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불편한 편의점2> 표지와 김호연 작가. 나무옆의자 제공, 윤운식 선임기자
“인생을 바꿀 시나리오를 써라. 그것을 팔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당신의 인생은 바뀌었을 것이다.”
할리우드 유명 스토리 컨설턴트 존 트루비의 말이다. 그는 월트디즈니컴퍼니, 소니픽처스 등 세계적인 영화사가 만든 작품 서사에 관여했다. 그의 말은 ‘자신의 작품이 당장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작가는 자신만의 오리지널 이야기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김호연(48) 작가는 이런 말에 용기를 얻어 20여년을 버텼다. 긴 무명 생활 속에서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꾸준히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소설 <불편한 편의점>이 완성됐고, 이 책은 지난해 4월 출간 뒤 현재까지 1년 넘게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누적 70만여권이 팔렸으며, 지난 8월 출간한 <불편한 편의점2>도 곧바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불편한 편의점>은 서울역 노숙자 ‘독고’가 작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채용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이름을 알린 <이엔에이>(ENA) 채널에서 내년 방송을 목표로 드라마화될 예정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만난 김호연 작가는 자신을 ‘스토리텔러’(이야기꾼)로 소개했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일을 시작했고, 만화 스토리도 썼죠. 그다음 대중소설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 여러 작업을 아우를 수 있는 직업을 찾다 보니 스토리텔러가 적합하더라고요.”
소설 <불편한 편의점>의 김호연 작가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펜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소설은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구현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다. 대학 졸업 뒤에 구한 첫 직장은 영화 <이중간첩>(2003)의 시나리오팀이다. ‘천만 영화’들이 줄줄이 탄생했던 2000년대 국내 영화산업 호황기에 그는 대본작가 일을 도제식으로 배웠다. 전업 대본작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출판사 만화·소설 편집자 일을 병행하면서 문화콘텐츠 산업의 변화를 다방면으로 목격했다.
“만화 편집자를 하면서, 만화가 종이 잡지에서 웹툰의 시대로 넘어가는 걸 가까이에서 봤어요. 만화 잡지에 작품을 연재하려면 작가의 데생 실력이 중요했어요. 하지만 웹툰은 달라요. 작가가 그림을 좀 못 그려도 (제대로 된,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으면 성공할 수 있었죠.” 그림 없이 스토리만 구하는 대회도 등장했다. 그는 ‘제1회 부천 만화 스토리 공모전’(2005)에서 대상을 받았다.
소설 편집자로 일할 때는 문학성보다 스토리텔링에 힘을 준 일본·영미권 소설이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현상을 탐구했다. 소설 쓰기에 도전할 때, 장편 서사에 집중한 이유다. 그는 2013년 <망원동 브라더스>로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 작품은 2014년 연극으로 초연되는 등 호평을 이어갔다. 영화 <태양을 쏴라>(2015) 시나리오를 쓰는 틈틈이, 장편소설 <연적>(2015)을 출간했다. 영화 시나리오와 드라마 대본 작업 등도 병행하며 소설 <고스트라이터즈>(2017), <파우스터>(2019)를 펴냈다.
그는 숱한 영화와 드라마 작업이 엎어지고, 소설책 판매도 시원찮은 시절을 “생계형 글품팔이 생활”로 버텨냈다. 그 사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인기를 끌며 창작의 기회가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이야기의 힘이 부각됐다. 2017년 씨제이이엔엠(CJ ENM)이 기획한 작가 지원 프로그램 ‘오펜’ 1기 영화 부문에 선발돼 시나리오 한 편을 팔 수 있었다. 소설을 쓸 여유도 얻었다.
지난해 4월 출간한 <불편한 편의점>(맨 왼쪽)은 1년 이상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인기에 힘입에 지난해 말 15만부 기념 ‘윈터 에디션’(가운데), 올해 초 50만부 기념 ‘벚꽃 에디션’을 선보였다. 나무옆의자 제공
<불편한 편의점>은 출판사 계약 없이 일단 썼다. “텀블벅, 브런치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대중소설을 낼 수 있는 세상이 됐으니까요.” 대학가 운동권이던 학교 선배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고 해서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인데 타인에 대한 불편한 오지랖이 존재하는 곳’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시대의 공기를 느끼려고 노력해요. 어느덧 편의점이 동네 구멍가게처럼 늘어났고, 아르바이트 직원을 포함해 관련 종사자들도 많잖아요. 편의점 이야기를 친숙하게 느낄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죠.”
김호연 작가의 소설은 5권 모두 영화 또는 드라마 판권으로 팔렸다. 그에게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쓰는지를 묻자 “그렇지 않다. 이야기에 집중할 뿐”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영상화가 어렵다고 생각해서 소설로 구현한 이야기가 시간이 흘러 영상 제작자들의 눈에 든 경우도 있다.
<불편한 편의점>은 김호연 작가의 다섯번째 소설이다. 이전에 발표한 장편소설 네권 표지. 각 출판사 제공
성공을 위해서는 흔히 ‘한 우물을 파라’고 한다. 그에게 이런 조언에 대한 생각을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저도 문화콘텐츠 업종이라는 한 우물을 판 건 맞아요. 다만, 그 우물 안에서 (작가로서) 생존하기 위해 다양한 장르와 분야를 오간 거죠.”
이날 그는 인터뷰 전 오펜 후배들 앞에서 ‘스토리텔러의 삶과 일’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대부분 영화와 드라마 작가 지망생들이다. 이 강연에서 알게 된 그의 성공 비법도 요약하자면 이렇다. “잘 쓴 작품은 언젠가는 인정받고 결국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만큼) 회수하게 됩니다.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놓으시길 바랍니다!”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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