸·카프레·멘카우레왕의 3대 피라미드 북서쪽 7㎞ 지점에 있다. 고대 이집트 제국의 옛 수도 룩소르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 기념탑이 박물관 한쪽 입구에 옮겨져 관객을 맞고 있고, 입구 광장에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최전성기를 이룩한 람세스 2세의 거대 석상도 들어섰다.
5000년 전부터 이어진 고대 이집트 전 왕조의 유물 10만여점을 시기별로 한자리에 수장·전시하는 형태로 설계된 이 박물관은 ‘헤네한
펭 아키텍츠’라는 독일 설계사가 만들었다. 3개 피라미드를 합한 권역의 넓이에 피라미드와 나일강 삼각주를 형상화한 모습으로 세워져 고대 이집트 문명과 현재 이집트 국가의 상징성을 함께 구현한 것이 특징적이었다. 오는 6월 정식 개관할 것으로 보인다는게 현지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랜드이집트뮤지엄 입구 광장에 설치된 람세스 2세의 거대 석상. 박물관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노형석 기자
지난 1일(현지시각) 이 박물관을 찾은 답사단 일행은 한국에서 온 고고역사 문화재 전문가들이었다. 1973년 천마총 발굴에 참여했던 원로 고고학자 윤근일씨를 필두로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장인 이재운 전주대 명예교수와 사적분과 위원인 강봉원 경주대 교수, 고신라 고분 발굴 전문가인 박광열 성림문화재연구원장, 김용성 한빛문화재연구원장 등이 야심적인 이집트의 박물관 프로젝트 현장을 두루 살펴보았다. 이들은 경주시에서 지난해 건립한 금관총 고분 전시관에 이어 바로 옆에 올해 개관을 목표로 건립 중인 경주 신라고분정보센터의 콘텐츠와 내부 구조를 논의해왔다. 이 과정에서 최근 잇따라 개관해 주목받는 첨단 시설의 이집트 박물관 등을 시찰해 영감과 아이디어를 찾아보려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지난달 26일부터 일주일간 여러 박물관과 야외 유적 등을 돌아본 답사는 현지 문화재 관리의 양극화를 단적으로 실감하게 했다. 첨단 박물관과 피라미드, 석상 같은 야외 유적의 관리 양상이 극명하게 엇갈렸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카이로의 이집트문명박물관에서 한국 답사단의 전문가들이 고대 이집트 의자 공예품을 살펴보고 있다. 노형석 기자
세계 최대 규모 박물관으로 꼽히는 그랜드이집트뮤지엄. 입구 쪽에 룩소르 신전에서 옮겨온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노형석 기자
카이로 시내 이집트문명박물관은 전 이집트 왕조 파라오와 왕비의 미라 22구를 지하 특설공간으로 옮겨와 전시하고 지상층에는 고대부터 헬레니즘 시대, 이슬람 왕조 시대까지 이집트의 전 시대 역사유물들을 볼 수 있게 했다. 미라 형상과 무덤 속 각종 문양 등을 담은 미디어 영상이 중정과 지하층 바닥을 뒤덮은 연출 방식이 눈길을 끌었으나, 한 공간에 전 시대 유물을 몰아 넣은 구성은 산만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입지가 경주 왕릉지구와 유사한 그랜드이집트뮤지엄은 아직 정식 개관하지 않았지만 건물 앞 피라미드군을 바라보는 자연채광식 대형 조망창 등의 관람 설비와 극장, 세미나룸 등 문화복합공간 얼개는 참고할 만하다는 평가였다. 반면, 기자의 피라미드 영역은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앞 신전 권역 코앞까지 각종 상가와 말·낙타 승합대기소가 늘어서 쓰레기와 배설물들로 뒤덮여 있고 피라미드 입구 신전 코앞 언덕은 토사 유출로 곳곳이 움푹 파여 안전 상황이 크게 우려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김용성·박광열 원장은 “유적 관리는 수준 이하였지만 가까이 접하며 체험할 수 있게 한 접근성이 돋보였다”며 “고대인의 사후 세계관을 함축한 유물·유체 중심의 첨단 영상 콘텐츠를 전시장 진입 공간에 투사한 발상도 신라 고분의 역사와 축조 배경을 일러주는 방식으로 원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이로/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 군을 마주보며 들어선 그랜드이집트뮤지엄의 측면 모습. 이집트 정부 관광·고대유산부 제공
경주 노서동 고분군 들머리에 들어선 신라고분정보센터(사진 정면). 왼쪽 위 원형 지붕 건물이 금관총 전시관. 센터 뒤쪽에 보이는 가장 큰 봉분이 서봉황대다. 경주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