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인기 역주행 ‘신사와 아가씨’
‘네가 거기서 왜 나와…?’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가 오티티 넷플릭스에서 인기라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잠시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신사와 아가씨>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총 52부작으로 종영한 <한국방송2>(KBS2)의 주말드라마다. 세 자녀를 둔 재벌 회장 이영국(지현우)과 가정교사 박단단(이세희)의 사랑이 큰 줄기를 이루는 가족 이야기다. 기억상실, 거짓 임신, 출생의 비밀 등 통속적 요소를 두루 갖춘 ‘막장’에 가깝지만, 주인공 ‘영단 커플’과 아역 배우들의 열연으로 시청률 30%대를 유지했다.
<신사와 아가씨>는 국내 종영 5개월 뒤인 지난 8월부터 넷플릭스에 공급됐다. 한국·북미·일본 등 일부 국가는 제외다. 한국은 ‘이미 볼 사람은 다 봤다’고 여겼기 때문이고(국내 오티티 웨이브에서는 볼 수 있다), 나머지는 한국방송의 기존 해외 방영권 판매망이 어느 정도 갖춰진 곳이다.
중장년층이 주요 타깃인 ‘내수용’ 장편 드라마를 넷플릭스 해외 구독자에게 서비스하기로 결정한 건 한국방송과 넷플릭스에 모두 실험적 도전이었다. 한국방송 관계자는 <한겨레>에 “다른 오티티에도 접촉했지만 50회가 넘는 장편 연속극에 관심이 없었다.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가 이미 인기 있는 지역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한국방송은 이번에 처음으로 넷플릭스에 <신사와 아가씨>를 포함한 주말드라마 몇편을 묶음판매했다. 그 가운데 <신사와 아가씨>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공개 2주 만에 넷플릭스가 주간 시청시간 기준으로 집계한 비영어권 드라마 8위에 오르더니 7주째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또 다른 오티티 순위 집계 누리집 ‘플릭스 패트롤’에서도 6일 기준 전체 티브이 쇼 8위를 기록하는 등 꾸준히 상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신사와 아가씨>가 인기를 끈 지역은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이미 한국 드라마를 즐기는 곳이다. <신사와 아가씨>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아랍에미리트 한국문화원에서 일하는 20대 후반 모함마드 씨는 “중동에서 인기가 많은 가족드라마, 아랍 드라마와 비슷하다. 아이들을 키우는 문제, 가족 간 갈등과 사랑 소재는 아랍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대장금> <하이킥> 시리즈처럼 장편 드라마도 이미 중동에서 인기 있었던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넷플릭스 순위로 가시화됐을 뿐, 홈드라마를 포함한 다양한 장르의 한국 드라마에 이미 친숙하다”고 했다. 케냐 현지 방송사에서 일하다 2020년 한국에 돌아온 송태진 피디는 “넷플릭스가 없던 시절에도 내가 일하던 방송사를 비롯해 한국 드라마를 꾸준히 방영해왔다. 일일연속극 <웃어라 동해야>가 큰 인기를 끄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영단 커플’의 로맨스에 빠진 시청자도 있었다. <신사와 아가씨>가 1위를 기록한 모로코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심윤정씨는 대학생 친구 마루아의 말을 전했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와 비슷했다. 돈 많은 남자 주인공이 가난하지만 강한 성격의 여자 주인공을 좋아하게 되는 이야기. ‘내게 이렇게 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로 사랑에 빠지는 클리셰가 있어서 별생각 없이 보기 좋았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신사와 아가씨>가 넷플릭스 주간 시청시간 기준(9월5~11일) 비영어권 드라마 세계 순위에서 4위를 기록한 모습. 넷플릭스 제공
<신사와 아가씨>가 넷플릭스에서 역주행 인기를 끌자, 드라마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지현우의 유명 밈 ‘지리둥절’(지현우+어리둥절) 이미지도 온라인 곳곳에서 다시 소환된다. ‘지리둥절’ 이미지는 2021년 한국방송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지현우가 <신사와 아가씨> 이영국 역할로 대상에 호명된 뒤에 지은 표정이다. 그는 “제가 진짜 상을 받을 줄 몰라서” 그런 표정을 지었다고 나중에 방송에서 밝힌 바 있다. 문화방송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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