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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종자가 글러먹었어”…‘약한 영웅’이 그린 입양의 불편함

등록 2022-12-10 09:08수정 2022-12-10 19:52

범석 캐릭터 입양아 설정…국회의원, 이미지 만들려 입양
골프채로 때리고, 필리핀 보내며 “사람 써서 죽인다”
전문가 “입양 잘못된 이미지 우려, 신중히 고민하고 써야”
‘약한 영웅’에서 국회의원이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공개 입양한 아이 범석 . 웨이브 제공
‘약한 영웅’에서 국회의원이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공개 입양한 아이 범석 . 웨이브 제공

“내가 너를 왜 데리고 왔을까! 너는 종자가 글러먹었어!” 

<약한 영웅 클래스1>(이하 <약한 영웅>) #4회의 한 장면. 친구를 도우려다 폭력사건에 휘말린 아들 오범석(홍경)한테 아버지(조한철)가 골프채를 휘두르며 하는 말이다. 아버지는 #8회에서 아들을 해외에 내보내려고 하면서는 더 살벌한 말을 내뱉는다. “넌 필리핀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사람써서 죽여버릴 거야!” 

이게 부자간의 대화가 맞을까. 범석은 #5회에서 친구한테 자신과 가족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가족 아닌데. 아버지가 정치에 입문하시면서 나 공개 입양하신거야. 자기 이미지 메이킹 하려고.” 

요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오티티)에서 부쩍 관심을 받는 웨이브 자체제작 드라마 <약한 영웅>에 등장하는 입양 관련 장면들이다. 

지난 11월9일 시작한 디즈니플러스의 자체제작 드라마 <3인칭 복수> 속 부모도 범석 아버지 못지 않다. 자식이 죽었는데 슬퍼하지 않는다. #1회에서 아들이 자살했다는 소리에 “자살은 죄악”이라며 “성도들한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화를 낸다. #5회에서 타살이라고 밝혀지자 “자살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기뻐할 뿐,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원석은 쌍둥이 동생 옥찬미(신예은)와 보육원에서 자랐고, 어릴 때 입양됐다. 

두 드라마에서 입양은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약한 영웅>에서 범석은 소심하고 주눅 들어 살다가 일진 무리에 흡수되는, 드라마에서 변화가 가장 큰 인물이다. 그 동력으로 드라마는 ‘입양’ 코드를 차용해 캐릭터에 서사를 부여했다. ‘입양된 아이가 부모한테 맞고 눈치 보며 자랐고 그러다가 자신한테 잘해주는 두 친구한테 마음을 줬고 폭발해 버렸다’ 라는 서사는 범석의 행동에 설득력을 주면서 시청자들을 이해시켰고, 이 드라마를 보게 하는 데 힘을 더했다. 유수민 감독은 최근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범석이 그런 행동을 벌이는 이유를 타당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서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3인칭 복수>는 부모가 모른척하면서 동생이 오빠의 죽음을 파헤치는 데 더 힘을 실어주게 된다. 

이들의 서사를 만드는데 입양을 선택한 것은 적절했을까? 범석이 반드시 입양한 아이, 그것도 좋지 않은 환경에 입양된 아이였느냐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나온다. 전국입양가족연대 김지영 사무국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가치판단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이 봤을 때 혼란스러울 수 있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입양을 다룰 때는 굉장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입양인 당사자한테도 입양에 대한 편견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 속 비극적 입양…바뀌지 않는 문제 제기

미디어에서 입양을 다루는 문제에 대해서는 2000년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입양을 주로 비극적인 일로 다뤄왔기 때문이다. <펜트하우스>에서 민설아는 재미교포한테 입양됐는데, 그 부모가 아픈 아들 골수 이식을 하고 난 뒤 도둑 누명을 씌워 파양시킨다. 특히 혈연주의와 비밀 입양을 바탕으로도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 혈연주의를 강조하는 대사는 요즘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 “피는 못 속이지”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면 안 된다.” 입양되면 폭력 가정에서 살거나 캐릭터를 우울하게 그리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드라마에서 입양된 아이들을 사랑을 갈구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도 반복해서 나오는 지적이다. “사랑받으려고 아득바득 살았어요.” 드라마에서 입양은 누구한테 들켜서도 안 되는 비밀이다. 

자신도 입양됐다고 밝힌 한 시청자는 <한국방송>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시청자 게시판에 이런 글을 남겼다. “아이들은 사랑받기 위해 아득바득 살지 않아요. 다른 아이들처럼 반항하고 말 안 듣고. 저 또한 그랬어요. 내 엄마니까.” <그렇게 가족이 된다> 정은주 작가는 <와이티엔>(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에 출연해 입양을 다루는 미디어의 문제점을 꼬집은 바 있다. “흔히 가진 편견들을 그대로 반영하는 드라마들이 많다(…) 드라마에서 하나의 공식처럼 혈연주의를 강조하고 그대로 낳은 사람이 구원자다, 이런 식의 메시지를 주는 건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자성의 노력했지만 플랫폼 늘면서 퇴보

전국입양가족연대 김지영 사무국장은 “미디어에서 입양을 지나치게 특별하거나 부정적으로 묘사하면 현실에서 입양의 이미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통계자료를 보면 ‘입양아동수’는 해마다 갈수록 줄어들었다. 2016년 546명에서 2020년 260명이다.  

미디어도 자성의 노력은 있었다. 드라마 <서른, 아홉>에서는 극중 차미조(손예진) 가정을 통해 밝고 건강한 입양 가정을 보여줬다. 이젠 예능에서도 훌륭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아이가 안 생겨서 입양한 게 아니다. 딸을 사랑했기 때문에 입양한 것”이라는 진태현-박시은 부부 이야기는 입양에 대한 인식 변화도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콘텐츠가 우후죽순 쏟아지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분위기다. 12월30일 공개하는 티빙의 <아일랜드>에서 주인공 요한도 태어나자마자 해외로 입양된 구마사제로 나오는 등 방영 예정 중인 드라마에서 ‘입양된 인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미디어에서 소수자 차별, 차별적 언어 등의 문제는 우리가 인지하자마자 빠르게 좋아졌는데, 유독 입양 소재만 변화가 느린 이유는 뭘까. 김지영 사무국장은 “우리나라에서 공개 입양 운동은 1999년께 시작해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이런 걸 보면 유난히 혈연 중심의 사고는 뿌리가 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중견 방송 관계자는 <한겨레>에 “우리나라에서는 입양이 평범한 선택은 아니니까 비극적 서사를 만드는데 좋은 소재다. 남자 주인공이 아픔이 있는 게 좋다는 점에서 좋은 설정인 것은 맞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실제로 <약한 영웅> 범석도 아버지의 폭력을 피하려고 방구석 옷장에 숨는다. 어두운 곳에서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떤다. 시청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한테 맞을 때마다 옷장에 숨지 않았을까 짐작하며 가슴 아파한다. 

작가들 경각심 가져달라

식상한 것도 사실인데, 시청자들은 왜 몰입할까. 황진미 평론가는 “하나의 도피하는 심리라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 부모와 갈등이 일어날 때 ‘우리 엄마가 저럴 리 없어’ ‘내 진짜 부모가 아닐 거야’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드라마를 봤을 때 아이한테 폭력을 가하는 부모가 진짜 부모가 아닌 것에서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그래 거봐 진짜 아빠가 아니니 저럴 수 있는 거야!’ 갖고 있던 갈등의 에너지를 해소하는 상황 방식의 도피인 셈인데 그러면서 드라마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럴수록 입양에 대해서는 안 좋은 생각은 짙어질 수밖에 없다. 김지영 사무국장은 “드라마 작가나 생산하는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고 주의 깊게 다뤄줬으면 한다. 입양을 다룬 이야기를 쓰려면 취재를 제대로 해서 부풀리거나 없는 일을 담지 말고 정확한 사실만 써달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입양을 나쁘게 그리는 이야기가) 세상에서 통한다는 사실이 마음이 참 아프다”며 “그것이 한국 사회의 입양의 척도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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