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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감정의 심연까지 담아낸 관능적 스크린

등록 2023-02-02 07:00수정 2023-02-02 16:09

영화 ‘단순한 열정’ 오늘 개봉
아니 에르노 동명 소설 원작
작년 노벨문학상 작가 자전적 얘기
영화 <단순한 열정>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단순한 열정>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대표작인 <단순한 열정> 독자가 이 작품의 영화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떠올릴 솔직한 궁금증. 얼마나 야할까?

연하의 유부남 동유럽 외교관과 관능적 사랑에 빠졌던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냉정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그린 소설 <단순한 열정>이 같은 제목의 영화로 2일 개봉했다. 스크린에서 배우들의 육체를 통해 표현되는 원작의 선정성은 자극적이고 강렬하다. 하지만 여성 감독 다니엘 아르비드는 섬세한 연출력으로 자칫 단순한 성애 영화나 여성이 이기적인 남성에게 착취당하는 이야기로 그려질 수 있는 표현 수위에 감정의 심연까지 담아낸다. 2020년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으며, 가장 까다로운 관객일 원작자 아니 에르노도 “영화에 잠식될 수밖에 없었다”며 호평했다.

영화 &lt;단순한 열정&gt;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단순한 열정>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는 소설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0대 아들을 키우는 문학 강사 엘렌(레티시아 도슈)은 연하의 러시아 대사관 직원과 우연히 관능적 관계에 빠져든다. 유부남인 알렉산드르(세르게이 폴루닌)는 엘렌과의 관계에 집착하면서도 가정을 깰 생각은 없다. 따라서 언제나 기다려야 하는 쪽은 엘렌이다. 알렉산드르에게서 연락이 오면 달려가 사랑을 나누고, 남자와 헤어진 뒤에는 그와 나누었던 뜨거운 시간들, 그의 숨결과 손길만을 복기하며 그의 전화를 기다린다. 비현실적 사랑에 대한 집착이 강해질수록 직장과 가정, 육아 같은 현실은 도리어 꿈처럼 아득해진다.

엘렌과 알렉산드르의 사랑은 ‘불륜’이라는 딱지 때문에 소설이 세상에 나왔을 때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작가와 영화의 관심사는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단순한, 순수한 열정이다. 숨 막힐 듯 강렬한 포옹과 입 맞출 때 느껴지는 입안의 감촉, 어깨로 흘러내리던 부드러운 상대방의 손길과 내 손끝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꺼끌꺼끌한 살갗의 느낌…. 열정은 관념적이지 않다. 구체적이다. 엘렌은 알렉산드르의 전화를 놓칠까 봐 헤어드라이어나 진공청소기를 쓰는 것도 조심스럽다. 수동적인 자신의 태도를 지적하는 친구에게 “사랑에 빠지면 순종적이 되는 페미니스트들도 많다”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열병처럼 광기처럼 엘렌이 빠져드는 열정은 사랑의 본질적 감정이 지니는 뜨거운 온도와 다르지 않다.

영화 &lt;단순한 열정&gt;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단순한 열정>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알렉산드르가 인사도 없이 본국으로 귀국했을 때 엘렌은 길바닥에서 넋을 잃고 헤맨다. 그리고 남자가 자신이 사는 동네라고 알려줬던 모스크바의 한 거리로 무작정 날아가 벤치에서 눈을 맞으며 오랫동안 사람들을 지켜본다. 그가 보는 어디에나 그 남자가 있고, 어디에도 그 남자는 없다. 열정이 폭풍처럼 쓸고 간 자리에는 “이별과 외로움이라는 무익한 수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엘렌도 관객도 잘 알고 있다. 모든 사랑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 대신 파국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열정, 제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영화는 침착하게 풀어놓는다. 특히 아름다운 삽입곡들이 여운을 더하는데, 엘렌이 알렉산드르에게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더 플라잉 피케츠의 경쾌하고 달콤한 ‘온리 유’가 나올 때 엘렌이 느끼는 쓰라림은 더 아프게 다가온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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