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6일 오후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전시 마지막날. 전시장이 몰려온 관객들로 북적이는 광경이다. 노형석 기자
2022년은 한국 미술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이룩한 해다. 올해 미술은 한국의 국민 혹은 대중에게서 특별한 의미를 획득했다.
지난해 삼성그룹 총수였던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 컬렉션이 국가에 기증된 뒤 본격적인 공개 전시회가 펼쳐지면서 국민들은 나라의 문화를 격상시키는 명품 컬렉션의 힘과 작품의 매력을 알게 됐다. 이는 미술관과 미술시장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으로 이어졌고, ‘미술’ 간판이 붙은 전시판, 경매판, 장터판을 펼치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몰렸다. 일제강점기 한국에 근대미술이 도입된 이래 이 땅에 미술문화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술은 대중문화의 한류와 함께 문화 소비의 주요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미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새롭게 환기시킨 건 프랑스 베르사유궁을 모델로 삼은 윤석열 정부 문화체육관광부의 청와대 미술관 구상이었다. 지난 7월 박보균 문체부 장관이 발표한 이 구상은 고려·조선시대 역사 유산인 청와대 권역을 보존 위주로 활용하려던 문화재청의 계획과 상충돼 마찰을 빚었고, 학계와 미술계에서도 격렬한 비판과 우려를 낳으면서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는 모양새다. 고교생 풍자카툰 <윤석열차>에 대한 문체부의 과민 반응과 아울러 큰 논란을 빚은 청와대 미술관 논쟁은 이 시대 시각문화의 권능과 힘에 대해 한국 사회에 새로운 이슈거리를 던졌다.
9월 초 뜨거운 관심 속에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렸던 프리즈 아트페어 전시 현장. 노형석 기자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등으로 점차 정리되는 시점에서 국제 장터인 아트페어 등을 통해 미술 소비가 급팽창하는 현상이었다. 특히 9월 열린 세계적인 미술품 장터 프리즈와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한국 최대 장터 키아프의 공동 판매 전람회가 열리면서 미술에 대한 투자 열기는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뒤이어 고환율, 고금리 등의 국제 경기 상황 악화로 국내 시장 경매와 아트페어 구매액이 급감하면서 미술품 경기 자체는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미술 경제가 열탕과 온탕, 냉탕 모두 나타나는 양상으로 이어졌지만, 올해 미술품 전체 거래 규모는 백화점 미술 매장의 매출, 외국계 화랑들의 거래액까지 포함하면 역대 처음 1조원을 훌쩍 넘은 것으로 추산돼 시장 자체적으로 의미심장한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의 승려 장인’전이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박수근 회고전, 큰 호평을 받은 부산비엔날레·제주비엔날레의 성취 등 도드라지게 약진한 전시기획 역량, 조각 장르와 퀴어아트 등에서 새롭게 분출한 청년 작가들의 문제적 작업 등 전시와 작품의 질적인 측면에서 진화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류처럼 세계를 주도할 만한 스타 작가나 독창적 브랜드의 킬러 콘텐츠가 거의 없어 대중문화의 한류에 비견할 만한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뼈아프게 다가오는 맹점이다.
공중에서 내려다 본 김해 구산동 지석묘 유적의 파괴 전 전경.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상석 주위 사방에 묘역의 핵심인 박석 수백여편들이 촘촘하게 깔린 모습을 볼 수 있다. 시 쪽의 정비업체는 이 박석들을 문화재청 협의 없이 무단으로 뽑아내 씻어내고 다시 박아넣는 정비 작업을 강행하며 원형을 뭉개버렸다. 김해시 제공
문화유산 분야에서는, 8월 불거진 김해 구산동 세계 최대 고인돌 훼손 사건이 문화계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 <한겨레> 단독 보도로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 사건은 문화재 보호와 복원을 앞세운 지자체가 실적주의와 관료주의에 빠져 전문가들을 무시하고 복원공사를 밀어붙이다 일으킨 참사라는 점에서 국내 문화재 보존 행정에 경종을 울렸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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