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는 고 한영우 교수의 모습. 강성만 기자
조선 시대를 중심으로 삼아 다방면의 연구 활동을 펼쳐 우리 국사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로 꼽혀온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15일 별세했다. 향년 85.
193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67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임했다. 정년퇴임 뒤 명예교수가 됐다. 한국사연구회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경기문화재단 이사, 서울대 인문대학장 등도 역임했다.
조선 전기 사회·경제 연구에 자신의 뿌리를 두고, 고인은 평생 의궤, 삼봉 정도전, 실학, 선비정신의 지성사 등 다양한 주제들을 탐구했다. 고인의 폭넓은 연구는 <조선 전기 사학사 연구>(1981), <조선 전기 사회경제 연구>(1983),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1999),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2007), <꿈과 반역의 실학자 유수원>(2007), <한국 선비 지성사>(2010), <과거, 출세의 사다리>(2013) 등 학술·교양 분야의 다양한 저작들로 남았다. 고인이 쓴 한국사 통사인 <다시 찾는 우리 역사>(1997)는 판을 거듭하여 널리 읽히는 고전으로 꼽힌다. 고인은 1992~1996년 서울대 규장각 초대 관장으로 재임했는데, 규장각이 소장한 의궤에 대한 연구 활동들을 바탕으로 쓴 <조선왕조 의궤>(2005)로 ‘한국출판문화상’(저술상)을 받기도 했다.
고인은 은퇴 뒤 저술 활동이 되레 더 활발했는데, 한효순, 성혼 등 유학자들의 평전을 지속적으로 썼고 지난해에도 허균(1569~1618)을 ‘천재 혁명사상가’로 탐구한 <허균 평전>을 펴낸 바 있다. 고인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조선은 사대와 당쟁, 신분차별로 망한 나라’라는 식의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것을 자기 학문의 주된 화두로 꼽은 바 있다.
고인은 1974년 유신 체제에서 처음 발행된 첫 국정교과서(고등학교 국사) 집필에 참여해 일각에서 ‘어용학자’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고인은 2015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당시 문교부가 집필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신 체제를 미화하는 내용을 포함하도록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식민사관을 극복한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자는 열망으로 국정교과서 집필에 나섰지만, (정권이 무단으로 내용을 다듬어) 교과서는 유신 교과서로 낙인찍히고 집필진은 어용학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인터뷰 당시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 전환’을 무리하게 추진하자, 이에 대해 우려와 반대의 뜻을 밝히면서 했던 얘기다.
고인은 옥조근정훈장(2003년), 대한민국문화유산상 대통령표창(2005년), 민세안재홍 학술상(2012년) 등 여러 상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채중씨와 두 아들 정훈(성균관대 교수)·승현(건국대 교수)씨가 있다. 발인은 18일 오전,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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