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에프(SF) 장르 소설, 영화가 많이 다루는 소재 중 하나는 죽음이다. 가장 앞서가는 과학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 죽음까지 인간의 힘으로 바꾸고자 하는 욕망을 건드린다. 영화감독 이준익의 첫 드라마이자 첫 에스에프 장르 도전으로 관심을 모은 <욘더>도 이런 질문, 죽음 이후에도 소중한 이와 함께하는 삶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전체 6부작 가운데 14일 3부가 공개된 <욘더>는 <동주> <박열> 등 이준익 감독의 역사 영화가 그렇듯 시대적 배경 묘사 등 잔가지를 최소화하고 주제를 향해 성큼 나아간다. 안락사법이 통과한 2032년, 재현(신하균)은 심장암을 앓던 아내 이후(한지민)을 떠나 보내게 된다. 아내가 죽기 직전 정체가 모호한 명함을 가진 세이렌(이정은)이 아내를 방문하고 아내의 귀밑에 ‘브로핀’이라는 조그만 칩을 심는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뒤 재현은 아내로부터 “이곳에 살고 있다”는 메일을 받고 아내를 만나러 간다. 그곳에서 재현을 맞이하는 건 세이렌이다.
이후, 재현, 세이렌. 3부까지 등장한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은 암시적이다. 이후는 죽음 ‘이후’ 자신이 남편에게 “잊혀서 결국 잃어버리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 브로핀을 신청한다. 재현은 브로핀에 저장된 기억으로 ‘재현’되는 이후의 모습을 기뻐하기 보다 혼란스러워한다. 재현되는 삶은 진짜 삶일까,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어디일까라는 질문은 에스에프 고전 영화 <블레이드 러너>부터 <욘더>까지 관통하는 주제다. 그리고 위험한 요정 세이렌은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닥터 케이(정진영)의 통제불가능한 욕망을 연결하는 치트키 역할을 한다.
드라마 <욘더>는 2011년 출간된 김장환의 원작소설 <굳바이 욘더>의 배경을 십년 정도 당겼다. 이준익 감독이 제작발표회에서 말한 것처럼 좀 더 가까운 근미래로 설정함으로써 과학기술이 급변하는 시대에 20년 뒤의 세상을 영상으로 그리는 난해함을 기술적으로 간소화시켰다. 또한 최근 조력존엄사법 개정안 발의 등으로 안락사와 존엄사에 대한 이슈가 뜨거워지면서 소재 역시 공감할 수 있는 거리가 가까워진 셈이다. 드라마에서 미래를 느낄 수 있는 건 특수 투명 재질의 전자기기들과 보편화된 자율주행, 친구보다 가까워진 인공지능 음성비서 서비스 정도다. 드라마가 힘있게 밀고 나가려고 하는 건 영상의 디테일보다 두 주인공의 감정선, 사랑하는 이를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이를 받아들이는 이의 혼란과 두려움에 대한 묘사다.
안락사법으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합법화되면서 신의 영역으로 간주되던 죽음 이후를 과학이 관장하려고 하는 욕망이 본격적으로 현실에 파동을 일으키는 건 아직이다. 3회에서 닥터 케이의 정체와 왜 그가 브로핀을 개발했는지 이유가 밝혀지면서 4부 이후, 보다 극적인 드라마 전개를 예감하게 한다. 4회는 21일 공개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