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피지컬: 100>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말했다. “당뇨 직전이에요. 곧 약을 먹어야 할 지경입니다.” 나는 물었다. “콜라를 줄여야 할까요?” 의사는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식습관 바꾸는 거로는 안 됩니다. 근육의 대부분은 하체 근육이고요, 제일 중요한 게 허벅지 근육입니다. 혈당을 낮추려면 무조건 허벅지를 키워야 합니다.” 병원을 나서자마자 나는 의사의 조언을 잊었다. 신체 긍정의 시대니까, 그냥 살이 찐 채 살아도 좋지 않을까. 어차피 다들 혈압약, 당뇨약 먹고 어떻게든 살아가는 거 아닌가.
그러니 나는 넷플릭스의 새 리얼리티 시리즈 <피지컬: 100>에 별 기대가 없었다. “가장 강력한, 완벽한 피지컬을 가진 최고의 ‘몸'을 찾기 위해 최강 피지컬이라 자부하는 100인이 벌이는 극강의 서바이벌 게임 예능”이라는 홍보 문구부터 거슬렸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멀쩡한 사람들이 보디 프로필을 찍기 위해 몇달을 굶어가며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몸을 만들지 않으면 게으르고 자존감 없는 사람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시큰둥한 태도로 <피지컬: 100>을 보기 시작했다. 몸 좋은 사람들이 몸 자랑하다가 끝나는 프로그램이 딱히 흥미로울 리가 없지.
<피지컬: 100>의 첫회는 참가자 100명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놀랄 정도로 다양한 참가자들이 나왔다. 보디빌더, 운동선수, 크로스핏 선수, 군인, 산악 구조대원, 운동 유튜버들은 내 예상대로였다. 거기에 다양성을 위해 포함된 댄서, 가수, 심지어 여성들이 있었다. 또 살짝 짜증이 났다. 그들은 몸 좋은 남자들의 들러리나 하다가 탈락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예상은 완벽하게 어긋났다. <피지컬: 100>의 첫 미션은 오래 매달리기였다. 근육을 뽐내며 거만하게 등장해 왜소한 참가자들을 내심 비웃던 참가자들이 가을 태풍 속 낙엽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들이 멋쩍은 표정으로 “쪽팔린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나는 환호하고 말았다. 그렇다. 나는 오해하고 있었다. 피지컬은 그저 보기 좋은 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래 매달리기는 몸의 기술이기도 하지만 정신의 기술이기도 하다. 근육만큼이나 근성이 필요하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게 옳다. 중년 남자가 군대 이야기하는 거 진짜 지겹지만 하여튼 예를 들어보자면, 몸이 제일 좋은 놈이 행군도 제일 잘하는 건 아니다. 좋은 비유인지는 모르겠다만 군필 남성 독자라면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피지컬: 100>의 진정한 즐거움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본격적인 미션은 3분 동안 공을 차지하는 사람이 우승하는 1:1 데스 매치다. 제작진은 여기서도 반전의 여지를 만들어낸다. 참가자는 두 가지 경기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참호 경기장은 힘이 중요하다. 장애물 경기장은 스피드가 중요하다. 꼭 근육질 덩어리가 이긴다는 보장은 여기서도 없다. 아니, 나는 근육질 덩어리를 미학적으로 즐기는 편이니 이건 절대 비하의 목적으로 쓴 단어가 아니다. 다만 경기가 진행될수록 진짜 중요한 것이 드러난다. 전략이다. 비교적 몸이 작은 참가자들은 육체적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머리를 쓴다. 몸과 머리를 동시에 잘 쓰는 참가자들이 예상외의 성적을 거두기 시작한다. 이제 누가 승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168㎝ 키로 코트의 거인들을 물리치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송태섭을 보며 당신이 느낀 환희가 여기에도 있다는 이야기다.
<피지컬: 100>은 막 방영을 시작했지만 성공은 예정된 거나 마찬가지다. 지난 27일 기준으로 이미 전세계 넷플릭스 티브이 쇼 부문 시청률 5위에 올랐다. 순위는 점점 올라갈 것이 틀림없다. 여기서 또 재미있는 반전이 하나 있다. <피지컬: 100>은 문화방송(MBC)이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놀랍게도 엠비시는 자사 채널이 아니라 넷플릭스로만 프로그램을 공개하기로 했다. 나는 이것이 한국 지상파 역사상 가장 똑똑한 전략이라고 확신한다. 자사 채널용이라면 문신으로 가득한 남녀들이 악에 받친 욕설을 내뱉으며 거칠게 서로의 육체를 짓누르는 생생한 장면들은 모조리 편집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 얌전한 프로그램으로 승부를 거는 건 오티티(OTT) 시대에 더는 가능하지 않다.
방송사는 이제 방송사여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숙련된 장인과 다양한 제작 경험을 살린 ‘콘텐츠 제작사'가 되어야 한다. 이미 피지컬은 있으니 머리만 조금 더 쓰면 지상파의 종말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을 머쓱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피지컬: 100>은 프로그램 내적 외적으로 새로운 피지컬의 시대가 왔다는 걸 알리는 신호다. 그러니 계묘년에는 우리 모두 허벅지 근육이 튼튼해서 천적을 요리조리 잘 피해 달리는 토끼가 됩시다. 이건 나처럼 몸에 관심 없던 독자들을 위한 교훈이자 근육만 비대한 올드 미디어들을 위한 교훈이기도 하다. 당연히 <한겨레>도 거기 포함된다.
김도훈(작가 겸 대중문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