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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만화책 찢고나온 슬램덩크, X의 심장에 꽂히다

등록 2023-01-04 07:00수정 2023-01-05 09:50

애니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개봉
강백호 아닌 송태섭 중심 전개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뉴 제공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뉴 제공

4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는 관객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북산고 5인방의 스케치가 차례로 그려지며 모습을 드러내는 오프닝 장면을 보고 코끝이 시큰해지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코끝이 시큰해졌다면, 방에 마이클 조던 포스터를 붙여놓고 가수 이승환의 ‘덩크 슛’(1993)을 흥얼거리며 사실은 마이클 조던보다 드라마 <마지막 승부>(1994)의 다슬이(심은하) 사진을 더 자주 들여다보던,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농구 열풍에 불을 붙인 만화 <슬램덩크>를 탐독하던 엑스(X)세대일 공산이 크다. “왼손은 거들 뿐” “포기하는 순간 시합 종료” 같은 명대사를 ‘나의 좌우명’으로 새겼던 그 시절의 청춘들에게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명실상부한 ‘왕의 귀환’이다. 시사회를 통해 개봉 전 먼저 본 이들의 소셜미디어에는 벌써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울컥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는 등의 ‘간증’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먼저 개봉한 일본에선 <아바타: 물의 길>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코끝이 시큰해지지 않는 이에게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그 자체만으로 2시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완성도 높은 스포츠 애니메이션이다. 작품 곳곳에 스며 있는 등장인물들의 전사를 몰라도, 그래서 상영 중 집단의식처럼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웃음이나 탄식, 박수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도 답답해할 필요 없다. 원작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까지 맡은 이 작품은 한동안 케이(K)콘텐츠 파워에 묻혔던 제이(J)콘텐츠의 저력을 보여준다.

애니메이션 &lt;더 퍼스트 슬램덩크&gt; 스틸컷. 뉴 제공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뉴 제공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주인공은 원작의 중심인 강백호가 아니라 송태섭이다. 원작에선 170㎝가 안 되는 단신의 포인트가드라는 점 외에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풍부한 사연을 갖추지 못했던 만년 ‘넘버4’다. 이노우에 감독은 개봉 전 공개한 인터뷰에서 “송태섭은 만화를 연재할 당시에도 서사를 더 그리고 싶은 캐릭터였다”며 “(2학년인) 송태섭은 3학년인 센터 채치수와 드라마가 있는 정대만, 라이벌 관계인 1학년 강백호와 서태웅 사이에 끼여 있는 존재였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캐릭터에 대한 원작자로서의 미안함과 애정을 이번 작품에 담은 것이다.

송태섭 카드가 작가의 새로운 시도라면, 원작의 마지막 경기이자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전국대회 산왕공고와의 대결은 팬들의 기다림에 대한 감독의 화답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별다른 설명 없이 북산고 대 산왕공고 경기를 시작하면서 중간중간 송태섭의 슬픈 가족사를 끼워 넣는다. 갑자기 아버지를 잃은 데 이어 농구 천재였던 형 준섭까지 바다에서 사고로 잃은 태섭은 좋아하는 농구를 그만둔다. 깊은 슬픔에 빠진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북산이 산왕에 형편없이 밀리는 경기 초반은 방황하는 태섭의 소년 시절과 겹치고, 태섭이 농구를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는 과정은 북산이 산왕과의 격차를 줄여가며 역전의 기회를 포착하기까지의 스릴 넘치는 경기 후반과 교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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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뉴 제공

강백호, 서태웅, 정대만 등 기존 인기 캐릭터들은 조연이지만 적절한 위치에서 존재감을 발휘한다.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강백호는 벌어진 점수 격차에 침울해진 팀 분위기를 띄우면서 무모한 열정으로 팀원들의 승부 근성을 자극한다. 주인공 자리를 태섭에게 내줬지만 짧은 순간 강한 임팩트로 ‘원조’ 주인공의 매력을 발산한다. 정대만은 형을 잃고 농구를 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던 어린이 태섭을 격려하던 이름 모를 형이었다는, 원작에 없던 둘 사이의 인연을 추가했다.

원작이 그렇듯 영화의 백미도 경기 그 자체가 주는 팽팽한 긴장감과 짜릿한 쾌감이다.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과 장면들이 원작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컴퓨터그래픽(3D)과 손그림(2D)을 적절히 배치해 마치 경기장에서 진짜 농구 경기를 보는 듯한, 때론 진짜 경기보다 더한 생동감을 준다. 특히 각 인물을 조망하는 만화의 분할 컷 대신 각각의 캐릭터를 따라가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강백호의 리바운드나 송태섭의 드리블, 정대만의 3점슛을 근거리와 중거리, 원거리에서 일사불란하게 보여주는 화면 연출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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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뉴 제공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일본에서 성우 교체를 두고 이전 작품 팬들이 개봉 전 ‘별점 테러’를 선언했을 만큼 진통을 앓았다. 인기 애니메이션의 성우는 캐릭터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어 더빙판에도 정상급 성우들이 참여했다. 강백호는 <명탐정 코난> 남도일, <원피스> 루피를 연기한 성우 강수진, 서태웅은 <명탐정 코난> 괴도 키드 역의 성우 신용우가 맡았다. 송태섭은 디즈니플러스의 마블 시리즈 <로키>에서 로키 역을 맡은 성우 엄상현이 연기했다. 또 어릴 때부터 <슬램덩크> 열혈 팬이었다는 배우 고창석이 강백호 친구 이용팔 목소리로 특별 출연한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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