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시작과 언론 활동으로 박정희 군사독재에 저항했던 황명걸 시인이 13일 오전 2시24분께 별세했다. 향년 87.
1935년 평양에서 난 고인은 해방 뒤 월남해 서울대 불문과를 중퇴하고 1962년 <자유문학>에 시 ‘이 봄의 미아’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고인이 등단 뒤 14년 만에 낸 첫 시집 <한국의 아이>는 기성 체제와 권위에 대한 강렬한 저항의식을 담았다는 평을 받았으나 유신 정권에 의해 바로 판금 조처를 당했다. 1996년과 2004년에 2집 <내 마음의 솔밭>과 3집 <흰 저고리 검정 치마>를, 2016년에 마지막 시집 <저희를 사랑하기에 내가>를 냈다.
1967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한 시인은 8년 뒤 유신정권의 언론 통제에 맞선 자유언론운동에 동참해 해직을 당하기도 했다. 동료 해직 기자들의 거리 투쟁 때 격문시는 고인이 도맡아 지었다고 한다. 해직 뒤 대기업 사보를 만들며 생계를 꾸렸던 고인은 정년 뒤에는 북한강과 남한강변에 갤러리카페를 열어 2014년까지 운영했다. 어린 시절 부친의 반대로 화가의 꿈을 포기했던 고인은 만년에 그림 창작에도 몰두해 2008년 시화집을 내고 전시회도 열었다.
유족은 부인 서상실씨와 아들 요한·딸 서정씨와 며느리 유성희, 사위 김경덕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순천향대병원, 발인은 15일 오전 6시30분,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 예술인 묘역이다. (02)797-4444.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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