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의 문제아들>의 한 장면. 한국방송 제공
‘노멀크러시’라는 신조어가 있다. ‘평범함’(노멀, Normal)과 ‘반하다’(크러시, Crush)’를 더한 말이다. 청년세대의 소비패턴을 관찰해보니,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 대신 소박하고 무던한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존재한다는 데서 비롯했다.
시청률·화제성을 노린 ‘매운맛·고자극’ 콘텐츠가 넘쳐나는 방송계에도, 노멀크러시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무해함’을 지향하는 <한국방송2>(KBS2)의 예능 프로 <옥탑방의 문제아들>(이하 <옥문아들>)이 오는 26일 200회를 맞는다. 2018년 9월 한가위 파일럿으로 시작해, 같은 해 11월 정규 편성에 성공했다. 어느덧 햇수로 5년차 ‘장수 예능’ 반열에 들었다.
<옥문아들>은 ‘상식 문제아들’이 옥탑방에 모여 제작진이 내는 문제 10개를 모두 맞춰야 퇴근할 수 있다는 콘셉트로, 퀴즈 프로와 토크쇼를 결합한 예능이다. 지난 18일 서울 서대문구의 <옥문아들> 촬영장 옥상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출연진·제작진은 “(200회까지 방송할 줄은) 정말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간담회에는 <옥문아들> 진행을 맡은 송은이, 김숙, 김종국, 민경훈과 이세희 책임피디(CP), ‘탁성 피디’로 불리는 김진 피디가 참여했다. 정형돈은 건강 문제로 불참했다.
지난 18일 열린 <옥탑방의 문제아들> 기자간담회 모습. 한국방송 제공
간담회 화두는 무엇보다 프로그램의 장수 비결이었다. 참석자들의 답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말은 ‘편안함’. “자극적이지 않고, 이슈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는 프로”(김숙)라는 입소문이 난 덕분에, 연예인과 비연예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게스트를 맞이할 수 있었다. 김숙은 “예능에서 보기 어려운 나문희 선생님을 (<옥문아들>에서) 만나고, 나문희 선생님이 우리 프로가 편하다고 말씀해주셔서 고두심 선생님이 나오셔서 좋았다”고 말했다.
<옥문아들>에는 ‘비웃음’이 없다. 파일럿 방송 때부터 출연자가 문제를 못 맞히고 엉뚱한 대답을 하더라도 ‘이것도 몰라?’ 같은 메시지가 느껴지는 표정(한쪽 입꼬리 올리기 등)이나 비난, 멸시의 눈빛을 표출하지 말자는 ‘룰’(원칙)을 만들었다. 서로 의식적으로 “아~그렇구나~”라고 호응해주기로 했다. 한 게스트 출연자는 이 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예능 프로인데…(웃지 말라니)”라며 당황한 모습을 보였는데, 고정 출연자들이 “서로 상처, 스트레스 주지 말자는 취지”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출연자의 정답률이 공개되긴 하지만, 어차피 10문제를 다 맞춰야 다 같이 퇴근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보다는 협력이 강조된다. 송은이는 “(그동안 경쟁 요소를 강화하는) 룰 변화를 이것저것 시도하긴 했는데, 그런 게 잘 먹히지 않았다. (출연진이) 얼마나 재미있게 문제를 푸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진 피디는 “옥탑방(공간)이 가져다주는 편안함도 있는 것 같다. 게스트들도 녹화 뒤에 ‘방에서 대화하듯 편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 게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옥문아들> 촬영은 스튜디오가 아닌 10~15평 남짓한 방에서 이뤄진다. 제작진도 다 들어갈 수 없어서 옆방을 나눠 쓴다.
게스트에게 ‘비웃음 금지’ 룰을 설명하는 진행자 김용만의 모습. 김용만은 지난 4월 <옥문아들> 편성 시간이 변경되면서 다른 고정 프로그램 <대한외국인>(MBC에브리원)과 방송 시간이 겹쳐 <옥문아들>에서 하차했다. 한국방송 갈무리
출연진은 촬영 과정에서도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민경훈은 “(고정 출연 중인 다른 예능인) <아는 형님>(제이티비시)은 콩트가 가미됐다면, 이 프로그램(<옥문아들>)은 있는 그대로 편하게 촬영하는 점이 저한텐 다르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난 4월부터 ‘원년 멤버’ 김용만을 대신해 엠시(MC)로 투입된 김종국도 “토크만 하는 예능 진행은 처음인데, 몸도 마음도 힐링하는 느낌으로 촬영한다”고 말했다.
김숙은 “우리 프로그램에 없는 게 두 개 있는데, 회식과 ‘단톡방’(여럿이 모인 온라인 메신저 대화방)이 없다. 불만이 있어도 말하거나 쓸 데가 없어서 싸울 일도 없다”고 말했다. 유머를 담은 답변이지만, 프로그램이 주는 편안함의 비결을 엿볼 수 있다.
<옥문아들>의 시청률은 평균 3%대. 200회에 이르는 동안 수차례 방송 요일·시간 변화가 있었던 상황을 고려하면, 나름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해온 셈이다. 지난 4월부터는 수요일 밤 8시30분에 방송하고 있다.
지난 18일 열린 <옥탑방의 문제아들> 기자간담회 모습. 한국방송 제공
<옥문아들> 유튜브에는 “재미+유익 다 잡기가 힘든데…. 저의 최애 예능입니다”, “굳이 경쟁하지 않아도 집단지성의 힘을 보여주는 게 재밌어요”, “순한맛 착한 예능 좋아요” 같은 댓글이 달린다. 송은이는 마무리 발언으로 “이런 좋은 프로가 오래 가는 방송 환경을 위해서 (이런 프로가) 한 개쯤은 있어야지 않나 생각한다. 200회를 맞아 기쁘다”고 말했다.
그의 “웃음기 뺀” 발언에 이어, 김숙이 마이크를 잡았다. “여기서 보통 ‘앞으로 (우리 프로) 더 많이 사랑해주세요!’하는데, 저는 지금 이대로 이 정도 사랑이 좋고 우리(출연진) 우정도 더 가지 말고 이 정도 선선한 관계로…(웃음). 다들 건강하게 이 프로를 지켜내면 좋겠어요.”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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